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으로 알려진 최슬기(왼쪽)·최성민 부부가 그들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 경복궁 옆 서촌의 한 골목길에서 키를 맞춘 채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닮아 보인다. 사진 속 이미지와는 달리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2005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포스터 작업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에 뚜렷한 흔적을 새겨가고 있는 이 디자이너 듀오는 서로의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는 짝]
그래픽디자이너 듀오
최슬기·최성민 부부
그래픽디자이너 듀오
최슬기·최성민 부부
베엠베 프로젝트 참가 등
국내외서 주목받는 작업 디자인 전성시대라고들 하지만 디자인 작품 또는 디자이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크지 않다. 그래픽 디자인 같은 좀더 구체적인 영역으로 파고들면 그 관심은 더욱 줄어든다. 어쩌면 척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상황에서도, 국내외 디자인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최슬기(35)와 최성민(41)씨 부부. 2005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포스터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립 디자인 활동을 시작해, 2010년 세계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모여 도시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펼쳤던 베엠베(BMW) 구겐하임 연구소 프로젝트에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 초대를 받았다.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펼쳐온 이들을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슬기와 민’ 이전, 최슬기와 최성민은 “어쩌다가” 만났다. “모든 일은 어쩌다 이뤄지는 것 같아요. 아마 인간도, 우주도 ‘어쩌다가’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우리도 그래요.”(성민) “2001년 처음 만났어요. 미국 예일대 미술대학원 그래픽디자인과에 입학했을 때였죠.”(슬기) 먼저 같은 과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자와 학부 과정을 마치고 곧장 유학을 떠난 여자는 미국에서 그렇게 만났다. ‘슬기와 민’이란 둘만의 ‘브랜드’는 성이 같았기에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항상 공동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이나 집필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겨레> 주말 매거진 ‘esc’에 2010년 1월부터 2년 동안 실었던 ‘슬기와 민의 리스트마니아’는 “주로 성민씨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최슬기 디자이너는 말한다. 디자이너 듀오 활동은 각자에게 꿈이었다. “1990년대 말, 이런 형태의 디자인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규모가 작더라도,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성민) 그들이 기억하는 첫 공동작업은 최성민의 2002년 예일대 대학원 졸업 전시회 브로셔와 포스터를 만들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으로 협업을 한 동료들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슬기씨와 함께 만들게 됐죠. 다른 사람들보다는 슬기씨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작업하는 게 편했으니까요.”(성민) “전 가까이서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어요.”(슬기) 믿음과 애정이 깔린 관계에서 시작한 공동작업은 순조로웠고, 행복했다. 그렇게 2001~2003년 유학 생활을 한 뒤, 둘은 실제로 ‘손을 잡게’ 됐다. 2003년 9월에 결혼을 했다. 동업자이자, 동거자가 됐다. 두 디자이너에겐 ‘차분하다’는 단어가 무척 어울린다. 그런데, 둘의 여정과 디자인 작업들을 보면 딴판이다. 한 군데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 온몸을 들썩이는 어린이 같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결과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슬기씨가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둘은 2003년 가을 네덜란드로 떠났다. “대학 시절 네덜란드에서 온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학생들에게 내는 과제 등을 경험해보니, 독특한 게 좋았거든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요.”(슬기) 둘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얀반 에이크’라는 연구소의 디자인과에서 공부하며 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연구·작업을 진행했다. 다만, 네덜란드에서의 삶은 “유령 도시에 갇혀 사는 느낌”(성민)이었다고 한다. “관광 산업이 발달한 유럽 소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옛 문화의 보전에만 집착하는 것 같았어요. 겉은 소박하고 예쁜 것 같지만, 변화는 없었죠. 어떨 때는 그 완고한 느낌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슬기) 둘이 함께 쓴 책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2008년)은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부부의 애정과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여행’보다는 더치 디자인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디자인’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 디자인도 온전히 둘의 몫이었다. 책의 맨 뒷장까지 꽉 찬 디자인 요소는 책의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한국행이었다. 둘이 아닌 셋이었다.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곧 딸을 낳았다. 최성민은 서울시립대 교수로, 최슬기는 계원예술대 교수로 일하게 됐다. 디자이너는 창조성이 생명인 직업이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를 떠올리면, 으레 ‘자유분방한 삶’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그러나 둘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도 어렸을 때는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절제된 삶,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슬기) “랩톱을 안 갖고 나오면, ‘어디 전장에 무기를 안 들고 가나!’라며 서로를 다그치기도 하죠. 창조성은 한가롭게 냇가에서 돌멩이 던지면서 노닌다고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성민)
남편은
철저한 이성과 글재주가
첫만남 때부터 촉매작용 아내는
세부집착 않는 큰틀 안목
