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월드 싸이가 ‘강남 스타일’에서 보여준 흥겨운 말춤(왼쪽)과 이 곡이 실린 앨범의 포스터 그림. 국내는 물론 미국·유럽까지 흔든 ‘강남 스타일’ 열풍은 한국 사회 각 부문의 ‘예능화 현상’을 대표하고 있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싸이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 싸이(psy)라는 얄궂은 이름의 가수가 뮤직비디오 한편으로 온 나라를 평정했다. 지난달 15일 6집 앨범 <싸이6갑(甲)>을 발표한 싸이는 유튜브 등을 통해 대표곡 ‘강남 스타일’을 크게 히트시키며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와 ‘말춤’을 알렸다. 싸이의 소속사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세계적 흐름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음악과 싸이 특유의 코믹한 캐릭터가 결합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엄마, 하나도 안 보이는데.”
“저기 보이잖아, 승민아. 맨 앞에 흰 옷 입은 사람이 싸이야~아아악!”
‘승민이 엄마’ 차아무개(39·서울 서대문구)씨의 턱끝이 가리키는 곳에 앙드레 김 스타일의 펑퍼짐한 흰색 바지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그가 덩실덩실 스텝을 밟기 시작하자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모인 수많은 시민은 일제히 비명에 가까운 함성을 쏟아냈다. 가수 싸이(35·본명 박재상)의 히트곡 ‘강남스타일’, 춤은 ‘말춤’이었다.
차씨는 14일 오후 싸이가 강남역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선 여섯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공연 시작과 함께 키 작은 아들 승민이가 안 보인다며 발을 동동 구르자 그는 아이를 번쩍 들어 보도 바깥쪽 철제 난간 위에 올렸다. 온몸으로 아들의 몸무게를 떠받치던 차씨는 강남스타일이 후렴구로 접어들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싸나이~’를 합창했다. 차씨에게 물었다.
“어머니와 아이, 누가 오자고 한 거예요?”
“하핫. 춤도 노래도 너무 재밌잖아요. 집에서 애랑 뮤직비디오를 같이 보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어하더라고요. 마침 오늘 이렇게 콘서트를 한다기에 ‘갈까’ 하고 같이 왔어요.”
강남 게릴라콘서트 현장 가봤더니…
역시, 아이보다 더 신난 건 차씨였다. 차씨만은 아니었다. 저녁 7시께부터 30분 남짓 이어진 싸이의 깜짝공연을 보려고 강남역 네거리에 모인 시민이 수천명이었다. 엄마 손에 이끌린 6살 승민이부터 10대 청소년, 넥타이 맨 회사원, 40~50대 아저씨까지 그들은 모두 싸이의 노래에 열광했다. 이날 강남역 일대의 저녁은 ‘강남스타일’로 뜨거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한국의 여름을 가장 ‘핫하게’ 달군 대중문화 텍스트로 꼽힌다. 싸이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강남스타일’은 이날부터 멜론, 벅스, 엠넷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었다. 국내 최대의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는 발표한 지 한달이 지난 17일 오전까지도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열광은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도 이어졌다. 그 진원지는 유튜브였고, 주로 소비된 방식은 뮤직비디오였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인 유튜브에서 지난 한달간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뮤직비디오는 단연 강남스타일이었다. 이 곡은 지난 14일 유튜브가 공개한 ‘이달의 가장 많이 본 동영상’ 순위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니키 미나즈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강남스타일 열풍’에 힘입어 싸이가 지난 15일 공개한 후속곡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까지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수 500만건을 가뿐히 넘어설 정도였다. 미국의 <시엔엔>(CNN)과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 프랑스의 민영방송사 <엠(M)6>, 영국의 <로이터> 등도 강남스타일 열풍을 앞다퉈 소개했다. 강남스타일 열풍은 세계 각 나라에서 ‘오빤 건담스타일’ 등 ‘○○스타일’ 패러디 동영상의 출현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야권의 주요 대선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가 지난 13일 서울 명동에서 강남스타일의 패러디 동영상 ‘명동스타일’을 찍었다. 싸이 6집 앨범 <싸이6갑(甲)>의 수록곡 ‘강남스타일’이 3분39초 동안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이 ‘강남스타일’임을 주장하는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가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에게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라며 추파를 던지는 것이 전부다.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릴 사내가 많지 않은 것처럼, 그가 원하는 그런 ‘감각적인 여자’도 주변에서 흔히 찾기 어렵다. 가사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뮤직비디오 속 사나이는 밑도 끝도 없이 ‘갈 데까지 가보자’며 여성 앞에서 씰룩씰룩 말춤을 춘다. 