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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설] 매력있는 축구의 매력없는 배후/김선우

등록 2006-06-01 20:18수정 2006-06-02 16:45

정직한 육체가 빚어내는 매혹 뒤에서 낮밤없이 ‘대~한민국’ 부추기는 언론과 상업자본
월드컵에서 저마다의 이익 챙겨 떠난 뒤 우리는 다시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왔다. 돌아왔다, 고 쓰면서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고백하자면 나는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할 줄도 모르거니와 경기장에서 관전해본 적은커녕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티브이 앞에 앉아본 일도 없었다. 그런 내가 지난 2002년 축구경기를 티브이를 통해 처음 보았다. 오프사이드라느니 페널티킥이라느니 하는 축구의 세칙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팀이 멋진 골을 넣을 때 탄성도 뱉고 박수도 쳤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원처럼 펼쳐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눈으로 쫓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야성의 향수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육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된 훈련의 결과일 체력과 기술이 팀웍을 이뤄 빚어내는 결정적 ‘골’의 순간, 맨몸 하나의 정직한 육체가 배후의 술수가 통하지 않는 그라운드라는 열린 공간 속에서 ‘바로 지금’의 시간성으로 싱싱하게 퍼득이는 느낌 같은 것. 2002년 처음 경험한 축구가 내게 준 매혹은 그랬다.

그런데 그라운드 밖의 사정은 좀 달랐다. ‘필승’을 열망하며 광장에 운집한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관중의 열렬한 응원 앞에 나는 주눅 들었다. 축구에서의 승전보가 국력의 바로미터처럼 보도되고, 축구가 좋아 축구인생을 살며 선수로서 최선을 다한 이들이 느닷없는 ‘애국’의 아이콘으로 작동될 때,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가 낮밤없이 일상의 거리에 흘러넘칠 때, 솔직히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4강 신화를 이뤄낸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는 고백에서부터 ‘한민족의 긍지’니 축구를 통한 ‘국민 통합의 쾌거’니 등의 수사들이 경쟁적으로 언론을 도배할 때, 축구의 매력을 막 깨닫기 시작한 나는 이 매력 있는 스포츠의 매력 없는 배후로 인해 월드컵 관전의 재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의문이 생겨났다. 축구경기 자체는 정직한 매력을 발산하지만, 월드컵의 여름이라 할만한 이 열기의 주체가 정말로 축구의 매력에 ‘자율적으로’ 감응한 대중의 것일까. 모호한 애국의 감성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며 언론과 상업자본이 부추기는 난장에 우리가 혹시 과잉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년 전처럼 올해도, 월드컵이 전 국민의 공통된 최고 관심사라고 국민 모두가 동의라도 해준 것처럼 신문 방송 인터넷의 주요 공간을 월드컵 이야기들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월드컵과 관련된 광고들이 어지럽게 넘쳐나기 시작하고, 9시 뉴스의 메인으로 월드컵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월드컵 열기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로부터 배제된 이들 역시 많을 것이다. 월드컵 관전보다 동네 조기축구에서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모호한 애국 판타지가 조장하는 ‘하나-된’ ‘대한민국 국민’의 포지션을 일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축구에 열광하는 대중 자체가 아니라 대중의 열망을 과잉 증폭시켜 ‘무엇인가’에 이용하고자 하는 미디어와 상업자본이다. 시청률, 구독률, 클릭수에 연동되는 각종 광고들은 이윤을 위해 대중의 취향에 단순 영합하는 차원을 넘어 대중의 기호를 선별 부양하고 심지어 창출하기도 하니까.

경기장에 둘러쳐진 빼곡한 광고간판들을 보며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하는 글로벌한 스포츠업체들이 제3세계에서 저지르고 있는 가혹한 어린이노동 착취까지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업자본과 결탁한 각종 매체가 저마다의 이익을 챙겨 떠난 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상은 이전과 별 다름없이 팍팍하게 메말라있기 십상이다. 우리에겐 정말로 축제다운 축제가 필요하다. 비일상적인 흥분 상태의 획일적인 함성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일상의 결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축제들 말이다. 월드컵 시즌이 출판계와 공연예술계는 물론 심지어 영화계에도 악재라는 진단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다채로운 문화의 공존 가능성을 ‘지금 여기’에서 체득해보지 못한 문화적 획일성이 우리를 온통 한 방향만을 향해 열광하도록 부추기는 것일까. 한달여간 무슨 열병처럼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 속에 끓어오르다가 얼마간의 허탈함을 안고 변함없이 답답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충만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누리면서 바로 그 ‘누림’의 힘으로 우리의 일상이 좀더 나은 질로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선우/시인
김선우/시인
월드컵 열기는 억압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에서 발원한 것일 테다. 그렇지만 ‘월드컵’은 ‘지금 여기’의 전부가 아니다. 전쟁터와 난민촌을 비롯한 전세계의 숱한 폐허 속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비닐끈을 뭉친 공을 차고,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폭격의 잔해 속에서 공을 찬다. 월드컵이 벌어지고 있는 시간에 월드컵과는 아무 상관없이 팔이 없는 아이가, 한쪽 다리를 지뢰로 잃은 아이가 공을 차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맹아학교들에서 축구경기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월드컵을 안고 달리는 한달여의 시간이 오로지 골네트만을 향해 질주하는 것은 아닌지, 공을 걷어내는 발길이 타자에게로 가는 사랑과 이해까지 걷어내는 발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금 여기’의 고민이 좀더 다채로워져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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