배려심과 작은 얼굴 샘나 절제된 삶의 태도와 ‘지속 가능한 디자인 작업’이 왜 함께 가는지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설명은 계속된다. “디자인에 창조성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런데 그 창조성을 살릴 수 있는 작업을 하려면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필요하죠. 그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방식인 거예요.”(성민) “아이를 기르면서 더욱 간절해지는 부분이죠. 저에게는 출산이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이제 좀 적응이 됐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런 여유가 없으면 늘 하던 대로 디자인 작업을 하게 돼요. 관습적으로. 디자이너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죠.”(슬기)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두 디자이너의 모습은 마치 한 몸 같다. 그러나 서로는 서로가 정말 다르다고 본다. “완전하게 철저한 이성이 부러워요.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에도 그런 것들이 촉매작용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글 쓰는 재주 등 재능이 다방면에 있는 것도 부럽고.”(슬기)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에 진짜 부러워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농담처럼 이야기를 시작한 최성민씨가 말한다. “부러운 게, 예쁘고 얼굴 작은 거?(웃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같은 게 저는 모자라요. 그런데 배려심 많은 슬기씨가 정말 부럽죠.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디자인 작업과 관련해서는 큰 그림에 대한 결정을 슬기씨가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한 몸같이 느껴졌던 둘. 그렇게 각자의 매력과 장점을 녹여낸 디자인 작업이기에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긴장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 아닐까? 슬기와 민은 귀국 이듬해인 2006년 ‘스펙터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차렸고, 또 둘의 첫 단독전시회를 열면서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이어갔다.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최씨의 대학원 입학 시절 품었던 꿈은 스펙터 프레스로 이루어졌다. “저희가 만드는 책을 들고 다른 출판사에 가서 ‘이렇게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저희가 어떤 책을 만드는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예요.”(성민) 스펙터 프레스의 책들은 확실히 다르다. <사사 연차 보고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작가인 사사(Sasa[44])의 소비생활 자료들로 구성된, 그 자체로 ‘기록 예술’이다. 유령총서라는 이름으로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등의 번역서를 냈고, 국내 예술가들의 활동을 담은 책도 펴냈다. 이들의 책은 디자인계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많이 팔린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시대, 활자 및 책 디자인의 진화를 확인하기에 이만한 자료가 없다. 둘, 또는 하나인 이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의 힘은 끊임없는 대화다. “갈등이 그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웃어버린다. “갈등이 있으면 일을 못하잖아요.(웃음)”(성민) “정말로 좀 신기한데, 스펙터 출판사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도 의견이 부딪친 적이 없었어요. 그 출판사는 우리가 하기 싫으면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의견이 충돌할 이유도 없지요.”(슬기) 두 디자이너의 사진 촬영을 시작할 때, 부부 사이인데도 잠깐 어색함이 흘렀다. 그러다 카메라 앵글 앞에 선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공기가 흘렀다. 최성민 디자이너는 “저희 이렇게 한 번 찍어주세요”라며 스펙터 프레스의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사이에서 자세를 잡는다. 어린애 같다. 그렇게 그들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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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서 주목받는 작업 디자인 전성시대라고들 하지만 디자인 작품 또는 디자이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크지 않다. 그래픽 디자인 같은 좀더 구체적인 영역으로 파고들면 그 관심은 더욱 줄어든다. 어쩌면 척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상황에서도, 국내외 디자인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최슬기(35)와 최성민(41)씨 부부. 2005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포스터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립 디자인 활동을 시작해, 2010년 세계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모여 도시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펼쳤던 베엠베(BMW) 구겐하임 연구소 프로젝트에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 초대를 받았다.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펼쳐온 이들을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슬기와 민’ 이전, 최슬기와 최성민은 “어쩌다가” 만났다. “모든 일은 어쩌다 이뤄지는 것 같아요. 아마 인간도, 우주도 ‘어쩌다가’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우리도 그래요.”(성민) “2001년 처음 만났어요. 미국 예일대 미술대학원 그래픽디자인과에 입학했을 때였죠.”(슬기) 먼저 같은 과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자와 학부 과정을 마치고 곧장 유학을 떠난 여자는 미국에서 그렇게 만났다. ‘슬기와 민’이란 둘만의 ‘브랜드’는 성이 같았기에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항상 공동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이나 집필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겨레> 주말 매거진 ‘esc’에 2010년 1월부터 2년 동안 실었던 ‘슬기와 민의 리스트마니아’는 “주로 성민씨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최슬기 디자이너는 말한다. 디자이너 듀오 활동은 각자에게 꿈이었다. “1990년대 말, 이런 형태의 디자인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규모가 작더라도,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성민) 그들이 기억하는 첫 공동작업은 최성민의 2002년 예일대 대학원 졸업 전시회 브로셔와 포스터를 만들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으로 협업을 한 동료들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슬기씨와 함께 만들게 됐죠. 다른 사람들보다는 슬기씨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작업하는 게 편했으니까요.”(성민) “전 가까이서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어요.”(슬기) 믿음과 애정이 깔린 관계에서 시작한 공동작업은 순조로웠고, 행복했다. 그렇게 2001~2003년 유학 생활을 한 뒤, 둘은 실제로 ‘손을 잡게’ 됐다. 2003년 9월에 결혼을 했다. 동업자이자, 동거자가 됐다. 두 디자이너에겐 ‘차분하다’는 단어가 무척 어울린다. 그런데, 둘의 여정과 디자인 작업들을 보면 딴판이다. 