사나이, 곧 싸이는 여성을 웃겨서 쓰러뜨리겠다는 듯 경마장과 지하철, 놀이공원, 한강의 오리배 등 장소를 바꿔가며 흥겨운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말춤을 춘다. 혼자 추는 것도 모자라 방송인 유재석과 노홍철까지 출연해 각종 ‘저질댄스’ 컬래버레이션(협업) 공연을 시도한다. 결국 별다른 스토리텔링도 없이 말춤 하나로 ‘갈 데까지 간’ 싸이 덕분에 웃겨 쓰러진 것은 뮤직비디오 시청자였다. 윤성현 <한국방송>(KBS) 라디오 피디(라디오편성센터)는 ‘강남스타일’이 초대박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간결한 멜로디’와 ‘유머 코드’의 반복을 들었다. 윤 피디는 지난해 11월까지 한국방송 2에프엠(FM)에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제작과 <심야식당>의 진행을 맡았다. “쉽고 재밌다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열풍을 몰고온 채널이 음반 대신 뮤직비디오잖아요. 강남스타일은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곡인데, 음악만으로는 이토록 열광적인 신드롬을 불러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수년 전부터 한국 음악시장에서는 한해에 음반 1만장을 팔기가 어려워졌어요. 고전적 의미의 음악감상이 빼어난 뮤지션의 곡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음악을 ‘가지고 노는’ 콘텐츠 혹은 도구로 받아들이거든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은 거라고 봅니다.” 윤 피디는 강남스타일 열풍이 상징하는 한국 음악시장의 변화를 대중음악,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예능화’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자체를 하나의 매력적인 예능 콘텐츠라고 봐야죠. 과거의 뮤직비디오가 후렴구에서 등장인물이 비극적으로 죽는 장면을 보여주는 등 드라마적 구성을 위주로 했다면, 강남스타일은 싸이의 말춤을 바탕으로 지루할 틈 없이 유재석·노홍철 등이 재밌는 춤을 보여주는 예능적 구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능이 대세인 시대에는 일단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 시선을 일정 시간 이상 붙잡아놓을 수 없거든요.” 음악적 완성도만으론 부족 코믹한 춤이 세계적 열풍 이끌어 신보라·정형돈 등 ‘개가수’도 대중음악의 예능화 현상 정치인들도 예능 적극 활용 안철수는 힐링캠프 통해 잠재적 대선후보군 자리잡아 문재인, 안상수, 손학규도 막춤 추며 이미지 변신 시도 “버스커버스커는 존재 자체가 예능적”
싸이의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지난 14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속 가수의 잦은 방송 출연에 따른 혹사를 막기 위해, 방송보다 뮤직비디오에 좀더 성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강남스타일은 최근까지 전세계적 인기를 모은 미국의 일렉트로닉 힙합 듀오 엘엠파오(LMFAO)나 지드래곤의 앨범에 참여했던 플로 라이다의 음악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라면서도 “여기에 뮤직비디오와 유튜브 등을 통해 독특한 외모의 싸이가 코믹한 댄스를 선보이는 장면까지 알려져 전세계적 공감을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빠른 템포의 음악이 가져야 할 가장 필수적인 덕목은 결국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상반기 가요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개가수’(개그맨 겸 가수) 열풍은 대중음악의 예능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방송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용감한 녀석들’로 인기를 얻은 개그맨 신보라는 지난 3월 같은 이름의 그룹으로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 등의 노래를 정식으로 발표했다. 이들의 ‘용감한’ 시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 신보라는 이후 아예 솔로로 드라마 <유령>의 배경음악 ‘그리워 운다’를 부르며 여느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또다른 개그맨 정형돈은 <문화방송>(MBC)의 대표적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영계백숙’과 ‘순정마초’ 등의 노래를 발표한 뒤 지난 6월 가수 데프콘과 갱스터랩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를 만들어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올림픽대로’ 등을 히트시켰다. 같은 프로그램의 방송인 유재석은 이에 뒤질세라 가수 이적과 함께 ‘처진 달팽이’를 결성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가요계를 뒤흔든 ‘버스커버스커’도 사실 지난해 케이블채널 <엠넷>의 대표적 예능프로인 <슈퍼스타케이(K)3>에서 처음 존재를 알린 그룹이다. 그들의 등장 및 성장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는 갑작스레 나타난 여느 가수와 달리 다시 만난 반가운 얼굴 버스커버스커를 훨씬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윤성현 피디는 “그들은 존재 자체가 예능적”이라는 말로 버스커버스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소비의 측면에서 볼 때 예능 콘텐츠 혹은 예능 프레임이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분야는 대중음악계만이 아니다. 