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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휴대폰 없는 원시인 “글감은 ‘최신’만 써요”

등록 2006-07-27 22:00수정 2006-07-28 15:44

국내 과학 전문 저술가 ‘1호’ 이인식씨. 대기업 직원에서 저술가로 변신한 이씨는 박사학위는 없지만 가장 대중적인 과학책 필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 과학 전문 저술가 ‘1호’ 이인식씨. 대기업 직원에서 저술가로 변신한 이씨는 박사학위는 없지만 가장 대중적인 과학책 필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기업 다니다 “하고픈 일 해보자” 과학잡지 창간 1년반 만에 죽쑤고 3년간 독서실 생활
대중성 무기로 한 과학칼럼 유명세 1급필자로 “테크놀로지는 늘 먼저 보고 공부하는 게 장땡”

한국의 글쟁이들/⑤ 과학저술가 이인식

이인식(61)씨는 오로지 책으로 승부를 거는 직업 저술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일찍 저술가로 나선 축에 드는 이다. 90년대 중후반 전업 저술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인 90년대 초반부터 과학저술가로 글을 써왔고, 과학책을 쓴 것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87년부터다. 올해로 그가 과학저술가로 활동한 꼭 20년째를 맞았고, 그동안 펴낸 책이 스무 권을 넘어섰다.

이씨는 이달 펴낸 최신작 <미래교양사전>으로 국내 과학책 시장에서 자신이 개인 브랜드로 통하는 드문 필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해냈다. 600쪽 가까운 두께(576쪽),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2만9000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간 2주만에 5000부 넘게 팔렸다. 과학책들이 보통 2000~3000부를 넘기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판매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씨는 자신이 “아직 진정한 저술가가 아니”며, “우리나라에 아직 과학저술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진정한 저술은 온전히 책으로 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데, 자신은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한 것들을 책으로 낸 것이 많기 때문에 아직도 저술가라기 보다는 칼럼니스트에 그친다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칼럼을 묶어 낸 거에요. 지금까지는 책을 위한 저술만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책이란 안읽히면 끝입니다. 하지만 칼럼은 원고료도 나오고 기본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위험부담이 적은 편이니까 칼럼으로 써서 책으로 내온 것이죠.”

이씨의 자평은 그만큼 국내에서 ‘과학 출판’이 열악한 분야이고 그래서 ‘과학저술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지금까지 신문, 잡지에 쓴 원고지 1만매 이상의 칼럼들은 이인식이란 이름을 알린 1등 공신이었던 동시에 저술가이면서도 책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현실의 산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 <미래교양사전>은 모처럼 처음부터 책으로만 기획해 쓴 책이다. 이씨는 앞으로 칼럼 연재보다는 책 저술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글쟁이 생활 20년, 나이 환갑에 저술가로서 제2의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석사 학위도 없지만 저서 20권 넘어


이씨가 책 저술에 전념하기로 한 것은 이제 지명도나 수입면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기 때문다. 이는 반대로 지금까지는 버텨내듯 글쓰기를 해올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씨 스스로도 지난 세월에 대해 “저술가로서 어느 정도 보상은 받았다고 본다”면서도 “폄훼당해 좌절하고 섭섭해하며 살아야 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쨋든 과학책으로 이렇게 먹고 살 수 있으니 보상받은 것이고, 국가 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으니 또한 보상받은 것 아니겠냐”는 설명이다.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도 없는 그가, 그것도 가장 엄밀성과 학문적 권위를 요구하는 과학 저술에 뛰어든 이상 이겨내야만 했던 마음고생의 대가일 것이다.

