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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위기는 자유의지의 힘 보여줄 기회

등록 2008-11-14 19:06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연론적 인간관에 반대했다. 이성적 존재인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긴 하나 자연의 인과법칙에 그대로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자유의지의 존재다. 사람은 필연의 세계를 넘어서 당위의 세계로 향하는 의지를 펼쳐낼 수 있다. 사람의 보편적 존엄성과 도덕적 의무 역시 자유의지의 존재에 뿌리를 둔다.

실제 자연론적 인간관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인구가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며 사회악의 원인을 인구과잉에 돌린 토머스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이 그랬고, 적자생존의 원리를 자의적으로 인간사회에 적용한 사회적 진화론은 히틀러의 무자비한 인종차별을 뒷받침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유롭다. 의지와 능력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을 추구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도 각자 몫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로운 사람도 집단 속에 들어가면 선택 폭이 크게 제한된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이뤄진 집단의 부자유’다. 그래서 개인이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더라도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까치 펴냄)는 말한다. 그래서 사회물리학(physics of society)이 성립한다.

사회물리학의 근대적 시조는 토머스 홉스(1588~1679)다. 그는 ‘권리(권력)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집단’으로 사회를 단순화한 뒤 나름의 과학적 추론을 거쳐 왕정이 가장 좋은 지배제도임을 증명했다고 믿었다. 그의 주장은 많은 허점을 갖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의 일에 과학을 도입하는 것은 서구 계몽주의의 한 전통이 됐다.

지식의 역사가 그렇듯이 사회물리학 또한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상전이, 멱법칙, 자기조직화 패턴, 집단적 움직임, 무규모 네트워크 등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행위자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때 나타나며, 아주 단순한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 많은 차량이 제한된 조건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출근 길에 작은 변수가 큰 교통혼잡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런 보기다.

사회물리학의 주요 발견 가운데 하나는 개체들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져 임계상태에 이르면 전체 구조가 극도로 민감해져 갑자기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런 때는 개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폭이 아주 커져 누구나 큰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존 시스템에서 보면 위기이고, 새 질서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자유의지의 위력을 보여줄 기회다.


지금 진행되는 세계적 경제위기는 임계상태를 막 지났거나 아니면 작은 임계상태를 지난 뒤 최종 임계상태로 향하는 단계에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바람직한 방향으로 질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과법칙과 자유의 법칙을 잇는 자유로운 인간의 몫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위기는 기회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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