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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시시한 건 짓지 말자” 도발적 건축 10년, 유쾌한 아웃사이더

등록 2012-07-19 20:25수정 2012-11-08 16:45

한국 건축계의 대표적 ‘콤비’인 장윤규(오른쪽) 국민대 교수와 신창훈 건축가. 동창도, 동향도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맞아” 설계사무소 ‘운생동’을 함께 열고 공동작업을 해온 지 올해로 꼭 10년. 두 사람은 파격적이고 강렬한 건축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 건축가로 올라섰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 건축계의 대표적 ‘콤비’인 장윤규(오른쪽) 국민대 교수와 신창훈 건축가. 동창도, 동향도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맞아” 설계사무소 ‘운생동’을 함께 열고 공동작업을 해온 지 올해로 꼭 10년. 두 사람은 파격적이고 강렬한 건축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 건축가로 올라섰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우리는 짝] ‘건축콤비’ 장윤규·신창훈
건축사무소 ‘운생동’의 두 대들보
과감한 디자인으로 건축계 주목
건축은 다른 문화 장르보다 공동 작업을 하는 ‘콤비’들이 많다. 한 건축물을 2명의 건축가가 함께 설계하는 경우는 흔하고, 아예 짝을 이뤄 함께 작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 세계 건축계의 최고 스타인 스위스의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뫼롱, 일본의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콤비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건축사무실 ‘경영위치’를 운영하는 김승회 서울대 교수와 강원필 건축가, 그리고 건축사무실 ‘운생동’의 장윤규 국민대 교수와 신창훈 소장을 꼽을 수 있다.

위부터 <여수엑스포 현대자동차 기업관>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코오롱 친환경주택 ‘이+그린홈’> 세르조 피로네.
위부터 <여수엑스포 현대자동차 기업관>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코오롱 친환경주택 ‘이+그린홈’> 세르조 피로네.
이 중에서도 장윤규(48)·신창훈(42) 콤비는 특히 두드러진다. 다른 국내외 콤비 건축가들이 대부분 같은 학교 출신이거나 사제지간 같은 학연과 지연 등으로 연결되는데 장 교수와 신 소장은 그런 공통분모가 없다. 한 설계회사에서 2년도 채 못 되는 기간 함께 일한 것이 전부다. 오로지 뜻이 맞아 의기투합한 지 올해로 꼭 10년, 이 길지 않은 기간 사이에 이들은 한국 건축계의 대표 작가로 올라섰다. 강렬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승부하면서 남들은 낙선의 고통 때문에 꺼리는 설계 공모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들의 ‘전투력’은 특별하다. 건축은 외부에서 볼 때는 화려하고 문화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고독하고 치열한 경쟁의 장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장 교수의 도발적 기질과 신 소장의 꼼꼼한 스타일로 서로를 보완하고 유쾌함을 공유하면서 이 거친 무대를 헤쳐왔다. 회사이름 ‘운생동’이 동양화의 여섯 가지 화법 중 하나인 ‘기운생동’에서 따온 것처럼 작품도, 일하는 방식도 기운이 생동한다.

■ 왜 같이 하냐고요? 2001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뛰던 장 교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전 직장 아르텍 후배였던 신 소장을 불렀다. 신 소장은 회사 업무가 끝나면 선배 사무실을 찾아가 일을 도왔다. 그러기를 1년여, 장 교수는 작업실을 열면서 신 소장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고, 신 소장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합류했다. 두 사람을 빼면 직원은 단 1명인 초미니 회사였다. 운생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장 술을 잘 사주는 선배였어요(웃음). 먼 미래를 내다보는 식의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장 교수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어서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장 교수도 웃으며 거들었다. “그땐 정확히 월급의 반을 술 먹는 데 썼어요. 둘 다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어떻게 운영하고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같이 시작한 거예요.”

이제 건축계 후배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공고를 나온 장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어도 건축계 입문 이후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고, 신 소장은 건축과가 유명한 영남대를 나왔으나 간판을 따지는 한국 건축판에선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남이 다 아는 시시한 걸 할 바엔 하지 말자”는 의지 하나로 자신들의 길을 뚫어야 했다.

