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인터뷰] ‘총대 메고 바람잡이 나선’ 소설가 황석영씨
“시민세력 제3세력화 필요…손학규만 염두 둔 건 아니다
현제 국면은 민주주의의 위기…레짐 체인지 시대 초입”
“시민세력 제3세력화 필요…손학규만 염두 둔 건 아니다
현제 국면은 민주주의의 위기…레짐 체인지 시대 초입”
작가 황석영(64)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신문 인터뷰에서 “(정치질서 개편을 위해)나라도 총대를 멜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귀국해 6일 저녁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주한 외국 대사들이 만든 ‘서울문학회’ 행사에 참석한 황씨를 이날 낮에 만났다. 편집자
-작가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총대를 메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대해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와 그를 위한 정계 개편에 굳이 선생님께서 나선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오.
형식적 민주주의 아닌 과정과 제도, 구조로서의 민주주의 쟁취해야
=당연하겠지요. 저는 전업작가로서 이제까지 현실정치와의 비판적 거리를 지켜왔던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시기에는 비판으로 개입해 왔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저는 앞서도 말했듯이 현재의 국면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보고 사회운동이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때라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이라크 파병 때에 우리가 거리에 나선 적이 있고 탄핵정국에 나서서 발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대선정국은 한마디로 냉전적 잔재의 청산이자 그야말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과정과 제도와 구조로서의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할 분기점에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지적처럼 선진사회로 들어서느냐 냉전의 한계 속에서 주저앉느냐 하는 ‘레짐 체인지’ 시대의 초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와 관련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87년 체제의 종언, ‘중도’와 ‘비빔밥’이니 하는 구상은 일종의 무원칙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중도 많아지는 건 사회가 상식적으로 안정된다는 것 =먼저 전제해둘 게 있습니다. 나는 사회과학을 하는 전문가나 정치인이 아닙니다. 다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작품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작가로서 ‘시민적 상식’의 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점을 ‘87체제의 종언’으로 본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면 분명해집니다. 87체제는 한마디로 6월 항쟁의 결과로 항쟁 주체가 아니라 압제자 쪽의 자기 생존을 위하여 난데없이 주어졌습니다. 즉 체육관이 아니라 직접선거라는 6.29 선언이었죠. 뒤이어 양김의 분열과 패배, 3당합당이 이어지면서 과거의 잔재는 고스란히 업보로 남게 되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기간에 사실은 막강한 신자유주의와 강대국의 분단체제 조정의 와중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내실을 기할 여력이 없었다고 보겠지만, 달리 보면 기득권 세력에 대하여 개혁적 헤게모니를 현실화할 능력이 없었고 이른바 진보진영도 옛날처럼 치열한 사회운동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게을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화’가 다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경제’가 문제라고 하는 대중적 의식이 문제 아닙니까? 양극화라든가 서민경제의 파탄이나 부동산 문제 등은 민주적인 제도 개혁과 실천에 게을렀던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사실은 ‘선진적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의미가 들어 있지요. 제가 87체제의 종언이라 하는 것은 그 애매모호했던 미완성의 시점에서 재출발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자는 말이지요. 비빔밥은 좋은 음식…선진 민주사회는 그래야 되는 것 아닌지 ‘중도’라는 저의 표현은 느닷없이 나온 소리가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온 말입니다. 아마 이문열씨와 대담하면서 나온 얘기 같은데요. 그것은 냉전적 이념의 분할에서 좀 벗어나자는 얘기였지요. 친북좌파니 수구보수니 하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앞뒤의 선거 기간에 정착된 말인 듯한데요. 우리네 우익이 서구식으로 하자면 파시즘에 가깝고 또한 좌익은 서구식으로 따지면 자유주의 정도나 아니면 노동조합주의 정도가 아닌가요? ‘중도’라는 말은 우리측보다는 상대편 기득권층에 권유하는 것이지요. 자아 우리 조금씩만 수평이동하자 그런 얘기입니다. 그네의 진폭이 넓으면 위험하고 불안하니까 폭을 좀 좁히자. 굳이 좌우를 나누겠다면 너는 중도 우파, 나는 중도 좌파 하면 어떻겠냐. 혁명을 하지 못했으니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합리적 보수’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중도’가 많아진다는 것은 사회가 상식적으로 안정된다는 말이겠다고 그랬지요. 비빔밥은 좋은 음식입니다. 여러 가지 나물과 반찬이 섞여 있어서 ‘편식’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섞인 먹거리들은 제각기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선진민주 사회는 그래야 되는 게 아닌지. 선거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른바 ‘누가 더 진보냐’하는 우리끼리의 선명성 경쟁보다는 분단된 우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논의해서 마땅한 후보가 들어올 프레임을 짜는 게 시급하다고 봅니다. 김대중 · 노무현 ‘형식적 민주정권
민심 잃어도 사회적 진전 있었다
한나라 집권하면 퇴행시대 온다 -선생님의 그런 복안은 오랜 해외생활 때문에 국내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것이어서 현실성이 의심스럽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때로 거리감은 사물을 더욱 명료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남들과의 비교점도 잘 보이구요. 요즈음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계가 한군데 모여서 복작거립디다. 밖에서는 남북한이 동시에 보이는 잇점도 있겠지요.
