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가
저공비행
길을 걸어가다가 분식집 문 앞에 ‘알바 구함’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걸 봤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아 그 글귀가 영 잊히지 않았다. 그게 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제시카 알바의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그녀의 몸매에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에스(S)자 형태로 담겨 있었다. 그 시대정신이 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원섭섭한 1자 형태가 아니라 S자 형태에만 담겨져야 하느냐는 항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하고, 요는 그 시대정신이 약간 검다는 데 있었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약간 검은 것이다, 마치 제시카 알바처럼”이라고 내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더니 누군가 심드렁하게 “걔는 원래 혼혈이거든”이라고 일러줬다. 하긴 제시카 알바가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안 것도 더블유비씨(WBC)에서 한국팀이 일본팀에게 지고 난 뒤의 일이니까 무식을 탓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 퇴조의 여파로 스페인의 바스크 독립단체가 영구휴전을 선언한 이 마당에 국경의 존재를 무화시키는 제시카 알바의 약간 검은 그 피부색깔이야말로 시대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긴 해도 그건 단순히 혼혈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전에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박꽃처럼 새하얀 피부’라고 여주인공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걸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요즘 같아서는 유전자 차원에서 걸러질 여주인공일 공산이 크다. 우리는 몰라도 유전자들은 알고 있다. 운동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사람들만이 ‘박꽃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카 알바처럼 혼혈이 아니라면 크리스마스 휴가를 이용해 동남아 리조트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만이 사시사철 검은 살갗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제시카 알바의 약간 검은 몸이 말하는 시대정신은 다음과 같다. 혼혈이 아닌 한, 사시사철 약간 검은 피부가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검은색이 그렇게 피부를 관리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미감은 상당히 자본주의화되어 있다. 사실 근육질의 남자 몸이 뭐가 아름답겠는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일반인들과 달리 헬스클럽에서 자기 몸을 가꿀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남자라는 게 그 근육질로 드러나니까 그런 것이지.
마찬가지 이유로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다. 비 오는 날의 테니스 정도는 넌지시 말해줘야만 상대방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아름다운 몸을 자랑하려면 여름이 오기 전에 충분히 태워야만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온 직장인들의 새카만 살갗이란 이제 적어도 1년 동안은 그런 휴가를 보낼 능력이 없는 처지라는 걸 온몸으로 웅변하는, 참으로 서글프고도 쓸쓸한 검은색이다.
크리스마스를 동남아나 호주의 해변에서 보낼 여력이 안 된다면 외국처럼 공원에서라도 선탠하는 방법이 있겠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려는 남자들을 다수 보유한 한국에서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후의 방법은 자신은 포기하되 아들과 딸에게는 사시사철 검은 살갗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제시카 알바의 부모들처럼 인종과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사랑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제시카 알바의 S자 몸매를 얘기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검은 살갗이 흥미롭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원고고 뭐고 팽개치고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니 더욱 더 제시카 알바의 그 검은 살갗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미처 몰랐지만 혼혈이라고 하니 그녀는 무죄지만, 어쨌든. 비 오는 날에도 테니스 칠 수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다.
김연수/소설가
이번회부터 소설가 김연수씨과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 듀나가 저공비행의 필자로 교체됩니다.
이번회부터 소설가 김연수씨과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 듀나가 저공비행의 필자로 교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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