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48) 감독
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
배우들 무료 출연에 자체 제작
촬영은 발견의 과정…충돌 즐겨
평단 평 좋은데 관객은 늘 냉담?
“각자 가져가는 게 다르니까…” 홍상수(48) 감독은 자리에 앉자마자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놓았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인터뷰 도중 ‘외상 장부’처럼 얄팍하게 생긴 이 수첩에 낙서를 하고 꽃을 그렸다. 질문에 답할 때는 도형과 화살표 등을 그려가며 기하학적인 설명을 했다. 추상적인 대화를 쉽게 풀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제 영화를 원이라고 생각하면 그 안에 구심점이 되는 심상이 있고, 상황에 맞도록 끌어다모은 디테일의 배열이 이뤄지는데, 어떤 사람은 여기서 두개를 가져가고 어떤 사람은 스무개를 가져가요. 어떤 사람은 불편해하고, 어떤 사람은 폭소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요. (삼각형을 그리며) 다른 영화들은 주제가 맨 꼭대기에 있고, 그 밖의 디테일들이 각도에 맞게 따라붙습니다. 주제에 강하게 봉사하죠. 좋다, 나쁘다의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주제가 뭔지는 모르지 않아요. 하지만 제 영화는 주제를 모를 수도 있어요.” 문자로 옮기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 그럴듯한 설명이다. 영화 <해변의 여인>에 비슷한 장면이 있다. 김승우가 고현정에게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무언가를 설명하자, 다 듣고 난 고현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 정말 천재 같다”며 김승우를 쓰다듬는다. 인간 홍상수와 홍상수의 영화는 이렇게 닮았다.
그러나 그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는 그냥 재료일 뿐”이라며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시각을 경계했다. 홍 감독은 “등장인물과 나 사이의 거리를 중간 정도로 유지하려고 애쓴다. 너무 멀면 그 인물이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게 되고, 너무 가까우면 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나이 들면서 (등장인물과 나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는 인정했다.
<잘 알지도…>의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의 직업은 예술영화 감독이다. 영화 속에서 구경남은 잘나가는 후배 흥행 감독(김연수)을 질투하며 “다음 영화는 200만”이라고 다짐한다. 홍 감독은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고 바라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내가 제대로 성장해서, 성장한 어떤 지점이 대중적으로 맞아떨어진다면, 더 큰 보편성을 얻게 되는 거니까 좋은 것”이라고 했다.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영화들은 대중적으로 외면받아왔다. 2008년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밤과 낮>의 국내 흥행 성적(2만명이 채 안됐다)은 처참했다. <잘 알지도…>를 자체 제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홍 감독의 호출을 받은 배우들은 기꺼이 무료 출연을 해줬다. 이제 그의 페르소나(분신)가 된 김태우를 비롯해, 고현정, 엄지원, 정유미, 공형진, 하정우, 유준상 등이 총출동했다. 특히 하정우는 “홍 감독님과 빨리 인연을 맺고 싶다. 작은 배역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없겠느냐”며 고현정에게 청탁을 넣어 정말 작은 (그렇지만 인상적인) 배역을 맡을 수 있었다.
영화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시나리오를 매일 아침 쪽대본처럼 주는데도, 배우들은 홍 감독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열려 있는 작업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화 촬영을 “발견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배우들과의 충돌을 즐기며, 그 결과를 시나리오에 반영한다. 이런 ‘아메바적 감성’이야말로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의 밑절미다. 맨발로 있기를 좋아하고, 바람 통하는 창가를 좋아하는 자유인 홍상수. 정말 놀라운 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그가 “성장한 어떤 지점이 대중적으로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14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촬영은 발견의 과정…충돌 즐겨
평단 평 좋은데 관객은 늘 냉담?
“각자 가져가는 게 다르니까…” 홍상수(48) 감독은 자리에 앉자마자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놓았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인터뷰 도중 ‘외상 장부’처럼 얄팍하게 생긴 이 수첩에 낙서를 하고 꽃을 그렸다. 질문에 답할 때는 도형과 화살표 등을 그려가며 기하학적인 설명을 했다. 추상적인 대화를 쉽게 풀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제 영화를 원이라고 생각하면 그 안에 구심점이 되는 심상이 있고, 상황에 맞도록 끌어다모은 디테일의 배열이 이뤄지는데, 어떤 사람은 여기서 두개를 가져가고 어떤 사람은 스무개를 가져가요. 어떤 사람은 불편해하고, 어떤 사람은 폭소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요. (삼각형을 그리며) 다른 영화들은 주제가 맨 꼭대기에 있고, 그 밖의 디테일들이 각도에 맞게 따라붙습니다. 주제에 강하게 봉사하죠. 좋다, 나쁘다의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주제가 뭔지는 모르지 않아요. 하지만 제 영화는 주제를 모를 수도 있어요.” 문자로 옮기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 그럴듯한 설명이다. 영화 <해변의 여인>에 비슷한 장면이 있다. 김승우가 고현정에게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무언가를 설명하자, 다 듣고 난 고현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 정말 천재 같다”며 김승우를 쓰다듬는다. 인간 홍상수와 홍상수의 영화는 이렇게 닮았다.
홍상수(48) 감독
영화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시나리오를 매일 아침 쪽대본처럼 주는데도, 배우들은 홍 감독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열려 있는 작업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화 촬영을 “발견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배우들과의 충돌을 즐기며, 그 결과를 시나리오에 반영한다. 이런 ‘아메바적 감성’이야말로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의 밑절미다. 맨발로 있기를 좋아하고, 바람 통하는 창가를 좋아하는 자유인 홍상수. 정말 놀라운 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그가 “성장한 어떤 지점이 대중적으로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14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