이씨가 과학저술가로 나선 것은 개인적인 꿈이기도 했지만 생활인으로서 피치 못할 선택이기도 했다. 40대 중반까지 이씨는 대기업에서 이사까지 오른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짬짬이 전자공학이란 전공과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전문성을 살려 컴퓨터 잡지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필자로도 활동했다. 글쓰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 이씨는 결국 “태어나서 해보고 싶은 것은 해보고 죽자”는 생각에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92년 8월 <정보기술>이란 과학잡지를 창간했다. 좋아하는 과학잡지도 만들고 과학 저술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퇴직금에 빌린 돈까지 더해 털어넣은 잡지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1년 반만에 잡지를 폐간한 뒤, 이씨는 과학저술가란 미지의 길에 승부를 걸었다. 고시생들 다니는 독서실에서 혼자 수험생처럼 과학공부를 하면서 글쓰기 수련에 돌입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이씨는 94년부터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씨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과학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글쟁이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고 김정흠 교수 등 과학대중화에 관심을 가진 몇몇 대학교수들이 시간을 쪼개 대중적이고 짧은 칼럼을 간간이 쓰는 정도였다. 이씨는 대학교수란 타이틀도, 박사학위도 없었지만 대중적 글쓰기와 저널리즘 감각을 무기로 재미와 정보를 함께 주는 과학칼럼을 지향하고 나섰다. 과학이란 분야가 일반인들에게는 책은 물론 신문기사조차 어렵게 느껴지던 터였기에 알기 쉽게 ‘핵심 정리’를 해주는 듯한 이씨의 칼럼은 금세 호응을 얻었다. 언론은 이씨에게 ‘과학칼럼니스트’란 호칭을 붙여주며 환영했다. 이후 이씨는 1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급 필자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씨가 과학기술을 논하면서도 운전면허도 없고, 휴대폰도 안쓰며, 글도 원고지에 펜으로 쓴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최신 과학정보나 흐름에는 누구보다도 빠르다는 평을 듣는다. “과학저술가는 과학지식의 얼리어답터(초기 수용자)이자 전파자여야 한다”는 철학 덕분이기도 하지만 최신 과학기술이란 게 누가 먼저 관심을 갖고 다루느냐가 승부처이기 때문에 늘 최신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운 결과다. “테크놀로지는 정보전쟁이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교수들도 몰라요. 늘 먼저 보고 공부하는 게 ‘장땡’입니다.” ‘최신’ 못잖게 이씨를 짓누르는 단어가 ‘정확’이다. “과학저술의 기본은 ‘학문적 정확성’과 ‘언론의 민첩성’이고, 프로 과학저술가로서의 기본은 ‘자기 것에 대한 책임’과 ‘완벽’뿐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글에 오류가 있으면 개망신을 당해요. 그래서 항상 책임질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찾는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씨의 글쓰기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는 누가 이미 쓴 주제나 소재는 쓰지 않는 것. 무엇이든 처음으로 써야 ‘독창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섞지 않기. “개똥철학은 피한다”는 취향에 따라 글에 사적 경험담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이씨가 주력하는 분야가 ‘공학’과 ‘미래’ 두 분야다. 자신이 공학도 출신에 기업에 근무했던 탓도 있지만 “한국을 먹여살릴 미래산업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과학출판 풍토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다. 이씨가 보기에 현재 국내 과학책 출판의 문제점은 △기초과학 중심 △과거 지향 △생물학 치중 풍토다. 이런 분야도 중요하지만 이쪽 책만 나오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것이다.

“다윈을 지금 떠들어봤자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거죠. 학교에서 다 배우는 것을 또 중언부언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 현재 과학계의 살아있는 이슈나 기술 문제가 중요한데 국내 과학책들은 죽은 옛 과학자들의 전기나 한가한 동물이야기만 중복출판되고 있어요.”

‘생활속 공학’ 문학처럼 풀어내고파

저술가로서 이씨의 바람은 ‘한국의 헨리 페트로스키’로 불리는 것이다. 세계적인 공학기술 저술가로 생활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공학기술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설명하는 페트로스키처럼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이공계 학생들에게 공학의 재미를 가르쳐주는 책을 쓰는 것. 이게 저술가로서 그가 갖고 있는 소명의식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이인식이 말하는 내 책은…

사람과 컴퓨터(절판)

까치 펴냄(1992)

“첫 책은 아니지만 대표작이자 출세작. 과학 저널리즘이란 데에 충실했던 책인데, 요즘 각광받는 나노기술이나 인공생명 등 첨단 분야를 그 때 자세히 소개한 것은 지금 다시 봐도 자랑스럽다.”



아주 특별한 과학에세이

푸른나무 펴냄(2001)

“그동안의 과학 칼럼들은 원고지 5~7매 분량의 쪼가리글 수준이었다. 정보만 있는 짧은 글이 되어버리는 단점을 극복하고 과학의 재미를 강화하고 싶었다. 보통 단편소설이 70매 정도인데, 그 절반이면 되겠다고 생각해 한 주제당 35매짜리 과학칼럼을 시도했다. 지금도 논술용 책으로 팔리고 있다.”



이인식의 성과학 탐사

생각의나무 펴냄(2002)

“성(性)을 학제간으로 접근해봤다. 생물학, 생식의학, 인류학, 정신의학 등 성을 다각도로 보면서 그 본질과 현상을 고찰했다. 개인적으로 들인 생각보다 덜 팔린 편이어서 아까워하는 책이다. 보급판을 낼까 고민중이다.”



이인식의 과학나라

김영사 펴냄(2004)

“<한겨레>에 매주 한번씩 151회, 3년 동안 연재한 칼럼을 모았다. 대한민국 과학 칼럼사상 최장기 연재 기록일 것이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못배우는 ‘시사과학’을 담고자 했다. 논술용으로 최적이라고 본다.”



미래교양사전

갤리온 펴냄(2006)

“과학책을 쓰다보니 과학만 공부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미래 분야는 더욱 그랬다. 경제, 문화현상, 군사도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을 보태 펴낸 책이다. 2050년까지 인류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이론, 아이디어, 지식을 집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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