대중문화와 가장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정치도 최근 예능과의 거리를 부쩍 좁혀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에스비에스>(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이었다. 안 원장은 지난달 23일 개그맨 이경규와 김제동, 탤런트 한혜진 등이 진행하는 이 프로에 출연해 대선 출마와 관련해 “양쪽(대선 출마와 불출마) 다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국민의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 상당수 신문은 이를 받아 안 원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고 전했다. 안 원장은 2009년 6월에는 문화방송의 예능프로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무릎팍도사 출연은 안 원장이 잠재적 대선후보군에 포함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그는 이후 정치권에 낯설었던 ‘청춘콘서트’라는 형식의 대담·강연으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렸다. 수차례에 걸쳐 이어진 청춘콘서트는 안 원장에 대한 지지세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중은 안 원장의 등장과 정치적 성장, 사실상의 대선 출마 과정을 모두 예능프로그램 혹은 예능적 프레임을 통해 받아들였다. 최영인 힐링캠프 시피(CP·책임피디)는 안 원장 등 정치인의 예능프로 출연에 대해 “시청자와 출연하는 정치인 양쪽 모두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최 시피는 “예전에는 예능프로라면 티브이에 익숙한 연예인만 나오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운동선수와 정치인 등도 예능프로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라며 “예능을 상대적으로 낮춰 보던 시청자 역시 예능 토크쇼 등에서 연예인만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게스트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과 안상수, 누가 먼저 말춤을 췄나?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능이라는 장르를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다. 강 전 의원은 성희롱 사건 등의 여파로 지난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케이블티브이와 종합편성채널 예능·교양정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거나 출연했다. 그는 지난 6월부터 한 종편에서 예능 성격을 띤 시사·고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고, 지난달에는 케이블채널 <티브이엔>(tvN)의 본격 예능프로 <앵그리버스>의 진행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강 전 의원의 거침없는 예능 행보는 <엠넷>의 <슈퍼스타케이4> 출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강 전 의원은 14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예능프로에라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성희롱 낙인찍힌 퇴물 국회의원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스스로 ‘강용석’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적) 메시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심각하고 진지한 방법으로 이를 전하기보다 메시지에 재미라는 옷을 입히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생존’이다. 그는 17일 밤 첫 방송을 타는 <슈퍼스타케이4> 3차 예선 탈락자로 등장할 예정이다.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예능을 적극 활용하기는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파격에 가까운 방송광고를 선보였다. 당시 유시민 공동대표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배우 조니 뎁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노회찬 후보는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광고에 나타났다. 이정희·심상성 공동대표는 각각 양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으로 변신해 교복을 입고 춤을 추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인의 ‘예능 도전’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등과 맞물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는 지난 13일 낮 서울 명동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명동스타일’이란 제목의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민주통합당 경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호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의 안상수 대선경선 후보는 이틀 뒤인 15일 <엠비엔>(MBN) 방송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내가 (문 후보보다) 먼저 명동과 홍대 앞에서 (싸이의 말춤을) 췄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퍼포먼스와 관련해 안 