-‘6월 세력’이란 2007년 지금의 시점에서는 벌써 낡은 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흐름과 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새로운 흐름과 세력 형성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어
=글쎄 ‘6월 세력’이란 말은 처음 듣는데요. 저는 현실 정치권에서 부상된 사람들을 보고 있을 수밖에요. 그야말로 새로운 흐름과 세력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앞으로 십여년 안에는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나 대선정국만 놓고 본다면 새로운 흐름과 세력을 형성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어 보입니다. 현재의 ‘판’을 깨는 일도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선생님은 현재 드러난 대선 후보 중에서 손학규 후보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손 후보에 대해서는 재야에서 한나라당 쪽으로 간 ‘1차 배신’이 문제인데다, 다시 한나라당을 뛰쳐 나온다면 그것을 또 다른 ‘배신’이라 비판하는 소리들도 적지않을 것입니다. 설사 손 후보가 여권 단일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정책적 속내와 차별성 드러내고 길 다르면 갈라서는 게 옳아
=글쎄, 아무하고나 먹는 술을 좀 삼가야 하는데. 작가란 시대의 바람잡이라고나 할까요. 좀 괜찮게 표현하면 풍향계 정도면 어떻겠소. 저는 아무리 보수양당체제라고는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현재의 판도가 깨지기를 바랐어요. 그래야 시민세력의 제3세력화가 가능한 게 아닌가요? 87체제의 종언이라 할 때에 가장 큰 문제가 당시의 항쟁 주체가 사라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양김이 분열되면서 이들은 각자 보스 계보에 흡수되어 버리지요. 지금도 그 뿌리가 깊습니다. 현 정권도 그러한 과거의 업보 때문에 영남 왕따를 당하고 배신자라는 소리를 지역에서 듣고 있지요. 대중은 현재의 뿌리를 잊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난번 광주의 선택은 그야말로 의연했지요. 나는 정치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책적 속내와 차별성을 드러내고 길이 다르면 갈라서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손학규 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고 시민사회에 운동이 일어나고 그야말로 ‘열정’을 조직화하는 조짐이 나타나면 거기에 복종할 생각입니다. 그러한 프레임 안에 그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좋은 일입니다. 아무튼 그 누가 되었든지 아마도 ‘자기 삶을 걸어야’ 할 겁니다.
-한마디로 ‘민주화 세력’이라 해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들 내부의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민노당 심상정 후보에 감동…민노당 질곡은 간단찮아
=솔직히 심정적으로는 민노당의 심상정 후보의 말이나 글에 감동을 받습니다. 선후배 학자님들 말씀에도 감동을 받구요. 그런데 정치는 잘 모르지만 솔직히 어디 작가나 시인이 평론가들 말을 듣습니까? 내가 심상정 후보의 글에 감동을 받는 것은 그에게서는 현실적으로 옹호하려는 계층과 가치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민노당 자체가 빠진 질곡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습니까. 우선 바깥에서의 ‘바람’이 대단히 중요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교통정리를 할 원로들도 많이 있겠지요.
-한편에서는 현 정권이 실정을 했고 민심을 잃었으므로, 이번 대선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무방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굳이 ‘반 한나라’ 쪽의 대선 승리를 갈구하는 까닭이 있습니까?