위부터 <예화랑> 김용관, <크링> 세르조 피로네, <더힐 갤러리> 세르조 피로네, <생능출판사> 남궁선.
위부터 <예화랑> 김용관, <크링> 세르조 피로네, <더힐 갤러리> 세르조 피로네, <생능출판사> 남궁선.
■ 거침없는 도전과 도발 회사는 열었지만 이름도 실적도 없어 초반엔 일이 없었다. 오후가 되면 근처 학교 운동장에 축구하러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 한 프로젝트가 생겼다. 서울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 짓는 예화랑 설계였다. 승부수는 ‘남들과는 다른’ 건축이었다. 거의 1년을 설계에 매달려 2005년 완공된 예화랑은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형태, 당시 비정형 건물에는 잘 쓰지 않는 베이스패널(시멘트 압축 패널)을 과감하게 외장재로 쓴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너무 과감한 스타일이어서 건축주가 망설였지만 건축주의 자녀들이 지지해준 덕분에 디자인이 채택될 수 있었다. 예화랑 건물은 2006년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특별시건축상을 휩쓸었고, 2007년에는 젊은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 건축상 에이아르(AR)상까지 받았다.

예화랑으로 궤도에 오른 콤비는 여러 경쟁 공모에서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려 나갔다. 2008년 작 ‘크링’은 건축계를 넘어 대중들에게도 많은 화제가 됐다. 금호건설의 주택 전시장이자 문화공간인 크링은 동심원이 퍼져나가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확실하게 잡아채는 건물이었다. 건축이 아니라 조각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많았지만 사람들은 이 경쾌한 작품에 즐거워했다. 이 밖에도 서울대 건축학과 건물, 서울시립대 강의동 체육관, 파주출판도시 생능출판사, 광주디자인센터 등 대부분 작품을 경쟁 공모에서 따냈고, 매번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과 논쟁을 함께 불렀다.

후배가 말하는 장윤규 교수는…
“술 잘 사주는 선배? 하하하
재미있는 프로젝트 기획통이죠”

선배가 말하는 신창훈 소장은…
“꼼꼼하게 일처리하는 실무통
요즘 하도 질러대 말리기 바빠”

■ 건축, 둘이 할 때 더 좋다 10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설계한 건물은 100여건. 다른 사무실들을 훌쩍 뛰어넘는 생산성이다. 기획통인 장 교수와 실무통인 신 소장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 덕분이었다. 그러나 작업 방식은 예상과는 다르다. 장 교수가 콘셉트를, 신 소장이 디테일(세부)을 나눠 맡을 것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토론해 처리한다.

“콘셉트를 정하고 나면 저희 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다 같이 동시에 작업을 해요. 어느 부분을 누가 할지 전혀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각자 구상을 모두 모아놓고 어떤 쪽이 좋을지 토론하고, 골라내고, 때론 합치면서 계속 나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부산물이 엄청나게 많이 생기는데, 이 부산물들이 저희의 힘이자 재산이에요. 한 작품에서 시안이나 모델이 100개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중에서 재미있었던 것들이 다음 프로젝트로 연결될 때가 많아요.” 신 소장은 “함께 이야기하면서 자기 생각을 넣었다 뺐다 해보면서 생각이 풍부해지는 것이야말로 콤비 체제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기민함에서 특히 장점을 발휘한다고 한다. “간혹 최후의 순간에 디자인을 바꿀 때가 있어요. 합의는 되었어도 속으로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하다 보면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생겨요. 혼자 했으면 겁이 나서 그냥 갔겠죠. 그러면 건물은 나와도 작품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둘이 같이 하니까 과감해질 수 있어요.”

■ 진짜 꿈은 ‘건축가 그룹’ 처음부터 같이 일해오다 보니 서로 닮아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일이 바뀌는 부분도 생긴다고 한다. “제가 원래 좀 ‘질러대는’ 스타일인데, 요즘은 신 소장이 더 질러대서 제가 말리기 바빠요.” 함께 일한 뒤로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는 점도 놀랍다. “여섯살 차이가 묘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뭘 해도 같이해야 잘되더라고요. 예전엔 주식도 잠깐 했는데 각자 산 것들은 다 망하고 둘이 같이 산 주식들만 괜찮았어요(웃음).”(신 소장)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붙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사무실 부부’나 마찬가지죠. 아니, 그보다는 전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장 교수)

다른 콤비 건축가들은 함께 작품을 하면서도 각자 프로젝트를 따로 할 때도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은 늘 공동으로 작업한다. 그럼 영원히 둘이서만? 대답은 뜻밖에도 “아니”었다. 회사의 다른 직원들이 성장해 아예 집단 창작그룹으로 진화해가는 것이 두 사람의 바람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건축을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혼자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더라고요. 지금은 이런 방식이 더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장 교수의 궁극적인 꿈은 “직원들이 대표 건축가로 성장해 모두가 동반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건축은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기가 힘들어요. 혼자 이끌고 나머지 사람이 따라가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마지막엔 저희 사무실에 진짜 건축가 열 명만 남으면 좋겠어요. 건축가 열 명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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