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머니 노아트>라는 방송을 본 적이 있는가. “예술이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라는 슬로건 아래 화가들을 무대에 올려 오디션(경연) 하듯 경쟁시키고, 우승자의 출품작을 경매에 부쳐 1천~2천만원에 파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무려 <한국방송2>(KBS2)다. 연출자 4명, 제작 피디(PD) 9명, 작가 9명이 참여하고, 전현무·봉태규·개코·김민경 등을 내세운 호화 진용이다. 하지만 시청률은 두달째 1%대이다. 하기야 미술은 워낙 대중성이 떨어지는 콘텐츠고,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혹자는 미술시장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내심 기대하며, <노머니 노아트>가 “미술계의 <골목식당>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런 기대를 품기엔 작가(화가) 소개나 경연 방식이 미술애호가층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쇼미더머니>(엠넷) 못지않은 노골적인 제목에, 아무리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을 차용한 거라지만 무대 위의 거대한 소변기 장식까지. “도무지 민망하고 ‘항마력’이 달려서 못 보겠다”는 섬약한 예술인들이 속출한다. 프로그램의 핵심이라 할 만한 라이브 드로잉 쇼는 주어진 주제에 맞춰 작가 4명이 회전하는 무대 위에 다닥다닥 붙어서 20분간 작업하는 방식이다. 도통 작가들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 없다. 분리되고 안정된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장차 프로그램이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예능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일단 시도 자체로 환영할 만하다. 다채널 시대에 예능 편수는 늘었지만,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예능은 ‘먹방·쿡방’이 여전히 강세인 가운데, 팬데믹 땐 ‘집방’이 유행이더니 팬데믹이 끝나고는 여행 예능이 쏟아진다. ‘먹방·쿡방+여행=외국 가서 먹거나 요리한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출연진만 다르다. 이럴 때 한번도 본 적 없는 미술 예능이라니. 시기도 적절하다. 미술품 투자가 대중화되면서, 지난해 처음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다. 명품·한정판보다 희소성과 유일성을 갖춘 상품이 미술품이다. 심미적 가치와 기호적 가치는 또 어떤가. 미술품은 소유가 곧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재화이자, 투자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이다. 이런 속성을 중산층과 엠제트(MZ)세대가 알아버렸다. 어쩌면 미술은 티브이(TV)와 궁합이 잘 맞는다. 시각적 쾌감과 이미지는 티브이를 통해 전달하기 쉽다. 또한 인지도가 가격을 올리는 미술시장에서, 작가 이름 알리기에 방송만한 것이 없다. 특히 팝아트가 유행하는 미술계 동향은 작가를 무대로 불러내 스타로 만들 수 있는 예능 기획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런 ‘윈윈’의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봉태규의 말처럼 지금이 미술 예능이 흥할 ‘변곡점’일 수 있다.
여기에 특이한 라이프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래퍼를 알게 되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엠넷)를 통해 여성 댄서를 알게 되듯이. 잘 알지 못했던 예술 분야를 통해, 평소 접하지 못했던 정규분포 바깥의 삶을 보게 된다. 트랜스젠더 방송인 풍자가 초상화 모델로 나오고, 다운증후군 화가 정은혜가 조현병 과거력을 말할 수 있는 방송이기에, 임아진 작가가 레즈비언임을 밝혀도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는다. 17년차 대기업 직장인이면서 2천만원이 넘는 작품을 그리는 미미 작가가 있는가 하면, ‘스리잡’을 뛰는 작가도 있다. 경매에 참여하는 컬렉터들도 흥미롭다. 물론 이들이 순전히 기분에 이끌려 돈을 ‘지르는’ 건 아니다. 경매에 오른 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미술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으며, 방송에 출품된 작품은 인지도가 높아질 것을 고려해 좀 더 고가에 팔리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그림 한점을 2천만원에 사는 ‘플렉스’를 구경하는 것은 문화충격의 효과를 준다.
결정적으로, 드물지만 예술적 체험의 순간이 있다. 민망한 와중에도 드로잉쇼는 작가의 개성과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지아혁 작가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드로잉쇼를 통해 자기 작업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드로잉쇼 내내 혼잣말을 하며 그 말을 캔버스에 켜켜이 겹쳐 적었다. 마지막에 작업 도중 말소리를 녹음한 휴대폰을 캔버스에 부착하고 재생시켰다. 이것은 경매에 출품한 그의 작품 <딴생각55>의 켜켜이 쓰인 글씨와 가운데 부착된 투명 레진 얼굴 조각상과 정확히 일치하며, 자신의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는 행위(과정)와 작품(결과)이 일치하고 기의와 기표가 일치하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느낌을 경험하라”는 프로그램이 반복하는 구호에 걸맞은 순간이자, 아트가 머니를 뛰어넘는 순간이기도 하다. 노머니이면 노아트지만, 아트가 곧 머니는 아니다. 당연하게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