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님 같은 분들인데 마침 근처에 있으니 저녁 먹자, 지금은 이런 말이 편하게 안 나오죠. 아무래도 말을 아끼게 되고, 그래도 어제 (주)지훈이와 〈더 문〉 포스터 앞에서 사진 찍어 김용화 감독님한테 응원 메시지를 보냈어요.”
배우 하정우는 〈베를린〉의 류승완, 〈신과 함께〉 1, 2의 김용화 등 흥행을 함께 일궈낸 감독의 신작들과 올여름에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그는 류승완의 〈밀수〉 개봉 일주일 뒤, 김용화의 〈더 문〉과는 같은 날인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비공식작전〉의 주연 배우다.
〈비공식작전〉은 〈터널〉을 함께 했던 김성훈 감독과의 두번째 만남이다. 하정우가 아내보다 자신을 더 잘 안다고 말했을 정도로 김성훈 감독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그는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독님이 캐릭터를 꽉 채우지 않고 배우 하정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시나리오를 건네줘 좋았다”고 대본의 첫인상에 대해 말했다.
〈비공식작전〉은 실제 벌어졌던 1986년 레바논 주재 외교관 납치사건을 다룬다. 이듬해 석방된 도재승 서기관의 실화를 납치와 석방이라는 시작과 끝만을 가져와 인질 협상과 탈출, 추격과 귀국까지 스릴러와 액션이라는 장르적 요소로 채워 넣었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허구의 인물 이민준은 서울대 출신들에게 승진과 선호지역 발령에서 번번이 밀리는 사무관으로, 납치된 오재석(임형국) 서기관을 무사 귀국시키는 비공식 협상작전에 뛰어든다.
〈비공식작전〉 주연 배우 하정우. 쇼박스 제공
김성훈 감독뿐 아니라 동료 배우 주지훈과도 〈신과 함께〉 1, 2 이후 두번째 만남이다. 주지훈은 이민준이 공항에서 빠져나와 탄 택시 기사 판수 역을 맡았다. 〈비공식작전〉은 두 배우의 ‘밀당’이 유머와 긴장감을 끌어내는 짝패 영화이기도 하다. 이미 검증된 케미가 안정된 재미를 주는 반면 기시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정우는 “주연배우로 작품 수가 쌓이다 보면 전에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다시 짝을 이루는 일이 생겨난다. 이런 것들에서 어떻게 신선함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가 평생의 숙제인 거 같다”면서 “하지만 그런 걸 의식하다가 발목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작품의 본질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성훈 감독의 전작들이 그렇듯 〈비공식작전〉도 현지 부패한 경찰에 쫓기고 돈을 빼앗아가려는 범죄조직에 쫓기며 불안한 파트너였던 판수에서 뒤통수까지 맞으면서 이중삼중 궁지에 몰리는 공무원 민준의 ‘짠내 나는’ 분투가 가장 큰 재미와 긴박감을 준다.
판수의 택시가 열일하는 카 추격신이나 마지막 건물 옥상에서 탈출할 때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를 떠올리게 하는 아슬아슬한 액션보다 그가 더 아끼는 ‘최애’신은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민준이 황량한 산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장면이다. 허탈하고 쓸쓸한데 ‘짠내 만랩’으로 웃음이 터지는 이 장면에서 그는 채플린을 떠올렸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보면서 처음 영화의 꿈을 꿨어요. 채플린이 〈키즈〉에서 유리창 깨고 도망가는데 아이가 따라붙으니 발로 차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을 넓게 잡은 숏에서 그의 걸음걸이를 과하지 않게 흉내 내보려고 했어요.”
레바논이 배경이지만 촬영 가능한 모로코 탕헤르, 마라케시 등에서 4개월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영화 막바지 공항에서 구출한 오재석과 판수를 먼저 보내는 장면을 찍으며 울컥했다고. “코로나 때문에 4개월 동안 촬영현장에 고립돼서 더 집중했던 작품이어선지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과 스태프, 헌신적이었던 현지 스태프들까지 작별을 고하는 배우 하정우가 아닌 인간 김성훈의 감정이 장면 속에 삐져나온 거 같아” 마음에 오래 남았다고 한다.
하정우는 배우 아닌 감독으로 세번째 장편 연출작인 〈로비〉를 한참 준비 중이다. 한국 영화가 코로나 이전의 활기를 찾기 위해 창작자들이 좀 더 용기를 내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다. 그는 “배우로서는 나름 명쾌하게 작품 분석을 하는데 감독 입장이 되면 이게 흐릿해진다”면서 “이걸 이뤄내고 싶은 마음, 내 작품으로 갖고 싶은 마음이 계속 감독으로서 피를 끓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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