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대 배수관로 유적이 발견된 명동성당 일대 재개발 공사현장 전경. 왼쪽 원이 유적이 나온 주차장 터의 발굴 구덩이다. 발굴 구덩이들 사이로 시공사 쪽이 유적 일대를 불법으로 파헤쳐 쌓은 흙과 주차장 바닥재 조각들이 보이고, 훼손된 언덕 부분(오른쪽 원)도 나타나 있다. 오른쪽 위 근대식 건물이 옛 주교관이며, 그 아래 공터가 10층짜리 교구청 신관이 들어설 테니스장 터다.
구한말 벽돌 배수관로 유적
문화재청 발굴결정에도 공사
서울대교구 해명없이 함구령
학계·시민단체와 갈등 커질듯
문화재청 발굴결정에도 공사
서울대교구 해명없이 함구령
학계·시민단체와 갈등 커질듯
결국 예상대로 ‘복병’이 나타났다.
학계 우려를 무릅쓰고 지난달 착공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주 전 성당 북쪽 주차장 터 공사장에서 구한말 벽돌 배수관로가 나와 공사가 중단(<한겨레> 10월29일치 8면)되면서 정당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시공사 쪽은 문화재청이 전면발굴 방침을 정했는데도, 지난 29, 31일 굴착기로 옛 주교관 후면 테니스코트 터와 언덕 등 유적 일대를 불법훼손했다. 시민단체가 서울교구와 시공사 쪽을 경찰에 고발하고서야 공사가 중단됐다. 천주교교단이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해 고발당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발굴된 배수로는 조선의 수공업적 토목기술이 근대 영국식 토목기술로 변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희귀 유적으로 평가된다. 일부만 돌출된 상황이라 전면 발굴할 경우, 각종 구한말 생활 유적이 계속 나올 공산이 크다. 이런 중요 유적이 나온 뒤에도 교단이 전문가 입회 없이 일대를 무단훼손했다는 사실에 문화재청과 학계 등은 당혹해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2일 오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휴일에 펜스 치고 문화재 매장지를 파헤친 교구청의 불법적 행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성당 전체 구역의 국가사적 가지정과 문화재조사 위원회 구성 등을 주장했다. 문화재청 쪽도 “전문가 입회 없이 무단 공사를 벌인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일단 70여일 정도 발굴 기간을 늘려 유적 일대를 정밀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쪽은 묵묵부답이다. 교구 홍보국 쪽은 2일 통화에서 “정해진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교단 안에서는 외부 반발이 어떻든 예정된 공사를 빨리 진척시키려는 상부의 의지가 감지된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내년 초께 예정된 정진석 추기경 은퇴를 앞두고, 그의 숙원인 교구청사 건립 등의 재개발 현안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무리수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교계 한 관계자는 “<가톨릭신문> 등 교계지 기자들의 유적 발견 사실 기사까지 싣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안다”며 “개탄 여론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현재 사업 주체는 교구관리국 건설본부지만,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관리자는 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와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로 알려졌다.
명동성당 들머리 일대는 이전부터 학계에서 ‘유적의 지뢰밭’으로 인식돼왔다. 19세기 초 박해시대 신자들 집터가 있었고, 구한말 초기 교구청 전교시대의 자취가 깃든 곳이다. 앞으로 발굴 과정에서 19세기 초 박해시대 묻은 성물이나 구한말, 일제강점기 경성 교구청 시절의 주요 유적들이 계속 쏟아질 것이라고 교구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학계·시민단체와의 보존 갈등도 더욱 심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 추기경은 지난달 16일 재개발 착공식에서 “(재개발은) 교회가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여…정의 평화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축사를 했다. 현실은 그의 바람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명동성당 재개발 반대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유적발굴 현장 펜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개발 현장에서 희귀 유적이 나온 뒤에도 공사를 강행한 서울교구청 등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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