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공 학생들에 무료 전시공간 빌려주는 ‘갤러리 현’
미술전공 학생들에 무료 전시공간 빌려주는 ‘갤러리 현’
서울 삼청동길 총리공관 가기 전 빨간 벽돌 5층집. 입구쪽 담에 걸린 그림을 보면 갤러리 같고, 탁 트인 1층 둥근 테이블과 바를 보면 음식점 같기도 하다. 갤러리 현. ‘갤러리 겸 음식점’ 복합공간이다. 잘못하면 갤러리도 아니고 음식점도 아닐 수 있는…. “저나 음식손님이나 작가 모두 만족합니다.” 박정희(48) 대표의 말이다. 돈 되는 음식손님이 아닌 뜨내기 그림손님인데도 귀찮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없다. 지난해 10월에 문을 연 이곳은 ‘음식은 벽에 걸 수 없고 그림은 테이블에 놓을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에서 음식과 그림의 동거를 시작했다. 평면공간은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파스타(점심), 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저녁)를 내는 음식점이고, 벽과 계단 등 수직공간은 지금껏 네 차례 작가들의 그림을 건 갤러리다. “애초 벽화를 그리려 했어요. 붙박이 그림으로 하느니 아예 그림을 바꿔 거는 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가들한테 벽을 무료로 빌려주기로 했어요. 저한테는 인테리어이고 작가에겐 무료 전시장인 셈이죠.” 박 대표는 계단과 내부에 작품 전시를 위해 조명등을 특별히 설치하고 작품과 충돌하지 않도록 인테리어를 최소화했다. 층별로 소품에서 최대 100호까지 걸 수 있도록. 대관 대상은 주로 풋풋한 학생들. 작품에 대한 열의가 넘치지만 대관료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들에게 이곳은 반가운 공간이다. ‘그 시간 그 자리에’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성영록(27)씨. 대학원 논문만을 남겨둔 박씨는 작년 9월 말 맞은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갤러리 현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공간이 무척 예뻐 점찍어 두었던 터, 최근 차를 마시러 들렀다가 전시회를 열기로 아퀴를 지었다. 대관료가 없기도 하지만 계단과 계단으로 연결된 아기자기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공간의 크기, 건물의 붉은 벽돌, 여름철임을 고려해 푸른색 계통으로 작품을 그렸다.
미술전공 학생들에 무료 전시공간 빌려주는 ‘갤러리 현’
5월10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이곳에서 전시회를 연 대학원생 고은주(24)씨는 전문 갤러리처럼 체계적으로 걸기는 어렵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는 사람이 많아 작품을 알리기에 적격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1층 담벼락에 작품을 걺으로써 자연스럽게 외부와 연결되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고 전했다. 처음으로 작품 두 점이 나가 신기하고 또 섭섭하댔다. “저나 작가나 돈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으니 진짜 아마추어들이죠. 모두 만족하면 그게 좋은 거 아닌가요?” 주변 전문갤러리에서 탐탁지 않아 하는 눈총을 의식한 박 대표의 말이다.
이곳 인테리어, 즉 전시회는 한달 단위로 바뀐다. 음식손님, 그림손님 낯가림 않고 식사시간 외 바쁘지 않은 때는 갤러리 손님들에게 전시장 안내를 직접 해준다. (02)722-0701.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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