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내한한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7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민 와 평생 식료품점을 하셨던 부모님께서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이민자로 저를 낳고 키우면서 주신 사랑과 모든 것을 이 작품에 담았습니다.”
다음 달 14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45)이 한국을 찾았다. 디즈니픽사의 첫 한국계 감독인 그는 첫 연출작인 <굿 다이노> 개봉 이후 7년 만에 내한했다. 30일 오전 언론시사회를 연 <엘리멘탈>은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맨 마지막에 손 감독의 부모님 사진을 보여준다. 이민자의 고단한 삶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그린 <엘리멘탈>이 탄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들이다. 손 감독은 이날 서울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굿 다이노> 개봉을 기념해 뉴욕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과 동생도 함께 갔는데 유리창 밖에 앉아있는 식구들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고생하면서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같은 여러 감정이 북받쳤죠. 픽사 스튜디오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에 네 영화가 있네, 그 이야기를 해야 해’ 동료들이 이야기했죠. 거기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불의 종족인 엠버의 부모는 파이어랜드에서 물, 불, 공기, 흙 등 네 요소(엘리멘트)가 공존하는 엘리멘트시티로 이사와 식료품점을 하며 엠버를 낳고 키운다. 엠버는 아빠의 식료품점을 물려받아 멋지게 성공하고 싶지만 마음은 자꾸 다른 곳을 향하고 부모가 결사반대하는 물의 종족 웨이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리멘탈>은 부모의 기대와 중압감에 힘들어하는 이민 2세의 고민과 문화간 갈등, 이민 2세들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미묘한 차별에 대해 그린다. 손 감독 역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애니메이터를 꿈꾸던 어린 시절 부모와 “맨날 싸웠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숙제 대신 그림을 그린 공책을 찢어버리고 늘 화를 내셨어요. 아버지는 큰아들인 제가 당신이 일군 식료품점을 물려받길 바라셔서 진로 문제로 늘 부모님과 다퉜어요. 하루는 아버지 가게에 애니메이터일을 하는 손님이 와서 아버지가 ‘연봉이 얼마냐’ 묻고는 제 진로를 바로 승낙하셨는데 엄마는 끝까지 반대하셨어요. 제 미술적 재능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건데 자신이 지나온 힘든 길을 자식이 따라 걷길 바라지 않으셨다고 해요.”
<엘리멘탈>은 동물이나 외계인도 아닌 물과 불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손 감독은 “화학 시간에 배우는 주기율표에서 ‘원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주기율표를 보면 마치 각 원소들이 사는 아파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릴 때 제가 살던 아파트도 떠오르고요. 수소나 바륨을 캐릭터화긴 어려워서 기본적인 네가지 원소를 캐릭터로 발전시켰죠.”
하지만 동물도 아닌 원소에 감정을 불어넣는 건 쉽지 않았던 작업.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이채연 쓰리디(3D) 애니메이터는 “불같은 인물이 아닌 불 자체의 일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물 종족인 웨이드는 젤리나 탱탱볼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물의 생동감을 보여주는 균형점을 찾는데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피터 손 감독이 모델이었던 애니메이션 <업>의 러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엠버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나고 자랐지만 웨이드의 삼촌으로부터 “우리 말 잘하네?”라는 말을 듣는 등 차별도 받는다. 피터 손 감독은 “외국인 혐오나 차별도 분명히 존재하고 차별을 경험하면 더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게에는 혐오를 드러내는 손님도 있었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어를 거의 못하면서도 손님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했던 아버지를 보면서 다양함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면서 자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다양한 문화∙인종 간 이해와 공감이 <엘리멘탈>의 주제의식으로 담겼다.
<엘리멘탈>은 지난 27일 폐막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전세계 최초 공개됐다. 피터 손 감독은 영화제가 선호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면서도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그가 주인공 캐릭터 ‘러셀의 모델이 됐던 픽사 애니메이션 <업>은 2009년 칸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첫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통통한 볼에 캡모자를 쓴 러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피터 손 감독은 오랜만의 방한에 대한 소감으로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왔어요, 고궁에서 본 한복이 정말 예뻤어요”라고 한국말로 답하면서 “한국에 오니까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30일 내한한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과 이채연 애니메이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