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약한영웅> 이미지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새 학기를 맞은 은장고등학교 1학년 5반 교실. 맨 뒷자리를 차지한 덩치 큰 남학생이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다른 남학생 머리에 침을 뱉는다.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다음 폭력의 ‘타깃’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 모른 척한다.
가해자는 다음 먹잇감으로 맨 앞자리에 앉은 몸집이 왜소한 학생을 골랐다. 그의 이름은 ‘연시은’. 뒷자리 학생이 시은에게 다가가 성추행하며 낄낄 웃는 순간, 예상치 못한 팔꿈치 공격이 들어온다. ‘보통의 약자’인 줄 알았던 시은은 가만하지 않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에 대한 공포를 뼛속 깊이 각인할 때까지 반격을 멈추지 않는다.
웹툰 <약한영웅> 1화는 이렇게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약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은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강조하며 시작된다. 웹툰이 그리는 시은의 이야기는 2018년 5월 첫 편 공개 뒤 4년이 흘러 219화까지 쌓였다(6일 기준). 체급 차이를 무시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시은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시은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함께 성장해나간다.
학원액션물인 <약한영웅>은 독자에게 ‘약함’과 ‘폭력’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래집단에 강한 영향을 받는 십대 청소년들의 시기·질투 등의 심리와 우정을 섬세하게 그린 ‘관계성 맛집’이기도 하다.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약한영웅>(웨이브)이 사랑받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연재 시작부터 4년이 지난 현재까지 네이버웹툰 요일별 인기 상위 5위권 안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 중국, 북미,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해외에도 수출됐다.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며 웹툰에도 관심이 쏠린다. 원작 웹툰을 만든 서패스·김진석 작가는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여전히 주간 연재 마감으로 바쁜 두 작가를 <한겨레>가 웹툰기획사 재담미디어를 통해 서면으로 만났다. 웹툰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아울러 들었다. 두 작가의 일문일답을 각각 나눠서 전한다. 아래는 스토리를 맡은 서패스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서패스 작가의 캐리커처.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웹툰 원작 드라마가 탄생했습니다. 원작 스토리 작가로서 소감이 어떠신가요?
“(드라마) 공개 첫날 바로 완결까지 정신없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약한영웅>이라는 제목 자체에 많은 고민을 했던 만큼, 처음 화면에 제목이 뜨는 순간부터 소름이 돋았습니다.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주신 감독님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제부터 만화가를 꿈꾸셨나요? ‘서패스’라는 이름을 쓰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만화가를 꿈꾼 건 어린 시절 부터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만화 관련된 크고 작은 작업을 부업으로 이어가다가 <약한영웅>을 통해 완전히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서패스는 ‘뛰어넘다’는 단어 ‘Surpass’에서 착안하여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웹툰 <약한영웅>은 언제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내가 보고 싶은 학원만화를 내가 그리자’는 마음에서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운전할 때는 머릿속으로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차를 타고 출근하던 중, 병원 앞 화단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연시은의 모습(33화 안수호(8)편 참조)을 떠올렸습니다.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꽤 오래된 시점이라 연도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 후 은장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목인 ‘약한 영웅’의 의미는 시은과 수호의 관계를 그린 ‘안수호편’(26~37화)을 통해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신 적 있는데요. ‘폭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와 친구를 지키려는 사람’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약한 영웅’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친구인 안수호에게 대입한 것이었습니다. 영웅이란 주변의 조롱과 멸시 앞에서도 자신의 꿈을 굳게 지키고, 끝내 이뤄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렇게 살고자 다짐하기도 하고요.
질투와 시기는 집단 안에서 더욱 잔혹한 폭력으로 변질됩니다. 집단의 작은 틀 안에 타인을 재단하려는 비열한 시선에게서 꿈꾸는 모든 이들이 상처입지 않고 꿈을 지켜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투영하고자 하였습니다.”
웹툰 <약한영웅> 이미지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시은이 수호에게 감명받는 장면에서 “머슴에겐 영웅이 없다 하였다. 왜냐하면 영웅은 영웅만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괴테의 격언을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꿈꾸는 모든 이들이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괴테의 격언은 꿈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는 분명히 존재하니, 포기하지 말고 버티기를 바라는 의미로 인용하였습니다.”
―시은에게 큰 영향을 주는 수호 캐릭터가 드라마에서는 웹툰과 달리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로 각색됐는데요. 드라마 속 수호는 어떻게 보셨나요?
