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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필진] 자전거도 유행이 있다?

등록 2006-09-04 17:54

과외 때문에 자전거를 탑니다. 중랑천 자전거 도로를 하루에 한 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루는 고등학생 두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소위 '부인용'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일반 MTB 자전거가 아니었습니다. 핸들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고, 앞에 바구니가 달렸으며 안장은 푹신푹신 스프링이 달려 있는 그런 자전거 말이죠. 그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두 명이 나란히 달렸습니다.

약간은 어색했습니다. 부인용 자전거는 말 그대로 (저의 고정관념에 따르면) 남자들이 탔을때 약간 폼이 안 납니다. 그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저는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자전거가 원래 실용성이 제일 중요한거 아니겠습니까. 겉모습이 어찌됐건 원하는 거리를, 두바퀴를 굴려 갈수만 있다면 되는 겁니다. 멋진 MTB 자전거가 아니라도, 학교와 집 도서관을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저는 저 고등학생들이 어머니 자전거를 함께 타는 걸로 이해했습니다. 비싼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고 어머니의 자전거를 온 가족이 함께 타는 겁니다.


기쁜 마음으로 과외하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넌지시 오늘 자전거를 타던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엄마의 자전거를 끌고 나온 그들이 나는 너무 기특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쿡 웃더니 한 마디 합니다. “선생님, 요즘에 그 자전거 유행이에요. ”

알고보니 부인용 자전거가 유행이었습니다. 이름도 ‘삼순이 자전거’라고 합디다. 아마 모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걸 타고 다녔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유행한 지 꽤 오래됐는데 나만 몰랐나요. 아무튼 정신이 멍해집니다. 아까 그 녀석들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알뜰한 너희들을 믿었건만.

하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어쨌든 자전거 타기가 유행이라지 않습니까. 버스타기나 자가용타기도 아니고 자전거 타기라면 좋습니다. 운동이 부족한 청소년들 건강에도 보탬이 되고, 환경에도 좋고. 특정 자전거가 유행이라도, 그걸로 인해 자전거 타기가 확산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요.

며칠전 새로운 사실을 또 하나 알았습니다. 삼순이 자전거 중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상품이 유행이라는 겁니다. 이건 대학 다니는 후배한테 들었습니다. ‘베X통 자전거’가 유행한다고 합디다.

살짝 어이가 없어지려고 합니다. ‘베X통 자전거’를 사려면 거의 20만원 주고 사야 합니다. 그 후배 말로는 이 자전거를 타야 어깨를 좌~악 펴고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자전거 생각보다 가격이 높에 책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왜 그런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비쌀 수록 잘 팔리는 나라라고 하지요. 대한민국. 그래서 더욱 씁쓸한 소식이었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가치소비가 실용적 소비를 능가하는 나라. 그 문화가 자전거에 까지 침투해 있었다니. 특정 브랜드의 자전거를 타야만 폼이 나고, 어깨를 펼 수 있는 문화가 퍼져 있다면 차라리 자전거에서 내리라고 하고 싶습니다. 비싼 자전거 아니면 타지 말라는 것인가요.

자전거가 뭐 별거 있겠습니까. 가볍고 두 바퀴 잘 굴러가면 되겠지요. 싸고 좋은 자전거 요즘 많이 나옵니다. 너무 싸져서 국내 자전거 생산업체들 다 문닫을 판이라지요. 아마. 그런데 특히 청소년들이 사기에 조금 비싼 자전거가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퍼져 있다니. 싼 자전거 타는 사람들 쪽팔려서 어디 자전거 끌고 나오겠습니까.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요. 어쨌던 자전거가 유행이라니 다행이니까요. 지금은 브랜드 자전거가 유행이지만 계속 타다보면 실용적이고 싼 가격의 자전거를 많이 찾게 되겠지요. 한강 자전거 로에는 온통 100만원이 넘는 자전거 뿐이고, 번쩍번쩍하는 헬멧에 알록달록한 옷을 보며 위화감도 살짝 느껴지는데 오히려 다행이지요. 20만원이면 싼편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과외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많은 자전거를 봅니다. 오늘 따라 자전거 상표에 눈이 많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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