한나라당은 역사관이나 세계관에서도 수권 할 책임과 자세 결여
=아마 와전이라고 나중에 정정들을 하셨지요? 엎어치나 메어치나 모두 보수인데 어떠냐고 하던 분들도 ‘비판적 연대론’을 말하더군요. 저는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형식적 민주주의 정권이 결국은 과거의 업보를 안은 채로 우왕좌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고 봅니다. 즉 현 정권의 경우에도 민심은 잃었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적 진전이라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최근의 행적과 후보들의 발언만 놓고 보더라도 과거와 현재를 보는 역사관이나 세계관에서도 수권을 할 책임과 자세가 결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퇴행적인 시대를 보낼 것이며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세계사적 기회를 놓쳐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동아시아의 지난 백년을 통하여 지금이 한반도에 몇번째로 결정적인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펼칠 정책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이번 대선에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현실적 결과는 비슷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적 허무주의 빠지지 말고 단단한 정책적 프레임 짜자
=그런 가정은 역으로 지난번 대선에서 이회창이 이겼을지라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와 통하는데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허무주의로군요. 이번에는 정책적으로 단단한 프레임을 짭시다. 현실적 결과가 비슷하도록 방기한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저 같은 작가나 <한겨레>는 할 일이 많아서 바빠지겠고 참 귀찮지만 오랜만에 열정을 불태울 계기도 되겠습니다그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보수 정당으로 싸잡고 민주노동당을 그에 맞설 진보 진영의 대표로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혁신정당 시대 아니다…제도·구조적 민주주의 토양 뒤에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임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직은 혁신정당의 시대가 아닙니다.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가 바라는 선진적 민주주의란 바로 우리가 지금 말로만 하는 좌-우 또는 진보-보수 양당제의 틀이죠. 이제 과거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비판적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서구식 사민주의도 있기는 하겠지만 현재의 추세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더욱 우측으로 개조되는 과정에 있지요. 제도적 구조적 민주주의의 대중적 기반을 튼튼히 만들어 놓은 토양 위에서라야 혁신 정당이 존재할 수 있겠지요. 아니면 동시에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구요. 저는 이번에 범진보 진영이 모두 함께 후보자를 내놓고 ‘국민대경선’을 치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낭만적인 생각인가요?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운동의 전초 단계인 ‘통전’이 시급한 때입니다. 서울만 보면 안 됩니다. 아직도 지방에서 당선되어 올라오는 의원들 면면을 보십시오. 누군가의 호를 딴 공원을 고집하는 지역도 현재의 대한민국에 있지요.
-때가 때이니 만큼 얘기가 정치에 쏠렸습니다. 이제 문학 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죠. 지난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총회에서는 단체 명칭에서 ‘민족’을 떼려고 시도했다가 일단 무산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작가회의의 명칭 변경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잠깐 귀국해서 하루 전에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진작에 작가들의 ‘집단’에 대해서 흥미를 잃은 사람이라 뭐라 왈가왈부할 명분이 없네요. 지금쯤은 왕성하게 작품을 쓰는 젊은 사람들이 독일의 47그룹처럼 독자적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창조적 모임을 이룰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지요. 저는 ‘민족문학’과 ‘민족주의’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흔한 말로 ‘저항적 민족주의’니 ‘피해자의 민족주의’니 하는 개념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당한 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건가요? 그리고 이를테면 인상파 화가회나 초현실주의 화가회 입체파 화가회 모두 있을 수 있는데 유독 한 가지의 흐름만이 화가집단이다, 라는 건 좀 그렇네요. 하여튼 나는 평생의 한동안을 ‘민족문학’으로 명명될 수 있는 작업을 해왔고 모국어로 쓰는 한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겠지만 ‘민족주의’는 거부합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모더니스트들에게도 좋은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 창조적 모임 이룰 시점
서사와 현실 빠지면서 문학 위기
