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처음 알았네. 간장도 콩으로 만드는지 몰랐어요.”
배우 이광수가 전남 담양에서 50년째 전통 장류를 빚어온 기순도 장인 앞에서 말했다. 장인이 ‘된장과 간장을 한꺼번에 만드는’ 전통 장 이야기를 들려준 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얼핏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의 한 장면 같지만, 그렇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코리아 넘버원>은 예능 프로다.
“어, 진짜요? 그걸 모르시는 게 신기해요.” “아니, 한국인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장인과 전수자의 장난 섞인 ‘일침’이 날아든다. “저는 오늘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며 맞받는 이광수의 말에 웃음이 번진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코리아 넘버원> 연출자 정효민 피디는 예능 프로 소재로 전통을 택한 이유를 묻자 “우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부르고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모르는 것,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잘 모르는 게 많더라”고 말했다. 기순도 장인이 대를 이어 360여년 지켜온 씨간장만 해도,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만찬에 오르면서 국내 언론보다 외신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특별한 간장”(<아에프페> 통신)이 새로워서다.
<코리아 넘버원>을 연출한 정효민(왼쪽), 김인식 피디. 넷플릭스 제공
<코리아 넘버원>은 가까이 있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한국 유·무형 문화재의 가치를 땀방울 가득 섞인 웃음으로 되살린다. 유재석, 이광수, 김연경이 전국 8곳의 장인들을 찾아가 하루 노동을 하며 몸으로 부딪쳐 재미와 의미를 모두 건진다. ‘코리아 넘버원’은 물론, ‘세계 최고’ 여자 배구선수인 김연경의 예능 첫 고정 출연작이기도 하다. 공동 연출자 김인식 피디는 “과거 다른 예능 프로 <일로 만난 사이>(tvN)를 만들면서 출연자들이 열심히 노동하고 땀 흘리는 모습을 시청자들도 좋게 봐주신다는 걸 확인했다. 전통 노동을 담은 <코리아 넘버원>도 <일로 만난 사이> 같은 노동 예능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넘버원’끼리 모여 만드는 ‘티키타카 케미’(호흡이 잘 맞음)가 재미의 큰 축을 차지한다. 다큐라면 엄격, 진지, 근엄한 모습 위주로 등장했을 장인들이 유머 감각까지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덕분이다. 장인들이 “너나 잘해”라며 농을 치거나 “세상에 쉬운 일이 없지?”라고 토닥이는 모습을 보면, 신입사원 곁의 ‘사수’처럼 친근하다. 노동 시간 중간에 등장하는 새참과 식사는 훌륭한 ‘먹방’이요, 전통 건축물·공예품 등의 아름다운 자태와 그림 같은 풍경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볼거리가 된다.
<코리아 넘버원>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등 기성 방송사를 거친 정효민 피디가 제작사를 차린 뒤 처음 만든 예능이다. 그는 “넷플릭스와 협업하며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여럿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문화방송)이 성공한 뒤부터 예능 프로의 필수 요소가 된 ‘자막’을 대거 걷어낸 게 새로운 시도 가운데 하나다.
“해외 시청자들의 접근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였으나, 다른 장점도 발견했다. “자막을 위해 비워뒀던 화면 공간을 다 쓸 수 있게 되니까 출연자 표정을 더 잘 보여줄 수 있고, 카메라 워킹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현장 음향, 효과음 등 소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됐고, 드라마처럼 <코리아 넘버원>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 썼다.”
티브이용 예능 프로는 광고 문제로 회당 90~100분을 채워야 한다. 오티티(OTT)용 <코리아 넘버원>은 회당 40~50분이다. 8부작을 다 한 번에 공개해서 가능한 선택이다. 회차별 제목은 기와(장흥), 장(담양), 갯벌(신안), 모시(서천), 죽방렴 멸치(남해), 쪽빛(나주), 막걸리(부산), 나전칠기(원주)다. 김 피디는 “첫 편부터 ‘정주행’하면 출연자들이 서로 서먹해하다가 점차 친해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서도 “한 회 한 회마다 웃음과 재미를 다 느낄 수 있으셨으면 하고 만든 프로라서, 웃음이 필요하면 갯벌편, 아름다운 경관이 필요하면 쪽빛편, 배가 고프면 장편을 보는 등 시청자 분들이 자유롭게 골라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넘버원>은 ‘19금’ 콘텐츠가 넘치는 오티티에서 모처럼 ‘전체 관람가’의 무해한 예능으로 입소문을 탔다. 지난달 25일 공개 뒤 한국을 비롯한 7개국 넷플릭스 ‘키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정 피디는 “사십대 초반인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마다 나전칠기 장롱이나 수납장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런 가구가 집에서는 점차 사라지는데, 젊은 세대가 ‘힙하다’고 하는 카페에 가보니 소품으로 놓여있더라”며 “<코리아 넘버원>은 전 세대가 ‘익숙함’과 ‘새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프로”라고 말했다.
김 피디도 “전통 기와를 만드는 노동을 체험한 뒤 제와장(기와 장인) 선생님이 ‘기와 한 장 한 장이 다 작품’이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코리아 넘버원>은 다큐에 견주면 ‘입문서’ 수준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제대로, 그리고 유쾌하게 다뤘다”고 말했다. 시청자도 <코리아 넘버원> 속 전통 노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와 한국관광공사는 이달 들어 <코리아 넘버원>을 테마로 한 관광 코스를 외국인 관광객 전용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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