후보는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가려면 정책 설명만으로는 안 되고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평소 딱딱한 이미지였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후보는 지난달 말 강용석 전 의원이 진행한 예능프로 <앵그리버스>에 나와 정체불명의 춤을 추며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의대 신경정신과)는 “대중이 예능이라는 익숙하고 편한 프레임을 통해 정치인을 알고 싶다고 욕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정치인이 예능프로를 찾는 것도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지난 20년간 유행했던 티브이 토론프로그램이 정치인 출연자에게 논리적인 주장과 화술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예능이라는 코드에 잘 적응하는 유명인사가 대중에게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하려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짧고 쉬운 표현으로 순발력 있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가벼운 농담에 정색하지 않는 여유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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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보] 폭풍 성장 김새론, 이제는 어여쁜 숙녀
역시, 아이보다 더 신난 건 차씨였다. 차씨만은 아니었다. 저녁 7시께부터 30분 남짓 이어진 싸이의 깜짝공연을 보려고 강남역 네거리에 모인 시민이 수천명이었다. 엄마 손에 이끌린 6살 승민이부터 10대 청소년, 넥타이 맨 회사원, 40~50대 아저씨까지 그들은 모두 싸이의 노래에 열광했다. 이날 강남역 일대의 저녁은 ‘강남스타일’로 뜨거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한국의 여름을 가장 ‘핫하게’ 달군 대중문화 텍스트로 꼽힌다. 싸이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강남스타일’은 이날부터 멜론, 벅스, 엠넷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었다. 국내 최대의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는 발표한 지 한달이 지난 17일 오전까지도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열광은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도 이어졌다. 그 진원지는 유튜브였고, 주로 소비된 방식은 뮤직비디오였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인 유튜브에서 지난 한달간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뮤직비디오는 단연 강남스타일이었다. 이 곡은 지난 14일 유튜브가 공개한 ‘이달의 가장 많이 본 동영상’ 순위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니키 미나즈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강남스타일 열풍’에 힘입어 싸이가 지난 15일 공개한 후속곡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까지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수 500만건을 가뿐히 넘어설 정도였다. 미국의 <시엔엔>(CNN)과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 프랑스의 민영방송사 <엠(M)6>, 영국의 <로이터> 등도 강남스타일 열풍을 앞다퉈 소개했다. 강남스타일 열풍은 세계 각 나라에서 ‘오빤 건담스타일’ 등 ‘○○스타일’ 패러디 동영상의 출현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야권의 주요 대선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가 지난 13일 서울 명동에서 강남스타일의 패러디 동영상 ‘명동스타일’을 찍었다. 싸이 6집 앨범 <싸이6갑(甲)>의 수록곡 ‘강남스타일’이 3분39초 동안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이 ‘강남스타일’임을 주장하는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가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에게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라며 추파를 던지는 것이 전부다.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릴 사내가 많지 않은 것처럼, 그가 원하는 그런 ‘감각적인 여자’도 주변에서 흔히 찾기 어렵다. 가사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뮤직비디오 속 사나이는 밑도 끝도 없이 ‘갈 데까지 가보자’며 여성 앞에서 씰룩씰룩 말춤을 춘다. 사나이, 곧 싸이는 여성을 웃겨서 쓰러뜨리겠다는 듯 경마장과 지하철, 놀이공원, 한강의 오리배 등 장소를 바꿔가며 흥겨운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말춤을 춘다. 혼자 추는 것도 모자라 방송인 유재석과 노홍철까지 출연해 각종 ‘저질댄스’ 컬래버레이션(협업) 공연을 시도한다. 결국 별다른 스토리텔링도 없이 말춤 하나로 ‘갈 데까지 간’ 싸이 덕분에 웃겨 쓰러진 것은 뮤직비디오 시청자였다. 윤성현 <한국방송>(KBS) 라디오 피디(라디오편성센터)는 ‘강남스타일’이 초대박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간결한 멜로디’와 ‘유머 코드’의 반복을 들었다. 