가을 귀국하면 시골서 칩거할 것 -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와도 연결되는 일입니다만, 지난해 결성된 ‘6·15 민족문학인협회’의 앞날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전망하시는지요? 우리 문학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예전에 문익환 목사님 등 ‘범민련’에 참여했다가 마음 고생을 너무 했던 적이 있어서 ‘문화’로 통일운동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된 셈입니다. 결국은 정치적 상황과 조건에 종속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소위 양측 ‘당국자’의 동조와 지원 없이는 어렵게 됩니다. 여기서 양측이라는 것은 아직은 균형 가치가 아니며 그것은 삶과 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서두르지 말자고 충고했을지언정 반대는 못했습니다. 북의 지식인들과 개방론자들, 실용주의자들의 향후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으니 그만큼 낙관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친구들도 있고 북쪽 문인들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어려운 조건도 이해를 하구요. ‘분단시대 문학’의 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1989년 이른바 ‘밀입북’ 때문에 적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선생님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구요.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북을 방문한 남쪽 문인들 사이에서 북의 체제와 사회현실에 대해 새삼 충격을 받고 심지어 분노를 느끼는 기류조차 있었습니다. 북의 체제와 남북 사이의 대화와 교류 등에 대한 이 시점에서의 선생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민감한 질문이군요. 저도 참으로 답답하고 문인들 사이에 안내자로 끼어 있던 당국자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그런데 놀란 것은 북한 당국이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움을 잃어버렸더군요. 그리고 자신감도 잃은 듯하고. 그동안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은 일반 문인들이 느낀 황폐감이나 관료적 오만에 대한 실망에 비하면 그래도 이해가 전제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보다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 사회가 자신의 문화예술인들을 신뢰하거나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문인들을 서울에도 보내고 세계로도 내보내서 우리와 마주앉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바리데기>는 6월께에 끝날 텐데요, <바리데기>를 마무리지은 다음 후속작은 어떤 작품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요? =그건 비밀입니다. 나도 이젠 비밀을 한두 가지는 간직해야지. 역사물이 될 것 같은데, 그것도 현대사쪽으로요. -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의 한켠에서는 문단 내 신-구 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 양상 같은 게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원로급으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처지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일각에서는 한국문학의 ‘종언’을 선언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허허허 ‘위기’에서 이제는 ‘종언’이라? 아무래도 떨어져 있으니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가끔씩 출판사에서 부쳐 주는 책이나 문예지로 짐작할 뿐이지요. 제가 한국문학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얘기해 왔는데요. 몇 가지 원인이 있을 거예요. 서사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독자들이 떠나기 시작한 게 아닌지. 교수 자리가 많이 나면서 전업작가가 줄어든 것도 원인일까요. 인터넷의 영향도 있을 테고. 영화가 예전의 문학이 하던 역할을 넘겨받은 것 같던데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문학은 시대마다 언제나 위기였습니다. 서구 나라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장들의 작품들도 출판되면 1만부가 팔릴까 말까예요. 일본은 이미 칠팔십년대부터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문학적 가치 개념이 붕괴 되었구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사다난한 우여곡절의 삶이라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넘어서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 독자들은 한국 소설 대신 일본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요즘의 일본 소설들을 읽어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어떤 이들은 한국 작가들이 일본 소설에서 배우라는 충고를 합니다만, 일본 소설은 한국소설의 미래일 수 있을까요?
=그게 사실인가요? 하긴 어느 시대에나 대중소설이 많이 읽히기는 했지요. 요즈음 일본 소설을 제대로 본 게 없어요. 나카가미 겐지의 소설을 읽은 것도 수십년이 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도 떠들길래 몇 권 읽어는 봤습니다. 우리 문학의 저력을 정말 몰라서들 그러는데, 이건 진심입니다. 우리 문학인들 중엔 그야말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분이 백여명은 됩니다. 저는 동료 문인들과 몇 달 동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행사를 섭렵하면서 젊은 문인들부터 노장들에 이르기까지 독일 사람들 틈에 섞여 경청을 했는데요, 그 다양성과 힘에 있어서 어느 나라의 문학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작은 나라에다 언어도 세계 속에서 마이너리티이니까 손해를 보지만 만만치 않은 문학입니다. 다만 일본의 대중문학은 도회적 감각으로 가득차 있지요.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일본의 본격문학이 서구의 평단에서 평가를 받는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거론되고 있는 것은 본격문학의 고전들이지요.
-올해 안에 완전 귀국하실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쯤 귀국할 것이며 귀국하신다면 대선과 관련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밟으실 것인지요?