“최현욱 배우의 안수호는 매우 멋지고, 훌륭했습니다. 슬픈 연기를 하지 않고, 매사 유쾌한데도 수호가 나오면 슬펐습니다. 일상에서도, 액션에서도 춤을 추듯 몸을 쓰는 시원한 움직임이 너무 멋졌습니다. 몸을 잘 쓰는 배우구나 느꼈습니다. 동적인 연출이 필요한 드라마 장르에서 매우 현명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수호가 ‘호감캐’였던 만큼, 시은의 병원신에서는 저도 울었습니다. 원작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에게 구원을 받았다면, 드라마에서는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에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질적으로 구원의 서사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웹툰에서 시은의 과거 회상으로 나오는 ‘안수호편’(26~37화)을 각색했는데요.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신다면요.
“(드라마) 첫 화 연시은이 자신의 뺨을 때리고, 커튼 액션이 끝난 순간 ‘이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교하게 연출되고 편집된 액션 장면 하나하나가 굉장한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은과 범석이가 대립 상태에서 서로 이해에 대해 말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계 안에서 풀어내기 어렵고, 복잡한 심리가 얽혀있는 상태를 한 씬의 대화로 녹여낸, 감독님의 탁월한 내공이 담긴 장면이라 느꼈습니다.”
―웹툰과 드라마 모두 어른들이 자주 등장하지 않아요. <약한 영웅>에서 어른이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학생들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의 주체는 늘 같은 또래이고, 공포의 대상도 언제나 같은 또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숙제 같은 것이고, 이 악순환은 매 세대 반복됩니다. 오롯이 본인들의 힘으로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웹툰 <약한 영웅> 속 캐릭터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남학생끼리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도 섬세하게 묘사되는데요. 혹시 모델로 삼은 실존 인물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상상과 경험을 최대한 믹스해서 표현합니다. 결국 상상의 힘을 더하는 것은 리얼리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린 시절 겪었던 인상 깊었던 친구들, 순간들을 최대한 반영해 묘사하였습니다. 완벽하게 실존하는 인물은 없고 인상 깊었던 여러 장면을 합치고 나누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웹툰 속 연시은, 안수호, 오범석 캐릭터를 배우 박지훈, 최현욱, 홍경이 연기했다. (웹툰 이미지는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드라마 캐릭터 포스터 이미지는 웨이브 제공)
―웹툰 연재가 어느덧 4년을 넘겼는데요. 작가님께 <약한영웅>은 어떤 의미인가요? 연재 전후로 변화한 게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근 4년 <약한영웅>만 작업하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마치 실존 인물들이란 착각이 들 때도 간혹 있습니다. 그만큼 의미가 큽니다.
웹툰 작가에게 네이버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 또한 상당히 큽니다. 저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고 싶었습니다. 꿈을 이룬 심리적인 만족도의 변화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무대에서 재미있는 만화를 연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언급하시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작가에게 건강문제는 떼어내기 힘든 굴레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행복이냐 꿈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게 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요. 현명하게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사실 작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직업인들이 동일하게 가진 문제이고, 딜레마라 생각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독자가 <약한영웅>을 사랑하고 있죠.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자 반응 가운데 인상 깊은 내용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간혹 제 머릿속의 세계를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고 계신 것에 대해 피부로 와닿지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놀라운 경험입니다. 아마도 원작자인 제가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기에, 그 진정성이 많은 독자분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배지훈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항상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약한영웅> 구상에 영감을 준 작품이 있나요? 작가님에게 영향을 준 만화가, 만화작품들이 궁금해요.
“국내외의 정말 수많은 작품들에 영향과 영감을 받았기에 손에 꼽기가 힘듭니다만, 굳이 꼽자면 <드래곤볼>, <슬램덩크>, <베르세르크>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내가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직업을 택했을 만큼, 저는 만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면과 플랫폼의 모든 만화작가분들이 저의 우상입니다.”
―웹툰 <약한영웅> 이야기는 이제 ‘최종 빌런’으로 보이는 나백진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데요. 이 대결이 끝나면 <약한영웅>도 완결인가요?
“<약한영웅>은 영등포에서 나백진과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의 상황은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스핀오프나 시퀄로 풀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를 풀 수도 있고, 완결 이후 열린 이야기를 독자들에 맡기고 그대로 끝맺음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 가을 즈음이면 완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다소 흐릿한 답변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패스 작가는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말에, “영순위는 언제나 독자분들”이라며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원작자인 제가 <약한영웅>을 아끼는 만큼, 저 자신이 만족할만한 작품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매듭짓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