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91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누벨바그 거장 감독 장뤼크 고다르. AFP 연합뉴스
프랑스인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종의 국부 같은 것들이 있는데, 대문호 에밀 졸라, 에펠탑, 그리고 13일(현지시각) 죽은 장뤼크 고다르가 그렇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누벨바그’(새로운 흐름) 사조를 통해 현대영화는 죽었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현대영화를 다시 만들고 구축한 사람. 영화인들에게 고다르는 단순한 경배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전설이자 이상이었고, 영화 자체이면서 시대의 상징이었다. 영화든 시대든 ‘고다르 이전’과 ‘고다르 이후’로 분류됐을 정도다. 한편으론 우리 시대가 낳은 최고의 기이하면서도 해괴한 영광의 존재였다.
고다르에 대한 개인의 평가는 처음 어떤 작품을 접했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예컨대 1967년작 <중국여인>을 ‘첫 영화’로 영접한 이들은 어디 가서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고다르를 끔찍한 감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화면에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관객을 향해 정치적 수사를 퍼붓는 여주인공과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토론을 벌이며 뒹구는 5명의 친구들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젠체하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중국여인>은 고다르가 마오이즘, 즉 마오쩌둥 사상에 빠졌을 때 만든 급진적 영화이며, 내용만큼 형식과 스타일 모두 파격적 방식으로 찍은 작품이다. 그는 그렇게 현대영화를 죽였으며, 동시에 현대영화를 탄생시켰다.
첫 영화로 1962년작 <비브르 사 비>를 조우한 사람들은 그를 매우 섬세한 감성을 지닌 시네아스트(영화인)로 기억한다. 이들은 고다르 하면 줄곧 <비브르 사 비> 여주인공 나나(안나 카리나)를 언급한다. 극 중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을 보는 나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기억한다.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려 했던 여인이지만, 일찍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잔 다르크와 같은 죽음이 준비돼 있음을, 그 단 한 컷의 근접촬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영화광들은 대개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해 ‘제 멋대로’의 팬심을 드러내곤 한다. 이 영화를 하워드 혹스의 고전 갱 영화 <스카페이스>에 대한 고다르 식 오마주로 읽는다. 고다르 영화의 모든 형식과 스타일(의도적 단절로 점철된 인물 간 대화, 무의미해 보이는 점프컷의 남발, 스토리의 비연속성, 그다지 슬프거나 안타깝지 않은 결말, 그래서 더 사실적인 극의 구조 등)이 이때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네 멋대로 해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좀도둑질을 일삼는 한 남자(장 폴 벨몽도)가 경찰을 죽이고 미국에서 온 여자(진 세버그)와 도피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다. 고다르 영화 중 가장 비정치적이면서 가장 도발적이고 발칙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반면, 2013년작 <필름 소셜리즘>을 먼저 접한 젊은 영화학도의 머릿속에는 고다르가 정치색과 정치적 편향이 강한 감독으로 입력돼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고다르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저을 수도 있다.
고다르는 우리 시대의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다. 많은 이들은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척하며 살아간다. 스스로 읽었다고 자기 최면을 하기도 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의 명성 때문이다. 고다르와 그의 작품들이 그렇다.
명성과 혁신성, 혁명적 성향에 견줘 역설적으로 오래 살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향년 91. 그는 스위스에서 조력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죽음도 결코 평범하진 않았던 셈이다. 그가 즐겼던 점프컷 기법을 죽음에도 사용한 것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향해 고다르는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워. 니들 멋대로 (생각)해!”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였던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들, 프랑수와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와의 재회가 행복하기를. 편히 영면하기를. 아듀, 고다르. 아듀, 현대영화여.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