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우(49) 일본 시네콰논 대표
일본 시네콰논 이봉우 대표
일본 예술영화를 주로 틀었던 ‘시네콰논 명동’ 극장을 기억하시는지. 시네콰논 명동은 빼어난 일본 영화들을 단독 상영하며 짧은 기간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명소였다. 그러나 이 극장은 지난해 봄, 불과 2년여 만에 갑자기 문을 닫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극장을 설립했던 재일동포 2세 이봉우(49·사진) 일본 시네콰논 대표를 1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해운대 바닷가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명동점 건물주 부도로 문닫아
일본 극장에 파급…규모 줄어 “우리가 세 든 건물 주인이 부도를 내서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어요. 임대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을 포함해 40억원을 날리고 말았죠.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건물 주인이 모든 재산을 부인 앞으로 돌려놓고 이혼한 상태라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경매로 건물을 사들인 새 주인은 임대 보증금을 다시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요.” 그는 <서편제> <쉬리> <오아시스> 등 한국 영화를 일본에 배급해 한류 붐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한국 영화를 사랑했던 그가 한국 때문에 발목을 잡히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통용되는 모양”이라며 혀를 찼다. ‘서편제’ ‘쉬리’ 등 일본 배급
“요즘 한국영화 창작 열정 안보여” 돈을 빌려줬던 일본 은행들은 오히려 그를 의심했다. 한국의 친·인척을 통해 돈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1989년 시네콰논 설립 이후 20년 동안 쌓아온 신용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회사 규모를 3분의 1로 줄였고, 일본에서 운영하던 5개의 극장 중 1개만을 남기고 문을 닫거나 임대로 돌렸다.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시네콰논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구체적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한국 영화의 부진도 그를 힘들게 한다. 이 대표는 “예전에는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가 일본에서도 잘됐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20세기 소년> 같은 블록버스터가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성공한 <해운대>나 <국가대표>가 일본에서 흥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류 붐의 원조가 보는 한국 영화 혹은 한류의 오늘은 몹시 비관적이다.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영화들이에요. 몇몇 거대 영화사가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일본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거구요. 과거처럼 창작자들의 열정이 살아 있는 영화가 눈에 띄지 않아요. 한류는 아줌마들의 단체 행사로 전락해, 비웃음의 대상이 돼버렸고요.”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이 대표는 “이제 완성된 한국 영화를 수입해 가는 단계는 지났다”며 “기획 단계부터 적극 참여해 일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한국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인생은 박치기다>(씨네21 북스 펴냄)에서 영화 일을 하게 된 사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박치기> 등을 직접 제작하며 겪은 경험 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일본 시장은 앞으로 한국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해요. 내가 겪은 경험들이 한국 영화인들에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산/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 21> 기자 lightson@ci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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