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 심재명(왼쪽)·이은(오른쪽) 공동 대표부부
[우리는 짝] 1회 창립 17년 맞은 명필름 심재명·이은 공동 대표부부
바야흐로 소통과 교감의 시대다. 제각기 다른 감성과 개성을 한데 녹여 문화판에서 남다른 영역을 일궈온 짝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싣는다. 다양한 인연으로 만나 차이를 밑천 삼으며 함께 한길을 걸어온 그들의 교감 방정식을 엿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기막힌 직관력’ 가진 아내와
영화산업적 측면서 논리적인 남편
“영화 같이 하려고 결혼 한 듯
살아갈수록 지금이 가장 기뻐” 남편 이은(51)은 2006년 말, 아내가 보낸 휴대전화 문자를 기억했다. ‘미안해요….’ “놀랐죠. 아내는 승부사이거든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런 식으로 인정한 게 처음이었죠.” 영화가 대중에 다가갈 지점을 읽어내는 ‘기막힌 직관력’은 남편에게 없는 아내의 재능이라 여겼던 남자이지만, 그순간 만큼은 “이 사람이 흔들린다는 직관이 들더라”고 했다. 아내는 루게릭 병으로 오래 투병하던 어머니를 2006년 4월에 떠나보냈다. 2004~2007년 강제규필름과 뭉쳐 몸집을 키운 명필름은 2006년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아이스케키> <구미호가족> 등을 한꺼번에 내놓았지만 참패했다. 아내가 제작을 지휘한 <구미호가족>의 수익률은 ‘-90%’였다. 아내는 ‘영화계를 떠나야 하나?’란 생각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천하의 심재명이 흔들리다니…. 나의 유일한 자산인데, 반쪽을 잃을 것 같아 너무 놀랐죠.” 아내 심재명(49)은 남편의 문자 답신을 떠올렸다. 동료 영화인이기에 더 깊이 전해지는 연대감이 박혀있었다. ‘제가 더 잘 할게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갑시다.’
2008년 1월. 두 사람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404만4582명)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핸드볼과 아줌마 주인공들의 결합?”이란 걱정에 맞선 명필름의 반전.
“(흥행이) 위험한 영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겁내지 않고, 그런 뒤엔 (잘 될 것이라) 진심으로 믿는” 명필름의 뚝심은 6년간 제작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한국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흥행(220만명), 투자와 마케팅에 참여해 300만명을 넘긴 저예산 영화 <부러진 화살>의 잇단 성공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말한다. “우리는 동지란 말이 더 어울려요. 내 편이 되어주는, 서로 믿어 의심치 않는 동지적 관계.”
한국영화의 품질과 다양성을 높인 충무로의 대표 브랜드 ‘명필름’을 일군 심재명-이은 공동대표 부부를 14일 서울 필운동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창립 17년을 맞은 명필름의 32번째 작품인 <건축학개론> 개봉(3월22일) 준비로 분주했다. 첫사랑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건축학개론>은 동시대의 모습과 인물이 잔잔히 투영되는 ‘명필름만의 멜로’가 묻어나는 영화다.
이번에 로맨틱멜로를 내세운 명필름의 존재감은 상업적 흥행작과 기존 트렌드에서 벗어난 대안영화까지 배출하는 ‘영화적 스펙트럼’에서 나온다. 이은 대표는 1980년대 프레스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영화운동조직 ‘장산곶매’에서 활동한 운동권 출신이다. 충무로 사람들은, 이 대표가 상업영화에서 기획·마케팅 역량을 키운 심재명 대표와 동지적 부부관계로 결합한 데에서 명필름의 색깔을 찾는다.
두사람을 20년 남짓 지켜본 정지영 감독 얘기다. “가치지향적인 이은 감독의 생각이 심재명 대표의 기획력으로 구체화되는 근사한 콤비죠. 영화사업적 파트너로서도 절대 깨지면 안 돼요. 그건 한국영화계 불운이니까.”
그래서 백기완 선생의 주례로 1994년 결혼한 이들의 ‘91년 눈오던 겨울 김포공항’은 한국영화계에서도 ‘편집·삭제’할 수 없는 장면이다.
“앞서 두번쯤 봤는데, 이성적·예술적 매력을 느꼈죠. 그런데 이 여자가 영화사를 그만두고, 한달간 유럽여행을 떠났어요. 집에 전화해 귀국일을 알아내서, 흰색 프라이드 승용차를 끌고 공항에 마중 나갔죠. 눈도 엄청 오는데, ‘아, 기회다’ 싶었죠.”(이은)
“그땐 너무 당황했죠. 사실 연심은 제가 더 품은 것 같아요. 남편이 1990년 홍기선 감독의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가 영화진흥공사 사전제작지원작에서 취소됐다며 연판장을 돌리러 (상업영화사) 기획실 젊은 직원들 모임에 찾아왔어요. 나랑 다른 영화를 고민하는 모습에 대한 선망도 있었죠. 아마 이 사람이 주류영화를 했다면 끌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심재명)
명필름은 이은-심재명의 장점을 살린 분업화와 유기적 결합을 통해 굴러간다. 장산곶매 시절 광주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 금속공장 노동자들을 담은 <파업전야> 등을 공동제작한 이은 대표는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의 경험을 앞세워 경영·예산·해외진출 등 큰 틀을 조망한다. 심 대표는 대중과 교감할 영화의 내용과 마케팅 등에 집중한다. 물론 둘의 영역은 겹치기도 한다.