윤 피디는 지난해 11월까지 한국방송 2에프엠(FM)에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제작과 <심야식당>의 진행을 맡았다. “쉽고 재밌다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열풍을 몰고온 채널이 음반 대신 뮤직비디오잖아요. 강남스타일은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곡인데, 음악만으로는 이토록 열광적인 신드롬을 불러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수년 전부터 한국 음악시장에서는 한해에 음반 1만장을 팔기가 어려워졌어요. 고전적 의미의 음악감상이 빼어난 뮤지션의 곡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음악을 ‘가지고 노는’ 콘텐츠 혹은 도구로 받아들이거든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은 거라고 봅니다.” 윤 피디는 강남스타일 열풍이 상징하는 한국 음악시장의 변화를 대중음악,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예능화’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자체를 하나의 매력적인 예능 콘텐츠라고 봐야죠. 과거의 뮤직비디오가 후렴구에서 등장인물이 비극적으로 죽는 장면을 보여주는 등 드라마적 구성을 위주로 했다면, 강남스타일은 싸이의 말춤을 바탕으로 지루할 틈 없이 유재석·노홍철 등이 재밌는 춤을 보여주는 예능적 구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능이 대세인 시대에는 일단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 시선을 일정 시간 이상 붙잡아놓을 수 없거든요.” 음악적 완성도만으론 부족 코믹한 춤이 세계적 열풍 이끌어 신보라·정형돈 등 ‘개가수’도 대중음악의 예능화 현상 정치인들도 예능 적극 활용 안철수는 힐링캠프 통해 잠재적 대선후보군 자리잡아 문재인, 안상수, 손학규도 막춤 추며 이미지 변신 시도 “버스커버스커는 존재 자체가 예능적”
싸이의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지난 14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속 가수의 잦은 방송 출연에 따른 혹사를 막기 위해, 방송보다 뮤직비디오에 좀더 성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강남스타일은 최근까지 전세계적 인기를 모은 미국의 일렉트로닉 힙합 듀오 엘엠파오(LMFAO)나 지드래곤의 앨범에 참여했던 플로 라이다의 음악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라면서도 “여기에 뮤직비디오와 유튜브 등을 통해 독특한 외모의 싸이가 코믹한 댄스를 선보이는 장면까지 알려져 전세계적 공감을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빠른 템포의 음악이 가져야 할 가장 필수적인 덕목은 결국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상반기 가요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개가수’(개그맨 겸 가수) 열풍은 대중음악의 예능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방송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용감한 녀석들’로 인기를 얻은 개그맨 신보라는 지난 3월 같은 이름의 그룹으로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 등의 노래를 정식으로 발표했다. 이들의 ‘용감한’ 시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 신보라는 이후 아예 솔로로 드라마 <유령>의 배경음악 ‘그리워 운다’를 부르며 여느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또다른 개그맨 정형돈은 <문화방송>(MBC)의 대표적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영계백숙’과 ‘순정마초’ 등의 노래를 발표한 뒤 지난 6월 가수 데프콘과 갱스터랩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를 만들어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올림픽대로’ 등을 히트시켰다. 같은 프로그램의 방송인 유재석은 이에 뒤질세라 가수 이적과 함께 ‘처진 달팽이’를 결성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가요계를 뒤흔든 ‘버스커버스커’도 사실 지난해 케이블채널 <엠넷>의 대표적 예능프로인 <슈퍼스타케이(K)3>에서 처음 존재를 알린 그룹이다. 그들의 등장 및 성장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는 갑작스레 나타난 여느 가수와 달리 다시 만난 반가운 얼굴 버스커버스커를 훨씬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윤성현 피디는 “그들은 존재 자체가 예능적”이라는 말로 버스커버스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소비의 측면에서 볼 때 예능 콘텐츠 혹은 예능 프레임이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분야는 대중음악계만이 아니다. 대중문화와 가장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정치도 최근 예능과의 거리를 부쩍 좁혀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에스비에스>(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이었다. 안 원장은 지난달 23일 개그맨 이경규와 김제동, 탤런트 한혜진 등이 진행하는 이 프로에 출연해 대선 출마와 관련해 “양쪽(대선 출마와 불출마) 다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국민의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 상당수 신문은 이를 받아 안 원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고 전했다. 