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 주연을 맡은 배우 이성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티브이(TV)에 처음 나오는 사람처럼 전화나 문자를 많이 받긴 했어요. 드라마가 잘돼서 연기가 주목을 받은 건데, 하도 (진양철 회장) 연기 이야기를 하니까 좀 민망하더라고요. 작품 덕이죠. 작품이 사랑받아야 배우도 빛나는 거니까요.”
지난해 하반기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재벌집 막내아들>(JTBC)에서 상종가를 친 배우 이성민은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기가) 딱 한달 지나니까 끝났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배우 이성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그가 주연한 영화 <대외비> 개봉(1일)을 앞두고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열린 인터뷰 현장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1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형사록> 인터뷰 때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영화 <대외비>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의도치 않게 최근 출연한 세 작품에서 모두 내 나이보다 많은 노인을 연기했다”며 조금은 아쉬움이 담긴 마음을 고백했다. “영화 <리멤버>와 <대외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순서로 찍으면서 노인 연기에 감을 잡아가며 조금씩 나은 연기를 한 것 같은데, ‘이 순서대로 공개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외비>에서 그가 연기하는 권순태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처럼 카리스마와 판을 흔드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빛보다는 그늘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권순태는 변변한 직함 하나 없지만 중앙 권력과 직접 소통하면서 돈과 자리, 사람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버린다. 20년간 부산 지역 텃밭을 다지면서 지역구 공천을 눈앞에 두고 있던 전해웅(조진웅)은 권순태의 농간으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조폭 사채업자 김필도(김무열)와 손잡고 권순태에게 도전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 권순태처럼 해웅 역시 점점 악마로 변한다. 세 악인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이원태 감독의 전작 <악인전>(2019)의 정치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 <대외비>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원태 감독과는 옆 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수다도 떠는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조진웅과는 과거 조·단역에 머물던 2009년 드라마 <열혈장사꾼>(KBS2)에서 처음 만난 오랜 인연이고, 김무열과도 <소년심판>(넷플릭스)에서 함께해 편한 분위기에서 촬영했지만, 마냥 편하게 느낄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디렉션도 많이 받고 연출자에게 야단도 맞는다. 그런데 나이 들면 그런 사람이 없어져서 나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긴장하고 살 수밖에 없다.”
영화 <대외비>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대통령’을 연기한 <남산의 부장들>(2020) 출연 이후 작품들에서 그는 주로 큰 힘을 가진 권력자 역할을 맡아왔다. 특별히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이 영화 이후 비슷한 이미지의 캐스팅 제안이 많았다고 한다. 이성민은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 전보다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받고 있긴 하다. 이제 각진 거 그만하고, 숨 좀 쉬면서 풀어져서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첫인상을 가진’ 두 중년 남자가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하려다 흉악범으로 오해받게 되는 상황을 그린 코미디로, 이희준과 호흡을 맞춰 촬영을 마친 <핸섬 가이즈>(남동협 감독, 개봉일 미정)에선 오랜만에 유쾌하고 편안한 이성민의 귀환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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