“타고난 재주를 다르게 부리는 거죠. 제가 직관력이나 크리에이티브(창의성)가 있다면, 감성적이고, 다혈질적인 면도 있어요. 남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직해내고, 영화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요. 남편은 머리를 깎는 것도 수첩에 미리 적어놓은 날에 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영화를 같이 하려고 결혼을 한 것 같아요.”(심재명)
남편이 남북분단이란 민감한 소재를 다룬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의 영화화를 제안하고, 아내는 우리 사회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코드와 마케팅 접근법을 찾아내는 식이다.
“이젠 서로 하고싶어하는 영화를 존중한다”는 두 사람도, 몇몇 작품에선 대립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섬>(2000), 김응수 감독의 <욕망>(2004)을 남편이 제작하자고 할 땐 갈등을 빚기도 했죠.”
아내의 직관대로 상업적으론 실패했지만, <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등 명필름은 “될만한 상업영화”만 제작하는게 아니라는 인식도 충무로에 심었다. ‘명필름’이란 이름에서 보이듯 아내를 전면에 내세우는 남편은 “영화인물 파워순위에서도 내가 늘 밀린다”며 웃었다.
“명필름 설립 초반엔 내가 아내보다 약간 위에 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졌어요. 워낙 남성의 감각보다 뛰어난 면을 봤으니까요. 심재명이란 역량에 제가 많이 의지했죠. <공동경비구역> 때 JSA전우회의 거친 항의를 받았고, <그때 그사람들>을 만들었을 때에도 아내에게 경호원을 붙일 정도였는데, 영화제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굴하지 않더군요.”
이들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중소제작자의 공존, 영화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 등에 대한 명필름의 역할과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이 대표는 “4~5년 안에 소설 <아리랑>를 영화로 제작한 뒤, 상업영화는 심 대표에게 맡기고, 나는 사회성이 있는 영화, 독립영화의 프로듀싱을 해볼 생각도 갖고 있다”고 했다.
헤어질 무렵, 같이 작업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심 대표는 ‘흥행·영화제 수상’ 이런 것들 보다, ‘동지 같은 동반자와 잡은 손’을 언급했다.
“남편과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 최종편집본을 같이 본 새벽녘에 ‘우리가 정말 좋은 영화 만들었구나’ 기뻐하며 같이 눈물 흘리고, 영화가 전회 매진된 걸 보고 남편과 손잡고 거리를 걸을 때, <마당을 나온 암탉> 편집본을 본 딸이 ‘엄마, 아빠 좋은데요’라고 할 때…. 그런 순간들이요.”
심 대표를 바라보던 남편은 “살아갈 수록 최근, 지금이 가장 기쁘다”며 아내와 눈을 맞췄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영화산업적 측면서 논리적인 남편
“영화 같이 하려고 결혼 한 듯
살아갈수록 지금이 가장 기뻐” 남편 이은(51)은 2006년 말, 아내가 보낸 휴대전화 문자를 기억했다. ‘미안해요….’ “놀랐죠. 아내는 승부사이거든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런 식으로 인정한 게 처음이었죠.” 영화가 대중에 다가갈 지점을 읽어내는 ‘기막힌 직관력’은 남편에게 없는 아내의 재능이라 여겼던 남자이지만, 그순간 만큼은 “이 사람이 흔들린다는 직관이 들더라”고 했다. 아내는 루게릭 병으로 오래 투병하던 어머니를 2006년 4월에 떠나보냈다. 2004~2007년 강제규필름과 뭉쳐 몸집을 키운 명필름은 2006년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아이스케키> <구미호가족> 등을 한꺼번에 내놓았지만 참패했다. 아내가 제작을 지휘한 <구미호가족>의 수익률은 ‘-90%’였다. 아내는 ‘영화계를 떠나야 하나?’란 생각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천하의 심재명이 흔들리다니…. 나의 유일한 자산인데, 반쪽을 잃을 것 같아 너무 놀랐죠.” 아내 심재명(49)은 남편의 문자 답신을 떠올렸다. 동료 영화인이기에 더 깊이 전해지는 연대감이 박혀있었다. ‘제가 더 잘 할게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갑시다.’
명필름 심재명·이은 공동 대표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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