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웨스 앤더슨 감독은 ‘힙스터의 아이돌’, ‘힙스터의 제왕’으로 불린다. 주류 아닌 독특한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스크린 가득 채우는 그의 미장센 덕이다. 혹은 탓이다. 햇빛에 살짝 바랜 느낌의 파스텔톤 색감, 소박하면서도 흔해보이지 않는 레트로 스타일의 가구와 소품들, 강박적으로 좌우대칭과 수평·수직을 맞춘 다소 냉랭하고 정갈한 구도 등이 그렇다.
힙스터뿐 아니라 패션업계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감독도 웨스 앤더슨이다. ‘프레피룩’이라고 불리우는 클래식한 정장, 그 위에 걸치는 테니스 헤어밴드, 1970년대 스타일의 아디다스 저지와 빈티지풍 모피 코트 등이 <로얄 테넌바움>(2001) 등의 작품에 등장한 뒤 많은 명품 브랜드에서 다시 차용됐다.
이처럼 볼거리 가득한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77만명을 동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부터 한국에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진집 <우연히, 웨스 앤더슨>을 비롯해 서울 성수동 등 이른바 ‘힙스터 거리’에는 ‘웨스 앤더슨풍’의 사진 전시들이 지금까지도 잇따라 열리며 큰 성공을 거둬왔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28일 개봉하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힙스터들이 모든 장면을 캡처하고 싶을 만큼 극강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하다못해 난데없이 등장하는 외계인까지 사랑스럽다. 전작들은 세트에서 찍어도 현실이라는 전제를 깔았던 반면 이번 영화의 배경은 작품 속 작품 형태로 연극 무대의 세트이기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도시임에도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제어된 풍경을 보여준다.
영화는 연극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대본을 쓰는 극작가 콘래드 어프(에드워드 노튼)의 창작과정을 흑백티브이로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어프가 대본 속 배경을 타이핑하면 주요 무대인 가상의 사막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만들어진다. 냉전과 함께 우주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1955년, 운석이 떨어진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오기 스틴벡(제이슨 슈왈츠먼)이 네 아이와 함께 도착한다. 천재 과학소년인 아들 우드로(제이크 리안)의 발명대회 수상을 위해 왔지만 그에게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야 하는 마음의 짐이 있다. 다른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황량한 도시는 활기를 띠어 가는데 프로그램 진행 도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참가자들은 도시에 발이 묶이게 된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단순히 ‘팬시 영화’로 머물지 않는 이유는 작품마다 ‘어벤저스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출연진 목록이 말해준다. 이번 작품에도 고정 배우 제이슨 슈왈츠먼 외에 단골 배우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애드리언 브로디를 비롯해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마고 로비 등이 ‘앤더슨 사단’ 목록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사막도시 안의 사람들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연극 무대 안과 밖이 빠르게 교차하고 이중 삼중의 이야기 액자가 만들어지면서 이해하기 복잡하게 흐른다. 사실 기승전결이 완전하게 이해되는 선형적 이야기 구조는 웨스 앤더슨의 관심 밖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너무 쨍해서 더 쓸쓸해 보이는 풍경 아래 깔린 그리움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의 엄정함과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지닌 소년, 그리고 사랑과 일에 실패하고 현실에 치이는 어른들을 대비하며 영화는 이제는 끝나버린 한 시절에 대한 희미한 향수와 사람들 사이의 외로움과 연민에 대해 말한다. 웨스 앤더슨은 이 영화에 대해 “역사의 한 특정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 속에서 사랑과 외로움, 애통과 희망,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녹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 <애스터로이스 시티>의 주연배우 제이슨 슈월츠만(가운데)과 톰 행크스(오른쪽)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