한 군데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 온몸을 들썩이는 어린이 같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결과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슬기씨가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둘은 2003년 가을 네덜란드로 떠났다. “대학 시절 네덜란드에서 온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학생들에게 내는 과제 등을 경험해보니, 독특한 게 좋았거든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요.”(슬기) 둘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얀반 에이크’라는 연구소의 디자인과에서 공부하며 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연구·작업을 진행했다. 다만, 네덜란드에서의 삶은 “유령 도시에 갇혀 사는 느낌”(성민)이었다고 한다. “관광 산업이 발달한 유럽 소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옛 문화의 보전에만 집착하는 것 같았어요. 겉은 소박하고 예쁜 것 같지만, 변화는 없었죠. 어떨 때는 그 완고한 느낌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슬기) 둘이 함께 쓴 책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2008년)은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부부의 애정과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여행’보다는 더치 디자인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디자인’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 디자인도 온전히 둘의 몫이었다. 책의 맨 뒷장까지 꽉 찬 디자인 요소는 책의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한국행이었다. 둘이 아닌 셋이었다.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곧 딸을 낳았다. 최성민은 서울시립대 교수로, 최슬기는 계원예술대 교수로 일하게 됐다. 디자이너는 창조성이 생명인 직업이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를 떠올리면, 으레 ‘자유분방한 삶’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그러나 둘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도 어렸을 때는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절제된 삶,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슬기) “랩톱을 안 갖고 나오면, ‘어디 전장에 무기를 안 들고 가나!’라며 서로를 다그치기도 하죠. 창조성은 한가롭게 냇가에서 돌멩이 던지면서 노닌다고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성민)
철저한 이성과 글재주가
첫만남 때부터 촉매작용 아내는
세부집착 않는 큰틀 안목
배려심과 작은 얼굴 샘나 절제된 삶의 태도와 ‘지속 가능한 디자인 작업’이 왜 함께 가는지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설명은 계속된다. “디자인에 창조성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런데 그 창조성을 살릴 수 있는 작업을 하려면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필요하죠. 그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방식인 거예요.”(성민) “아이를 기르면서 더욱 간절해지는 부분이죠. 저에게는 출산이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이제 좀 적응이 됐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런 여유가 없으면 늘 하던 대로 디자인 작업을 하게 돼요. 관습적으로. 디자이너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죠.”(슬기)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두 디자이너의 모습은 마치 한 몸 같다. 그러나 서로는 서로가 정말 다르다고 본다. “완전하게 철저한 이성이 부러워요.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에도 그런 것들이 촉매작용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글 쓰는 재주 등 재능이 다방면에 있는 것도 부럽고.”(슬기)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에 진짜 부러워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농담처럼 이야기를 시작한 최성민씨가 말한다. “부러운 게, 예쁘고 얼굴 작은 거?(웃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같은 게 저는 모자라요. 그런데 배려심 많은 슬기씨가 정말 부럽죠.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디자인 작업과 관련해서는 큰 그림에 대한 결정을 슬기씨가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한 몸같이 느껴졌던 둘. 그렇게 각자의 매력과 장점을 녹여낸 디자인 작업이기에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긴장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 아닐까? 슬기와 민은 귀국 이듬해인 2006년 ‘스펙터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차렸고, 또 둘의 첫 단독전시회를 열면서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이어갔다.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최씨의 대학원 입학 시절 품었던 꿈은 스펙터 프레스로 이루어졌다. “저희가 만드는 책을 들고 다른 출판사에 가서 ‘이렇게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저희가 어떤 책을 만드는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예요.”(성민) 스펙터 프레스의 책들은 확실히 다르다. <사사 연차 보고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작가인 사사(Sasa[44])의 소비생활 자료들로 구성된, 그 자체로 ‘기록 예술’이다. 유령총서라는 이름으로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등의 번역서를 냈고, 국내 예술가들의 활동을 담은 책도 펴냈다. 이들의 책은 디자인계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많이 팔린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시대, 활자 및 책 디자인의 진화를 확인하기에 이만한 자료가 없다. 둘, 또는 하나인 이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의 힘은 끊임없는 대화다. “갈등이 그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웃어버린다. “갈등이 있으면 일을 못하잖아요.(웃음)”(성민) “정말로 좀 신기한데, 스펙터 출판사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도 의견이 부딪친 적이 없었어요. 그 출판사는 우리가 하기 싫으면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의견이 충돌할 이유도 없지요.”(슬기) 두 디자이너의 사진 촬영을 시작할 때, 부부 사이인데도 잠깐 어색함이 흘렀다. 그러다 카메라 앵글 앞에 선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공기가 흘렀다. 최성민 디자이너는 “저희 이렇게 한 번 찍어주세요”라며 스펙터 프레스의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사이에서 자세를 잡는다. 어린애 같다. 그렇게 그들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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