=가을에 귀국할 예정이며 연이어 시골로 내려가 칩거할 생각입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벌써 예순다섯입니다. 젊지 않지요. 많지 않은 시간을 잘 써야겠어요. 그맘때쯤이면 판국이 이미 정돈되어 있을 텐데 뭘하러 나섭니까. 기다렸다가 그때에 가동하는 이들도 많을 텐데. 저는 여름 전까지가 제가 말참견할 시기의 한계라고 알고 있어요.
-3년여의 해외체류를 스스로 평가하신다면요?
=오랜만에 침잠해서 독서하고 공부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시대정신을 알아챘다고나 할까. 돌아가면 완전히 시골 사람이 되어 칩거하면서 늙마에 장인적인 예술가가 되어보려 합니다.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그 신문에 대한 선생님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요?
=글쎄요, 다만 단서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함께 변해야겠지요.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에 돌아오니 집행부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선배분들이 신문 하나씩 맡아서 방북 소감문을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요. 내게 배당된 것이 <조선일보>였습니다. 그야말로 고육지책이지요. ‘문학은 하나다’라는 칼럼이었는데 그런 소리를 <한겨레>에 쓰는 것보다는 바로 <조선>에 써야 한다는 논리였지요. 저는 입장이 난처함에도 써서 발표했습니다. 당시에 민예총 회장을 맡고 있던 처지였는데 전국적인 반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 민예총 사무실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들 그랬지요. 저는 <조선일보>가 어쨌든 그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입니다. 그런 내가 동인문학상 문제로 척을 진 뒤에도 ‘안티 조선’은 전략적인 대처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보수 신문을 한 지점에 몰아넣고 자기의 반대 포지션까지 고정시키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과거보다 더욱 지독한 극우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대중을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도 나왔지만 좌와 우의 폭을 줄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을 서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요. 다른 좋은 방안이 있다면 충고해 주세요. 갈등의 폭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지.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중도 많아지는 건 사회가 상식적으로 안정된다는 것 =먼저 전제해둘 게 있습니다. 나는 사회과학을 하는 전문가나 정치인이 아닙니다. 다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작품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작가로서 ‘시민적 상식’의 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점을 ‘87체제의 종언’으로 본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면 분명해집니다. 87체제는 한마디로 6월 항쟁의 결과로 항쟁 주체가 아니라 압제자 쪽의 자기 생존을 위하여 난데없이 주어졌습니다. 즉 체육관이 아니라 직접선거라는 6.29 선언이었죠. 뒤이어 양김의 분열과 패배, 3당합당이 이어지면서 과거의 잔재는 고스란히 업보로 남게 되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기간에 사실은 막강한 신자유주의와 강대국의 분단체제 조정의 와중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내실을 기할 여력이 없었다고 보겠지만, 달리 보면 기득권 세력에 대하여 개혁적 헤게모니를 현실화할 능력이 없었고 이른바 진보진영도 옛날처럼 치열한 사회운동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게을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화’가 다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경제’가 문제라고 하는 대중적 의식이 문제 아닙니까? 양극화라든가 서민경제의 파탄이나 부동산 문제 등은 민주적인 제도 개혁과 실천에 게을렀던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사실은 ‘선진적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의미가 들어 있지요. 제가 87체제의 종언이라 하는 것은 그 애매모호했던 미완성의 시점에서 재출발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자는 말이지요. 비빔밥은 좋은 음식…선진 민주사회는 그래야 되는 것 아닌지 ‘중도’라는 저의 표현은 느닷없이 나온 소리가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온 말입니다. 아마 이문열씨와 대담하면서 나온 얘기 같은데요. 그것은 냉전적 이념의 분할에서 좀 벗어나자는 얘기였지요. 친북좌파니 수구보수니 하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앞뒤의 선거 기간에 정착된 말인 듯한데요. 우리네 우익이 서구식으로 하자면 파시즘에 가깝고 또한 좌익은 서구식으로 따지면 자유주의 정도나 아니면 노동조합주의 정도가 아닌가요? ‘중도’라는 말은 우리측보다는 상대편 기득권층에 권유하는 것이지요. 자아 우리 조금씩만 수평이동하자 그런 얘기입니다. 그네의 진폭이 넓으면 위험하고 불안하니까 폭을 좀 좁히자. 굳이 좌우를 나누겠다면 너는 중도 우파, 나는 중도 좌파 하면 어떻겠냐. 혁명을 하지 못했으니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합리적 보수’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중도’가 많아진다는 것은 사회가 상식적으로 안정된다는 말이겠다고 그랬지요. 비빔밥은 좋은 음식입니다. 여러 가지 나물과 반찬이 섞여 있어서 ‘편식’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섞인 먹거리들은 제각기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선진민주 사회는 그래야 되는 게 아닌지. 선거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른바 ‘누가 더 진보냐’하는 우리끼리의 선명성 경쟁보다는 분단된 우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논의해서 마땅한 후보가 들어올 프레임을 짜는 게 시급하다고 봅니다. 김대중 · 노무현 ‘형식적 민주정권
민심 잃어도 사회적 진전 있었다
한나라 집권하면 퇴행시대 온다 -선생님의 그런 복안은 오랜 해외생활 때문에 국내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것이어서 현실성이 의심스럽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때로 거리감은 사물을 더욱 명료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남들과의 비교점도 잘 보이구요. 요즈음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계가 한군데 모여서 복작거립디다. 밖에서는 남북한이 동시에 보이는 잇점도 있겠지요.
