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축산물시장 먹자골목. 오전에는 한가하다. 박미향 기자
멋쟁이 박대리, 오늘 마장동에 뜬다
저렴하고 질좋은 한우로 젊은 직장인들의 회식장소 인기몰이중인 마장축산물시장
저렴하고 질좋은 한우로 젊은 직장인들의 회식장소 인기몰이중인 마장축산물시장
오늘은 회식이 있는 날. 박유라 대리는 퇴근 무렵 동료들과 즐거운 눈빛을 교환한다. 업무를 마치자마자 동료들과 ‘고고씽!’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달려간 곳은 ‘마장축산물시장’(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먹자골목이다. 박씨는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일터가 있다. 신발 브랜드 ‘탐스’ 등을 수입하는 수입업체 코넥스솔루션에서 마케팅 업무를 한다. 패션회사에서 일하는 이답게 세련된 외모다. 그의 직장 동료들도 멋쟁이들이다. 왠지 재래시장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축산물시장을 찾는 이유는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가 너무 좋고, 한우를 싼 가격에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교통시간도 아깝지 않다. 이날 박씨와 7명의 동료들은 한우 5~6㎏을 약 40만원에 먹었다고 한다. 요즘 박씨처럼 알뜰한 멋쟁이들이 마장축산물시장을 자주 찾는다.
1등급 한우 1인분값이 삼겹살보다 저렴
들머리에 있는 먹자골목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깔리자 고기 굽는 연기로 짙은 회갈색이 덮인다. 14개 점포가 사탕 묶음처럼 이어져 있다. 골목은 밤이 깊을수록 흥겨운 가락이 고기 냄새 따라 흘러나온다. 먹자골목은 1988년 이전 인근에 흩어져 있던 음식점들이 88올림픽에 맞춰 도로정비에 들어가자 지금 자리로 이전해 형성되었다.
초입에 있는 먹자골목만 들렀다가 떠나면 축산물시장을 제대로 여행한 것이 아니다. 팥소 없는 단팥빵을 먹은 것과 같다. 둥근 아치 간판을 지나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면 서문 근처에 ‘고기 익는 마을’을 만난다. ‘술 익는 마을’은 많아도 ‘고기 익는 마을’은 처음이다. ‘고기 익는 마을’은 마장축산물시장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이 지난해 8월 문을 열어 운영하는 마을기업이다. 일종의 정육식당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고기버전인 셈이다. 이용료 4000원(성인기준)만 내면 시장에서 구입한 질 좋은 한우를 마음껏 구워 먹을 수 있다. 시중 한우전문 음식점보다 30% 이상이 싸다.
지난 6일 저녁 7시. 약 125석 규모의 ‘고기 익는 마을’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을 찾아요.” 하남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성기(65)씨 말이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이곳은 왜 찾을까? “싸고 맛있어. 질이 좋아!” 한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등학교 동창 이종만씨도 한마디 한다. “청담동에 유명한 ㅂ고깃집 가면 150g 하는 1인분에 7만5000원 해. 너무 비싸. 동네인데 안 가게 되지요.” 종암초등학교 동창인 이들은 이곳에서 모임을 자주 한다. 한잔 술에 벌겋게 달아오른 우정이 고기 향을 따라 더 진해진다.
정육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곳 축산물 시장에서는 한우 등심 최상급(1++등급) 1㎏을 7만5000~8만원에 판다. 서울 시내 한우전문점이 150g(1인분)에 4만~5만원 받는 것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고기 익는 마을’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마장축산물상가 진흥사업협동조합 고기복 상무는 “하루 평균 200~300명 몰리고, 예약은 필수”라고 말한다. ‘고기 익는 마을’이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인근 3곳의 식당에 양해를 구해 손님들을 안내하는 지경이라고 덧붙인다. 인근 식당은 5000원의 세팅비를 받는다. 고상무는 “앞으로 2호, 3호점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고씨는 한우를 살 때 구체적인 등급을 물어 구입하라고 조언한다. “‘한우 주세요’ 하지 마시고 ‘한우 투 뿔(1++) 주세요’ 하고, 보기 좋은 게 맛도 있다고 먹음직스러운 것이 좋은 고기죠. 살은 선홍빛에 지방은 맑은 흰색이 좋아요.”
마장축산물시장에서는 한우뿐만 아니라 신선한 소 부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간, 겹간, 천엽(소의 제3위), 지라(소의 비장) 등이다. 고 상무는 “경매가 끝난 소는 도축장에서 하루 정도 묵었다 시장에 들어오지만 소 부산물들은 직행해요. 잡은 지 3시간이 채 안 돼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12시에 잡은 거 2시면 들어”온다고 말한다. 겹간은 좀처럼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들다. 간의 한쪽에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간이다. 큰 간보다 더 부드럽다. 부산물전문점 ‘쌍둥이네’의 주인장 김기복씨는 능숙한 솜씨로 지라와 겹간을 손질한다. “지라는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정리할 수 있어요. 철분이 많아 빈혈 있는 사람한테 좋아요. 겹간은 한 3000원 하지.” 긴 칼로 노련하게 자를 때마다 붉은 살점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직접 만든 순대맛도 보세요
시장 들머리에는 구수한 순대 집들도 눈에 띈다. ’명권엄’마’네 순대는 공장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직접 삶아 낸다.
이른 아침에 축산물시장을 찾으면 재미있는 풍경도 만난다. 점포들은 오전 10시까지 발골(소를 부위별로 해체하는 일)작업을 마쳐야 한다.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는 광경도 꽤 진기한 볼거리다.
박미향기자 mh@hani.co.kr
마장동축산물시장 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마을기업, ‘고기 익는 마을’.박미향 기자
불판에서 잘 익어가는 고기. 박미향 기자
소의 지라(비장).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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