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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궁정 휴머니스트, 군주의 ‘위엄’에 딴죽을 걸다

등록 2022-03-06 10:22수정 2022-03-06 10:29

[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조반니 폰타노

전 지식과 정치 경험을 혼합해
군주가 따라야 할 실천 덕목 제시
군주의 자기 절제와 행위 양식
이를 가르친 궁정인 역할 주목
1488~1494년에 제작된 폰타노의 흉상(Museo di Sant'Agostino, Genoa 소장; 웹 갤러리 오브 아츠)
1488~1494년에 제작된 폰타노의 흉상(Museo di Sant'Agostino, Genoa 소장; 웹 갤러리 오브 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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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년 나폴리의 왕 페란테는 자신의 궁정이 자랑하던 휴머니스트 문인 폰타노에게 어린 알폰소의 교육을 부탁했다. 장차 남부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아라곤 가문의 왕위를 잇게 될 아들에게 군주가 갖추어야 할 교양과 덕성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이에 부합하듯 폰타노는 이 미래 군주의 개인교사로 활동하면서 그와 관련된 작은 책자 하나를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1468년 저술된 <군주론>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기서 폰타노는 “관대함”과 “자비”를 최고의 덕목으로 손꼽으며 “정의롭고 경건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라면 군주에게는 “신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덕의 정치 강조했던 위대한 폰타노’

폰타노는 4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나폴리의 전제군주를 위해 일했던 전형적인 궁정 지식인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가 인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1495년 프랑스의 왕 샤를의 침공 이후 자신이 섬기던 군주를 등지고 나폴리의 왕권을 샤를에게 넘기는 일에 나서기도 했는데, 바로 이 점에 주목해 그를 폄훼했던 당대 피렌체 역사가 귀차르디니의 신랄한 비판도 그런 평가가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폰타노는 오래도록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당대 최고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일찍이 비온도는 그저 약관에 불과했던 폰타노를 움브리아 지역을 대표하는 천부적인 문인으로 소개했고, 16세기 초 베네치아의 인쇄업자 마누치오는 폰타노의 해박한 고전 지식에 주목해 그를 “위대한 폰타노”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군주론>은 이와 같은 휴머니스트 폰타노의 고전적 감수성이 현실 정치 경험과 만나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르네상스기 휴머니스트 특유의 ‘교육논고’ 형태를 띠고, 정치의 문제를 좀 더 폭넓은 ‘도덕철학’의 한 유형으로 다룬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테다. 달리 말해 폰타노는 특정 정부나 통치형태에 대한 선호를 표명하거나 어떤 추상적인 정치이론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윤리적’인 맥락에서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논의를 집중했다. 그가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공화정’기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를 거론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페트라르카 이래 이탈리아의 여러 휴머니스트들은 고전적 이상에 기초해 당대의 여러 문화적 병폐를 치유하고 그것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개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다면 폰타노는 이처럼 ‘덕의 정치’를 꿈꾸던 휴머니즘 전통의 적자였다. 그래서일 테다. 폰타노는 ‘내적인 자기 규율’과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 양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을 강조한다. 그의 논의가 그저 당위론에 머물기보다 조숙한 현실주의자의 그것과 닮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거기에는 군주의 도덕성이 곧 공동체의 안위와 직결되고, 군주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어떻게 대중의 눈에 비치는가의 문제에 군주의 평판이 달려 있다는 다분히 현실적인 관념이 흐르고 있다.

아마도 폰타노가 흔히 ‘위엄’이나 ‘존엄’ 혹은 ‘왕권’ 등으로 옮겨지는 “마이에스타스”(maiestas; majesty)의 의미를 새롭게 규명하면서 군주의 권위에 대해 논의한다는 점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폰타노는 젊은 알폰소에게, 군주의 명성을 고양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군주에게 합당한 모든 말과 행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폰타노에 따르면 군주는 언제나 공적 존재이며, 따라서 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신민들의 “사랑을 받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그럴 경우에만 군주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며, 그게 없다면 어떤 군주도 마이에스타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혈통이나 신분 따위가 아니라 정의, 경건함, 관대함, 그리고 자비가 군주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규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들 모두 시간과 공간 그리고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일견 상대주의적인 생각에서다. 마치 설익은 역사주의자의 주장을 보는 듯하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폰타노가 그와 같은 덕목을 추구하려 하기보다 “그러한 덕에 반대된다고 회자되는 악덕을 피하는 일”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소위 ‘자유교양학문’(bonarum artium)의 연마였다. 휴머니스트로서 그가 젊은 알폰소에게 고전에 입각한 교양교육에 힘쓸 것을 당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폰타노는 자신과 같은 ‘궁정인’(aulicus)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라고 거듭 이야기한다.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공평무사하게 신민을 대하고, 주위 인사들의 조언에 언제나 눈과 귀를 열어두라는 강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군주론>은 단순히 군주를 위한 교본이라기보다, 군주를 교육하는 휴머니스트 지식인의 ‘자기 변론서’라고 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설령 군주의 권위를 인정한다 해도, 폰타노가 군주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488-94 폰타노의 측면 두상을 조각한 부조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웹 갤러리 오브 아츠)
1488-94 폰타노의 측면 두상을 조각한 부조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웹 갤러리 오브 아츠)

군주의 최대 악덕은 분노”

1490년 그가 페란테에게 보낸 편지가 사뭇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여러 현안과 관련해 당시 그와 페란테 사이에 작지 않은 이견이 있었던 듯하다. 아무튼 그 때문인지 그는 궁정인의 올바른 목소리를 저버린 페란테의 곁을 떠나겠노라 당당히 이야기했다. “저를 만든 것은 결코 폐하가 아닙니다”라는 강한 자의식의 표출과 함께였다. 그렇다면 폰타노가 꿈꾼 것은 플라톤의 철인 군주 이상을 구현하는 휴머니스트-지식인의 능동적인 역할이 아니었을까?

폰타노는 “오만”(superbia)을 피하고 “형평”(aequabilitas)의 원리를 지키라고 알폰소에게 조언하면서, “분노”(ira)야말로 군주가 피해야 할 가장 커다란 악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마이에스타스의 적이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저술된 <군주론>이 바로 비로소 그해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의 혼탁한 정치세계와 르네상스인 폰타노가 꿈꾼 덕의 정치를 떠올리면서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간 질문이다.

르네상스는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던 지적 운동이었다. 14세기 이후 백가쟁명의 지성사를 검토하는 ‘르네상스와의 대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만난다.

15세기말 폰타노의 얼굴을 새긴 초상 메달 (위키피디어)
15세기말 폰타노의 얼굴을 새긴 초상 메달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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