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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러시아 혁명정부의 ‘도구’였던 예술, 순수의 시대는 올까

등록 2022-03-19 08:59수정 2022-03-19 14:44

[한겨레S]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_ 선전미술과 문화전쟁

체제선전, 레닌·스탈린 찬양 도구인
옛 소련 예술작품 비난하던 미국
비밀리에 만든 선전기관 공작 통해
잭슨 폴록 홍보 열올리며 체제 경쟁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 <연설대 위의 레닌>, 1947년, 캔버스에 유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 <연설대 위의 레닌>, 1947년, 캔버스에 유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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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우리의 그림 붓, 광장은 우리의 팔레트.”

러시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는 1918년 이렇게 노래했다. 과연 그랬다. 1917년 러시아 민중들은 노동자·농민 중심의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가 세워진 것이다. 혁명의 여파는 예술계에도 곧 들이닥쳤다. 이제 예술가는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고, 그의 예술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꽃피게 될 것이었다. 마야콥스키의 글은 그런 장밋빛 포부를 담고 있었다. 자,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상을 담지하는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러시아 혁명정부는 1934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자신들의 공식 예술 기조로 선포하면서 이 물음에 답했다. 이제 작가들은 혁명에 대한 열정, 착취에 대한 증오를 예술에 반영해야 했다. 주 관람자인 대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실적인 예술, 그리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선전 예술,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옛 소련의 당원 화가였던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1881~1963)의 대표작 <연설대 위의 레닌>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연방국가의 창설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연단 위에 등장했다. 아래에는 군중들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열광한다. 그런데 그림 속 레닌의 모습은 ‘민중의 동지’라기에는 다소 위화감이 든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각도로 그려진 그의 거대한 모습은 대중들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연출은 신비감을 높여주는 데 일조한다. 그림은 레닌이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은 레닌뿐 아니라 그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스탈린 개인을 이상화하고 찬양하곤 했다. 예술은 국가의 통제 아래 소비에트 건설에 유용한 선전 계몽의 도구로서만 기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다니! 가뜩이나 소련의 사회주의와 각을 세워왔던 자유주의 국가 미국은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을 비난할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1954년에 한 연설은 그런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예술가들이 진정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창작의 자유를 누리는 한, 예술은 건강한 진보가 이뤄지며 건강한 논의들이 개진될 것입니다. 독재정권의 예술에 비하면 이 얼마나 다른 모습입니까? 예술가가 정권의 도구이자 노예가 될 때, 그리고 예술가가 정치적 대의를 선전하는 선봉에 설 때, 진보는 발목을 잡히고 그 창의성과 천재성은 파괴되고 맙니다.” 어쩌면 당시 예술가들은 아이젠하워의 연설에 감동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소련의 체제 미술을 비난했던 미국도 자신의 정치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예술을 이용했던 사실 말이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냉전이 첨예하던 시대, 미국은 소련을 다방면으로 압도해야 했다.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경제와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법. 이 ‘문화전쟁’의 수행자로 나선 곳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었다. 시아이에이는 1950년부터 1967년까지 ‘문화자유회의’(CCF)라는 선전기관을 비밀리에 만들어 첩보 작전을 수행했는데, 이 작전의 선택을 받은 미술이 바로 잭슨 폴록(1912~1956)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였다.

잭슨 폴록, &lt;가을의 리듬&gt;, 1950년, 캔버스에 에나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잭슨 폴록, <가을의 리듬>, 1950년, 캔버스에 에나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폴록의 대표작 <가을의 리듬>을 보자. 온통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선과 흩어지듯 박힌 점뿐이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형태가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1947년 1월 폴록은 갑자기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눕혀 놓고 그 위에 전통적인 유화물감 대신 매우 묽은 액상의 가정용 페인트를 똑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폴록의 유명한 드리핑(dripping) 기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다른 화가들이 캔버스를 세워 붓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스케치 하나 없이 바닥에 화폭을 깐 뒤 격렬하게 페인트를 뿌리고 엎지르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유형의 그림인 ‘액션 페인팅’은 폴록을 일약 ‘가장 앞서가는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덕분에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그림은 시아이에이의 간택을 받을 수 있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와 달리 미국의 예술은 자유를 수호한다는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그의 화법은 이에 딱 들어맞았다. 전직 시아이에이 요원인 도널드 제임슨이 1994년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듯 말이다. “우리는 추상표현주의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실제보다 더 형식적이고 고루한데다가 틀에 박힌 미술로 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작은 ‘기다란 목줄’이란 이름 아래 진행됐다. 조종하되, 목줄을 쥔 자의 모습은 긴 줄로 인해 쉽사리 보이지 않도록 진행한다는 의미였다. 성과는 엄청났다. 시아이에이의 문화자유회의는 35개국에 지부를 두고 유력 잡지를 20종 이상 발행해 추상표현주의의 우월함을 적극 홍보했다. 이와 동시에 파리,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새로운 미국 회화전’을 대규모로 열었다. 이로써 미국은 실험예술과 진보적인 예술을 대변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애초부터 추상표현주의가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수성’ 때문이 아니라 뚜렷한 ‘정치성’ 때문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격하며 “예술가의 미적 상상력은 이데올로기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면 이 말은 곧 스스로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했던 셈이다.

냉전의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구별할 것 없이 정치권력이 체제선전을 위해 예술을 손에 쥐고 흔들던 시대도 ‘흑역사’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야말로 예술은 진정한 독립을 이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권력은 이미 오래전에 시장으로 넘어갔다. 예술은 옛 권력으로부터 해방됐을지 몰라도, 자본이라는 이 새로운 권력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날의 예술을 보자. 광고미술은 시장경제의 선전 예술임이 자명하며, 순수미술조차도 일단 미술시장의 트렌드에 맞아야 잘 팔리고 살아남는다. 나아가 예술품은 세금 회피에 유용하며 거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단지 정치권력의 개입과 간섭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시대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전 영국 하원의장 리처드 크로스먼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직한 선전선동 활동이란 그러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영리하고 능력있는 선전선동가는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리  |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그림을 매개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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