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문화평론가
정윤수의 문화 가로지르기 / <책 도깨비>라는 소식지가 있다. ‘제천 기적의 도서관’이 발행하는 16면짜리 얇은 소식지다. 작은 소식지이니만큼 아마 그 도서관과 제천시 일부에 배포되는 듯하나 우연히 내 작업실이 있는 건물의 1층 디자인회사에 이 소식지를 만들었기에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동안 국공립도서관이나 문화회관 같은 ‘기관’에서 발행하는 ‘관보’ 형식의 소식지를 더러 보았으나 이 <책 도깨비>만큼 세련되고 알찬 이야기로 실린 소식지는 처음이었다. 도서관 그 자체의 행정 소식은 한 쪽도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온통 어린이를 위한 책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그 내용의 풍부함이나 절실함을 떠나서, 이런 소식지가 만들어지고 또 작은 도시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을 상상하면 의외로 이 세상은 작고 낮은 곳에서나마 한 걸음씩 나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 이렇게 느낌표를 붙여 쓰고 읽어야 도서관이란 낱말이 우리 마음속의 도서관을 떠올려준다. 소설가 김연수가 ‘내 인생의 한때’에서 “마두도서관 뒤쪽 언덕배기 벤치 옆에 서 있는 벚나무는 정말 싱그러웠다. 사람으로 치자면, 열일곱 살 정도의 사내애처럼 느껴진다”고 썼던 그런 서정이 마음의 현을 울려주는 것이다. 김연수는 “아침의 마두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은 내 인생의 명장면 중의 하나였다”고 썼다. 과연 도서관은 그러한 서정의 당당한 주연이자 은은한 조연이 될 만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장석주는 이십대 시절, 아무런 대책도 없이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고 남산도서관에서 하루 낮밤을 다 보냈다. 흡사 새의 그것처럼, 지식의 둥지를 튼 남산도서관은 젊은이들의 안식처였다. 장석주는 “나를 키운 것은 도서관이다/ 내 침울함을 치유한 것도 도서관이다/ 빗방울이 흰 종아리를 내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아침에/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고 썼다. 도서관은, 당연히 학문 연구의 중추이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미국의 하버드대학은 처음에 도서관으로 시작했다. 청교도 성직자 존 하버드가 1638년에 어느 신학교에 재산과 소장 도서를 기증하면서 시작한 것이 하버드대학의 역사다. 존 하버드가 기증한 책은 260종, 400여권으로 지금으로 보면 개인 서가의 한 귀퉁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 규모지만 17세기 중엽으로서는 최대의 장서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여 오늘날 하버드대학은 600만권이 넘는 장서로 넘쳐난다. 물론 이 도서관과 장서들은 반드시 그것을 탐하여 열정적으로 읽고 또 읽는 자들에 의하여 완성된다. 근대 문학 연구에 일가를 이룬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은 1960년대에 근대 문헌자료를 충실히 보유하고 있던 고려대 도서관에서 며칠씩 자료를 살폈는데, 그 무렵 또 한 명의 연구자가 엇비슷한 자료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자료 더미 속에서 훗날 <친일문학론>을 남기게 되는 임종국 선생이 그분이다. 임종국 선생은 침낭과 간이 식기까지 챙겨 와서 책과 자료를 살폈다고 한다. 김연수나 장석주 혹은 김윤식이나 임종국이 도서관의 십진분류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관습과 행정의 산물일 뿐, 진정한 독서와 연구는 제 마음속의 라이브러리를 깊고 넓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다트머스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지만 곧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잠시 유럽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돌아온 캠벨은 학부 과정 때의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탐문하려 했으나 대학의 제도와 관습으로 반대에 부닥쳤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학제의 틀을 벗어나게 된 캠벨은 오히려 동서양의 문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철학, 생물학, 천문학, 수학, 종교학, 영문학 같은 학문의 정전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와 거대한 신화학의 살이 되었다. 다시, <책 도깨비>를 펴본다. 알찬 정보와 정 깊은 글들이 실려 있다. 이 소식지를 읽게 될 어린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이런 세계가 초등학교 어린이까지만 허락된다는 것이다. 중·고교로 진학하고 나면 도서관은 지식의 놀이터가 아니라 거대한 ‘독서실’이 되고 만다. 그런 아쉬움을 두 권의 책으로 달래본다.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우리교육), 이 책은 현장 교사들이 직접 유럽의 크고 작은 도서관에 가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것이다. 도서관이 문화의 집적과 생산과 소통의 거점임을 밝혀준다. 또 한 권은 <도서관을 구한 사서>(미래M&B). 얇은 만화책이지만 아름답고 거룩한 행동을 담고 있다. 이라크의 바스라 중앙도서관 관장 알리아.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임박하여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이 파괴될 것을 염려한 알리아는, 이라크 군대가 작전본부를 차린 도서관에서, 매일같이 책을 숨겨 집으로 옮겼다. 밤낮으로 그 일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도서관이 불타면서 ‘작전’은 중단된다. 하지만 알리아는 3만권이나 되는 책을 구해낼 수 있었다. 도서관은, 그런 곳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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