쿠팡플레이 <어느 날> 김현수를 연기하는 김수현. 쿠팡플레이 제공
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어느 날>은 기억도 나지 않는 하룻밤 일로 살인 용의자가 된 평범한 대학생 김현수(김수현)의 이야기다. 그를 변호하는 3류 변호사 신중한(차승원) 등이 유무죄를 다투는 과정에서 사법체계 허점이 드러난다. 또 법정드라마? 이번엔 그림이 조금 다르다. 총 8부가 끝나기 전까지 누구도 현수의 범행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살인 전후만 담아 시청자도 형사사법적 시스템 속에서 현수를 보게 한다.
2008년 영국 <크리미널 저스티스 시즌1>(비비시)이 원작이다. 한국은 2016년 미국 <더 나이트 오브>, 2020년 인도 <크리미널 저스티스 : 밀폐된 문 뒤에서>에 이어 세 번째로 리메이크했다. 프랑스에서도 리메이크 중이다. 이전 작품들은 모두 호평받았다. 한국편은 어떨까? <어느 날>은 지난달 27일부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 쿠팡플레이에서 4회까지 방영했다. 미국, 영국편을 다 본 남지은 기자와 원작 영국편을 본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한국편의 객관적 평가를 위해 모든 정보를 애써 외면해왔다고 ‘주장’하는 김효실 기자가 어느 날, <어느 날>을 이야기했다. 연출 이명우, 극본 권순규
원작인 영국의 <크리미널 저스티스> 벤, 미국 리메이크작 <더 나이트 오브> 나시르, 한국의 <어느 날> 현수
사법체계 비판, 형사사건절차 다루는 범죄물 신선
[김효실] <어느 날>을 어떤 정보도 없이 본 자다. 한국 범죄물은 주로 수사 단계에 치중하는데 수사, 기소, 재판 등 형사사건절차를 단계별로 다 다루는 게 신선했다. 경찰 수사나 검찰 기소 단계에서 언론에 나오는 기사만으로 정의와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려주더라. 언론이 직접 탐사 보도한 게 아니라면, 드라마처럼 경찰이나 검찰 입맛대로 취사선택된 사실만 보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새삼 보인달까. 현수는 당연히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너무 뻔한 것 같아 범인인가 싶기도 하고. 원작을 안 본 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 원작의 마지막회만 볼까, 갈등했다.
[정덕현] 원작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본 자다. 내용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우리나라 사법체계로 바뀌니 현실적으로 더 와 닿는다. 진실에는 관심 없고 서로 어떤 스토리를 써내느냐에 따라 판결이 판가름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 2021년 한국이 배경인 <어느 날>은 현실 사법체계 비판이 좀 더 직접적이다. 검사는 실적을 올리려고 천식 환자인 현수를 구슬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게 한다. 검경의 모의, 은퇴 뒤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으려고 무리한 수사를 이어가는 경찰까지. 드라마 속 얘기만은 아니기에, 원작을 볼 때와 달리 먹먹하다.
[남지은] 원작과 미국편 <더 나이트 오브>까지 다 본 자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미국편이다. 사법체계의 허점이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가장 잘 보여줬다. 처음 <더 나이트 오브>를 보고 나서 ‘이게 뭐지?’ 싶었다. 누명을 벗는 이야기라면 결말은 당연히 속 시원해야 하는데, 아니더라. 미국편은 평범한 사람도 범죄자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어떻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보다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이 강조된다. 김현수 역할인 나시르를 파키스탄 출신 미국인으로 설정해 인종차별적 문제도 담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좀 아쉽기도 하다. 4회까지만 보면, 영국편을 기본으로 미국편을 섞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비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느 날> 신중한을 연기하는 차승원. 쿠팡플레이 제공
감정, 서사는 한국편의 강점…작품 자체가 현실 꼬집는 상징
[정덕현] ‘감정’을 담아낸 것은 한국만의 강점이다. 핵심은 억울한 현수와 그 누명을 벗겨주는 신중한의 이야기다. 김수현과 차승원이 감정 연기가 더해져 몰입감이 좋다. 원작이 마치 사건 보고서처럼 무덤덤한 방식으로 진행해간다면, <어느 날>은 평범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에도 인물의 감정이 묻어난다. 한국 드라마들이 왜 국외에서 ‘감정적 펀치’를 날린다는 평가를 받는지 이해되는 비교점이다.
[남지은] 서사, 개연성도 <어느 날>의 장점이랄까. 영국편과 미국편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던 장면들이 <어느 날>에서는 이해가 됐다. 어떤 행위 전에 합리적인 이유와 장면을 설명해두더라. 예를 들어 원작에서 구속 수사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 날>에서는 같은 방 죄수의 자살로 현수가 놀라서 정신없이 문으로 뛰어가면서 무단이탈 처리되고, 거짓말 탐지기를 거부한 근거를 만들어 놨다.
