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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사람] “아버님 영혼 편히 모시려 한평생 기원했건만…”

등록 2007-12-06 19:07

5일 심재호씨가 충남 당진군 송악면 필경사 앞마당에서 아버지 심훈 선생의 기념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5일 심재호씨가 충남 당진군 송악면 필경사 앞마당에서 아버지 심훈 선생의 기념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심훈문학관 건립 무산’ 눈물 짓는 아들 심재호씨
“심훈 문학관이 없습니다. 친필 원고와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시설이 어서 마련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심재호(72·재미)씨는 5일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를 둘러보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필경사는 심훈(1901~1936) 선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 집으로,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집 이름처럼 <상록수> 등을 창작한 산실이다.

재호씨는 심훈 선생의 셋째 아들로 선생이 돌아가시던 해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마당에 서면 하늘처럼 푸르던 고향바다는 공장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고, 마당의 우물과 높다란 벽오동나무, 지천으로 피어나던 꽃나무들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는 국민이 존경하는 심훈 선생의 아들로서 평생 ‘책임과 의무’를 끌어 안고 살았다. ‘아버지 영혼을 편안하게 모시고 유물·유품을 공개해 현대화하는’ 소원을 수십년째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산 팔려 창작산실 ‘필경사’ 폐가로
기념사업회는 수십년째 계획만
“외국 대학들 유고 사겠다지만…민족유산 한국에 남기고파”

“어릴 때는 필경사 현판을 떼어 자치기를 만들고 아버지가 영화감독할 때 쓴 나팔모양 확성기를 입에 대고 노래부르다 없앴어요. 철이 들면서 수집가 백순재 선생을 찾아 뵙는 등 아버지 유고와 유품을 찾아 다녔죠.”


천신만고 끝에 <감옥에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원본과 영화 <먼동이 틀 때>의 극본과 제작 콘티, 시 <그날이 오면>의 일제 총독부 검열본 등 거의 모든 친필 원고와 아버지가 사용한 의자, 책상 등 1천여종류 수천점을 모았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966년에 서거 30돌 기념 <심훈전집>(3권·탐구당)을 펴냈다.

그러나 아버지 유골은 용인 선산이 팔리는 바람에 안성 골짜기로 이장돼 참배객이 끊겼고, 필경사는 폐가로 방치됐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와 탄압이 극심해지자 양심을 팔 수 없다며 스스로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1975년 미국행을 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게를 하면서 <일간 뉴욕>을 발행했다.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펼쳐 5천여명의 한을 풀어줬지만, 고향에 아버지의 문학관을 짓고 유물을 기증하려던 소원은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고 한탄했다.

“10여년 전 문학관을 짓겠다는 이가 있어 친필 원고 등을 몽땅 맡겼는데 진전이 없었어요. 내가 죽으면 어찌될지 몰라 다시 가져갈 수 밖에 없었죠. 미국 가는 내내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문학관 설립에 애태우는 건 심훈의 사상이 사라진 필경사의 옛 정취처럼 박물관에 박제된 채 역사로만 남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심훈상록수기념사업회가 ‘상록수문학관’을 짓겠다는 것은 계획뿐이고, 충남 당진군은 필경사 일대에 한화그룹이 테크노파크를 조성하면 잘 지어서 기부채납할 거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화 쪽은 이런 계획이 없다고 하고 있다.

13일 출국을 앞둔 그는 이날 필경사 앞마당에 아버지의 영혼을 모시고 작은 기념비를 세운 뒤 굵은 눈물을 흘렸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시를 번역하고, 일본 도쿄대와 미국 시카고대는 유고를 사겠다고 합니다만 심훈은 우리 민족의 유산입니다. 내가 생을 다하기 전에 문학관이 지어져 모든 유고와 유물을 기증하고 싶습니다.”

당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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