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 방문한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무상급식 논쟁 관심…토론 참여 의사 있다”
“무상급식 논쟁 관심…토론 참여 의사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시장지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우리나라를 찾았다. 지난해 8월 그가 우리나라를 다녀간 뒤 <정의란 무엇인가>는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공정사회’ 담론은 무상급식 논쟁, 경제위기에 따른 사회 불평등의 심화 등과 엮여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다시 한국을 찾은 샌델은 그 동안 벌어진 현안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밝혔을까?
샌델은 12일 세계지식포럼이 열리고 있는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샌델에게 던져진 첫 질문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갈등으로 부각됐던 ‘무상급식 논쟁’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이었다. 샌델은 “한국의 무상급식 논쟁은 정의와 공정에 대해 서로 경쟁하는 이론과 철학이 실생활 속에서 명확하게 나타난 단적인 사례라고 본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전면 무상급식 주장과 선별적 무상급식 주장의 내용에 대해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 방문자로서 이 나라 정책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며 어느 쪽 견해를 더 타당하다고 보는지 자신의 의견은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이런 논쟁이 공론화되고 토론 끝에 합의를 보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라며 “전면적인 공적 토론이 열렸으면 좋겠으며, 혹시 내가 필요하다면 자발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복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관심이 집중된 주제는 미국 뉴욕 월가에서 시작돼 전국,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월가 점거’ 시위였다. 샌델은 “월가 점거 시위는 명백히 정의와 공정과 관련된 문제”라며 “경제위기 그 자체는 물론,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해 보인 반응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반영됐다”고 풀이했다. 그는 여기에 두 가지 공정하지 못한 요인이 있다고 봤다. 하나는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 현실이다. 미국의 은행과 금융회사 등 금융산업계는 호황 때 막대한 이익을 벌었지만, 막상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위기가 닥치자 그에 대한 피해는 구제금융 등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또 하나는 갈수록 극심해지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다.
특히 샌델은 정부의 구실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금융산업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도 ‘무엇무엇을 따라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며 “여기에서 책임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봤다. 경제위기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공공의 분노에는 정부가 금융산업에 대해 더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지원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정의와 공정의 잣대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샌델은 “그렇게 보기엔 힘들다”고 대답했다. 프랑스·독일의 딜레마에는 경제정책과 유럽연합의 정치 프로젝트 사이에서의 갈등을 비롯해 너무도 많은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정의·공정의 관점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여러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경제적인 문제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월가 점거는 이와 다르게 명백히 정의·공정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못을 박았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와 절친한 사이라고 밝힌 샌델은 “그와 나는 서로 전공이 다르지만, 새로운 글로벌 경제 체계의 성공은 글로벌한 윤리의식을 공유하는 도덕적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보호, 무역, 경제협력 등 글로벌한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졌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도덕·윤리는 국가(nation)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글로벌한 윤리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규칙이나 법칙보다는 공동의 윤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샌델은 자신의 새 책 <시장과 정의>(가제, 원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가 내년 봄께 출간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새 책에 대해 그는 “이전에 다뤘던 ‘시장과 윤리’라는 주제를 더 깊숙히 다뤘다”며 “돈과 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곧 평등·공동체·사회통합 등과 언제 충돌하는지가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라고 밝혔다. 곧 언제 시장 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언제 비시장적인 가치를 보호해야 하는지 등 “시장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들을 잘 누리되 사회적 불평등과 같이 시장 때문에 벌어지는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책이라고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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