[정덕현] 오티티의 장점도 제대로 활용했다.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위험한 게임을 한 뒤의 베드신까지. 현수가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높은 수위와 극적 장치들로 밀어붙여 시청자를 끌고 갔다. 폭발적인 도입부가 사건 뒤 현수의 눈물과 현실에 대한 냉소, 그래도 남은 순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복합적인 감정을 제대로 살렸다. 김수현의 연민을 끌어내는 눈물 연기에 새삼 감탄했다.
[남지은] 김현수는 원작의 벤 콜터의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에 감정을 더 심었더라. 신중한 변호사는 원작보다는 미국편인 <더 나이트 오브>의 존 스톤 느낌이 났다. 존 스톤을 보면서 ‘와 저 캐릭터를 대체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했는데, 차승원이 따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으로 잘 만들어낸 것 같다. 연구를 많이 한 게 보이더라. 아토피가 심한 발을 연신 긁어대는 차승원이라니. 근데 그게 또 어울려.
영국 <크리미널 저스티스> 랠프 스톤, 미국 <더 나이트 오브> 존 스톤, 한국 <어느 날> 신중한
[김효실] 캐릭터가 흥미롭기는 한데 아직은 정의추구형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잡범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인데, 큰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회까지 본 자로서는 물음표다. 그 심리 변화가 잘 안 느껴진다. 그래도 무거운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중한 신중한이다. 법정과 안 어울리는 슬리퍼와 긴 머리와 관련한 사연이 궁금하다. 신중한의 서사도 풀어주면 좋겠다.
[남지은] 오히려 원작과 미국편보다 <어느 날>에서 신중한의 심리 변화가 더 잘 느껴지더라. 신중한이 현수 변호사에서 잘린 뒤 혼자 쓸쓸하게 술 마시는 장면은 <어느 날>에만 있다. 신중한의 서사가 한국편에서는 나올까? 그는 원래 정의로운 변호사였는데, 아토피 등 외적인 것과 만들어내는 진실, 이른바 ‘쇼잉’을 중요시하는 법조계에 회의감을 느껴 스스로 3류가 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다 평생 교도소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진실을 만들어내지 않는 현수를 보며 뭔가 깨우치게 되는.
[김효실] 드라마를 많이 보셨다. 신중한 변호사의 슬리퍼와 중간중간 발 긁는 자체가 형사사법제도의 ‘구멍’ 같은 걸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넥타이 꼭 매야 하고, 안경 쓰면 더 단정해 보이는. 그런 ‘쇼잉’이 형사사법적 정의에 영향을 준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한 블랙유머 요소아닐까. <어느 날> 자체가 그런 현실을 꼬집는 작품 같다.
비현실적 교도소가 메시지 반감 NG
[정덕현] 리메이크 작이 갖는 한계도 분명 있다. 현수가 고통을 겪는 교도소 풍경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마약에 문신까지 버젓이 새길 수 있는 교도소가 우리나라에 있나. 이런 비현실성은 작품이 말하려는 사회적 메시지를 약하게 만든다.
[남지은] 교도소가 세트장 느낌이 너무 난다. 현실감이 안 느껴진다. 박상범 형사나 신중한 변호사, 김현수 부모를 보고 있다가 장면이 교도소로 넘어가면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다. 너무 힘줬다.
[정덕현] 교도소를 보면 리얼리티보다 장르물의 색깔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연출했다. 한국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짚어 사법 현실의 허점들을 깊고 다양하게 드러냈다면 장르적 재미와 함께 드라마가 하려는 사회적 메시지도 무게감이 더했을 것 같아서 아쉽다.
[김효실] 왜 전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았을까도 의문이다. 장르물은 몰아봐야 제맛인데. 매주 주목받으려고 했다면 작전 실패다. 극의 재미가 반감됐으니. 오히려 다 보여주고 작품 재미를 높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저나 김현수는 형사의 말처럼 ‘천사의 얼굴을 한 괴물’인가, 아니면 진짜 억울한 천사인 건가. 미국편과 영국편의 결말은 같은가.
[남지은] 음...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 원작은 범인이 확실하게 나오는데, 미국편은 애매하다. 영국편과 미국편을 섞고, 2021년 오늘의 한국도 담은 <어느 날>이 어떤 결말을 따를지는 끝까지 봐야 알지 않을까?
<그래서 볼까 말까>
김효실/ 결말이 궁금하지만, 한국편을 굳이 애써 볼 필요는
정덕현/ 메시지 무게감 아쉽지만, 연기 구멍 없으니 한국편은 꼭
남지은/ 한국편 시작했다면 영국·미국편까지 쭉 비교봐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