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왼쪽부터 평양고보 2학년 시절 스케치연구회 회원들, 미군정청 예술고문 헤이모위츠가 1947년 찍은 예술인 모임과 같은 날 찍은 기념사진(왼쪽 세번째가 월북 작곡가 김순남), 1950년대 일본 도쿄 고마키발레단 문예부장 시절 제작진들과 함께. 박용구 선생의 사진첩에서.
현대무용극 ‘신 춘향’ 쓴 92살 현역 예술인
“이때에 그립고 그리던 이도령이 나타난다. 그런데 웬일인고, 변사또는 이도령을 보자 몽유병자가 되기나 한 것처럼 허위허위 그에게로 접근해 가는 것이 아닌가. 살결 희고 눈썹 짙은 이도령은 남색의 상대로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십장년의 건장한 변사또는 사나이로 부족함이 없고 보니 은근한 텔레파시가 오고간들 놀랄 것도 없으련만 ….”
최근 유럽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신작 〈신 춘향〉 대본 중 변사또와 이도령의 동성애를 묘사한 대목이다. 아무리 ‘파격의 안은미’라지만 춘향전에 동성애라니 ….
이 대본을 쓴 이가 올해로 아흔두살인 원로 예술가 박용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토록 유연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니.
박용구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월북 인사들인 김순남(작곡가), 설정식(시인), 납북 시인 정지용 등과 교유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제작한 기획자,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을 쓴 음악평론가이자 무용평론가, 오페라·연극 연출자, 작가, 방송인 등으로 활동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르네상스인이었다. 20여권의 저작을 발표했으며, 지금도 작품을 쓰고 있는 ‘영원한 현역’이다.
그는 새벽잠이 없는 보통 노인들과 달리 밤 11시에 자고 오전 11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건강 비결은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물구나무를 비롯한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다. 벌써 55년이나 된 습관이다. “사람이 원체 짐승에서 진화했잖아요.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한 2만년 전에 똑바로 서서 다리로 걷게 되니까 몸에 무리가 생기겠죠.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한 30분을 누워서 몸을 풉니다.”
그는 기억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공연을 본 날짜와 내용을 꼼꼼히 적어놓을 정도로 메모광이기도 하다. 그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린 20세기 예술을 돌아보고, 1세기의 지혜로 내다본 미래 비전을 들어본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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