황석영
서사와 현실 빠지면서 문학 위기
가을 귀국하면 시골서 칩거할 것 -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와도 연결되는 일입니다만, 지난해 결성된 ‘6·15 민족문학인협회’의 앞날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전망하시는지요? 우리 문학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예전에 문익환 목사님 등 ‘범민련’에 참여했다가 마음 고생을 너무 했던 적이 있어서 ‘문화’로 통일운동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된 셈입니다. 결국은 정치적 상황과 조건에 종속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소위 양측 ‘당국자’의 동조와 지원 없이는 어렵게 됩니다. 여기서 양측이라는 것은 아직은 균형 가치가 아니며 그것은 삶과 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서두르지 말자고 충고했을지언정 반대는 못했습니다. 북의 지식인들과 개방론자들, 실용주의자들의 향후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으니 그만큼 낙관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친구들도 있고 북쪽 문인들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어려운 조건도 이해를 하구요. ‘분단시대 문학’의 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1989년 이른바 ‘밀입북’ 때문에 적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선생님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구요.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북을 방문한 남쪽 문인들 사이에서 북의 체제와 사회현실에 대해 새삼 충격을 받고 심지어 분노를 느끼는 기류조차 있었습니다. 북의 체제와 남북 사이의 대화와 교류 등에 대한 이 시점에서의 선생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민감한 질문이군요. 저도 참으로 답답하고 문인들 사이에 안내자로 끼어 있던 당국자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그런데 놀란 것은 북한 당국이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움을 잃어버렸더군요. 그리고 자신감도 잃은 듯하고. 그동안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은 일반 문인들이 느낀 황폐감이나 관료적 오만에 대한 실망에 비하면 그래도 이해가 전제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보다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 사회가 자신의 문화예술인들을 신뢰하거나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문인들을 서울에도 보내고 세계로도 내보내서 우리와 마주앉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바리데기>는 6월께에 끝날 텐데요, <바리데기>를 마무리지은 다음 후속작은 어떤 작품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요? =그건 비밀입니다. 나도 이젠 비밀을 한두 가지는 간직해야지. 역사물이 될 것 같은데, 그것도 현대사쪽으로요. -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의 한켠에서는 문단 내 신-구 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 양상 같은 게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원로급으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처지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일각에서는 한국문학의 ‘종언’을 선언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허허허 ‘위기’에서 이제는 ‘종언’이라? 아무래도 떨어져 있으니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가끔씩 출판사에서 부쳐 주는 책이나 문예지로 짐작할 뿐이지요. 제가 한국문학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얘기해 왔는데요. 몇 가지 원인이 있을 거예요. 서사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독자들이 떠나기 시작한 게 아닌지. 교수 자리가 많이 나면서 전업작가가 줄어든 것도 원인일까요. 인터넷의 영향도 있을 테고. 영화가 예전의 문학이 하던 역할을 넘겨받은 것 같던데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문학은 시대마다 언제나 위기였습니다. 서구 나라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장들의 작품들도 출판되면 1만부가 팔릴까 말까예요. 일본은 이미 칠팔십년대부터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문학적 가치 개념이 붕괴 되었구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사다난한 우여곡절의 삶이라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넘어서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게 될 거예요.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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