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등단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시인 등단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20년전 낸 시집 부끄러워 ‘새로 공부’
‘시와 문학’ 신춘문예에서 4편 당선
“우리 전통 미술품 시로 표현하고파” 미술평론가 윤범모(57·경원대 미대 교수·사진)씨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윤 교수는 시 전문 계간 <시와 시학> 봄호 신춘문예에 ‘천둥소리’ 외 4편이 당선되면서 시인의 이름을 얻게 됐다. “시인들을 부러워하며 멀리서 흠모해 왔던 터에 저 자신 시인 소리를 듣게 되니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시를 쓰더라도 혼자 수양 삼아 써야 하는데 이렇게 세상에 알리고 내보내는 걸 보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윤 교수는 겸손하게 소감을 말했지만, 당선작 ‘천둥소리’는 천둥과 번개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우주적 상상력의 두레박”을 표현했다는 심사평(심사위원 조오현·나태주)을 들었다. “왜 울부짖는 거야, 너는/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가슴에 떨려와 내려꽂히는/ 하늘의 죽비 소리// 더불어 이끌려 나오는 만송이의 개화/ 부르르 전신을 떤다”(‘천둥소리’ 전문) 이번에 공식 등단 절차를 마치긴 했지만, 윤 교수는 사실 20년 전인 1988년에 시집 <불법체류자>를 낸 바 있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미국 정부 초청으로 3년 동안 뉴욕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 생활의 감회를 읊은 넋두리와 ‘부재자’로서 조국의 상황을 보면서 쓴 격문 같은 글들이 어찌어찌 출판사 열화당에서 시집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어찌 보면 큰 죄를 지은 것인데, 책을 리콜할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고 있었더니 문단 친구들이 ‘기왕 이렇게 됐으니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해서 제대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2006년 가을부터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경희대)가 이끄는 시 합평 모임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했다.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세 시간 이상씩 서로의 시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꼭 시인이 되겠다는 것보다는 시 공부 자체가 일종의 인생 공부더군요. 자연과 사물을 남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하려니 문장 공부도 되구요. 창작을 하다 보니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글을 쓴다는 게 가장 좋더군요.” 그는 “미술도 시도 너무 사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면서 “내가 쓰는 시는 대중과 소통하는 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미술 전문가로서 시 창작을 겸하게 된 만큼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자신의 독자적 분야로 삼아 매진할 참이다. “석굴암이나 성덕대왕신종, 청자, 백자처럼 우리 미술사의 주요 작품을 시로 쓰고 싶습니다. 평소에 훌륭한 우리 미술품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많지 않은 걸 안타까워하던 차였습니다. 능력이 닿는다면 가령 남대문 같은 걸 동화 형식으로 쓰고도 싶구요. 미술의 전문성을 바탕에 깔고 문학이라는 당의정을 씌울 때 미술이 좀 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시와 문학’ 신춘문예에서 4편 당선
“우리 전통 미술품 시로 표현하고파” 미술평론가 윤범모(57·경원대 미대 교수·사진)씨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윤 교수는 시 전문 계간 <시와 시학> 봄호 신춘문예에 ‘천둥소리’ 외 4편이 당선되면서 시인의 이름을 얻게 됐다. “시인들을 부러워하며 멀리서 흠모해 왔던 터에 저 자신 시인 소리를 듣게 되니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시를 쓰더라도 혼자 수양 삼아 써야 하는데 이렇게 세상에 알리고 내보내는 걸 보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윤 교수는 겸손하게 소감을 말했지만, 당선작 ‘천둥소리’는 천둥과 번개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우주적 상상력의 두레박”을 표현했다는 심사평(심사위원 조오현·나태주)을 들었다. “왜 울부짖는 거야, 너는/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가슴에 떨려와 내려꽂히는/ 하늘의 죽비 소리// 더불어 이끌려 나오는 만송이의 개화/ 부르르 전신을 떤다”(‘천둥소리’ 전문) 이번에 공식 등단 절차를 마치긴 했지만, 윤 교수는 사실 20년 전인 1988년에 시집 <불법체류자>를 낸 바 있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미국 정부 초청으로 3년 동안 뉴욕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 생활의 감회를 읊은 넋두리와 ‘부재자’로서 조국의 상황을 보면서 쓴 격문 같은 글들이 어찌어찌 출판사 열화당에서 시집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어찌 보면 큰 죄를 지은 것인데, 책을 리콜할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고 있었더니 문단 친구들이 ‘기왕 이렇게 됐으니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해서 제대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2006년 가을부터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경희대)가 이끄는 시 합평 모임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했다.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세 시간 이상씩 서로의 시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꼭 시인이 되겠다는 것보다는 시 공부 자체가 일종의 인생 공부더군요. 자연과 사물을 남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하려니 문장 공부도 되구요. 창작을 하다 보니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글을 쓴다는 게 가장 좋더군요.” 그는 “미술도 시도 너무 사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면서 “내가 쓰는 시는 대중과 소통하는 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미술 전문가로서 시 창작을 겸하게 된 만큼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자신의 독자적 분야로 삼아 매진할 참이다. “석굴암이나 성덕대왕신종, 청자, 백자처럼 우리 미술사의 주요 작품을 시로 쓰고 싶습니다. 평소에 훌륭한 우리 미술품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많지 않은 걸 안타까워하던 차였습니다. 능력이 닿는다면 가령 남대문 같은 걸 동화 형식으로 쓰고도 싶구요. 미술의 전문성을 바탕에 깔고 문학이라는 당의정을 씌울 때 미술이 좀 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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