안 원장은 2009년 6월에는 문화방송의 예능프로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무릎팍도사 출연은 안 원장이 잠재적 대선후보군에 포함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그는 이후 정치권에 낯설었던 ‘청춘콘서트’라는 형식의 대담·강연으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렸다. 수차례에 걸쳐 이어진 청춘콘서트는 안 원장에 대한 지지세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중은 안 원장의 등장과 정치적 성장, 사실상의 대선 출마 과정을 모두 예능프로그램 혹은 예능적 프레임을 통해 받아들였다. 최영인 힐링캠프 시피(CP·책임피디)는 안 원장 등 정치인의 예능프로 출연에 대해 “시청자와 출연하는 정치인 양쪽 모두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최 시피는 “예전에는 예능프로라면 티브이에 익숙한 연예인만 나오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운동선수와 정치인 등도 예능프로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라며 “예능을 상대적으로 낮춰 보던 시청자 역시 예능 토크쇼 등에서 연예인만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게스트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과 안상수, 누가 먼저 말춤을 췄나?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능이라는 장르를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다. 강 전 의원은 성희롱 사건 등의 여파로 지난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케이블티브이와 종합편성채널 예능·교양정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거나 출연했다. 그는 지난 6월부터 한 종편에서 예능 성격을 띤 시사·고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고, 지난달에는 케이블채널 <티브이엔>(tvN)의 본격 예능프로 <앵그리버스>의 진행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강 전 의원의 거침없는 예능 행보는 <엠넷>의 <슈퍼스타케이4> 출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강 전 의원은 14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예능프로에라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성희롱 낙인찍힌 퇴물 국회의원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스스로 ‘강용석’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적) 메시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심각하고 진지한 방법으로 이를 전하기보다 메시지에 재미라는 옷을 입히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생존’이다. 그는 17일 밤 첫 방송을 타는 <슈퍼스타케이4> 3차 예선 탈락자로 등장할 예정이다.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예능을 적극 활용하기는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파격에 가까운 방송광고를 선보였다. 당시 유시민 공동대표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배우 조니 뎁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노회찬 후보는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광고에 나타났다. 이정희·심상성 공동대표는 각각 양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으로 변신해 교복을 입고 춤을 추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인의 ‘예능 도전’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등과 맞물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는 지난 13일 낮 서울 명동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명동스타일’이란 제목의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민주통합당 경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호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의 안상수 대선경선 후보는 이틀 뒤인 15일 <엠비엔>(MBN) 방송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내가 (문 후보보다) 먼저 명동과 홍대 앞에서 (싸이의 말춤을) 췄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퍼포먼스와 관련해 안 후보는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가려면 정책 설명만으로는 안 되고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평소 딱딱한 이미지였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후보는 지난달 말 강용석 전 의원이 진행한 예능프로 <앵그리버스>에 나와 정체불명의 춤을 추며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의대 신경정신과)는 “대중이 예능이라는 익숙하고 편한 프레임을 통해 정치인을 알고 싶다고 욕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정치인이 예능프로를 찾는 것도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지난 20년간 유행했던 티브이 토론프로그램이 정치인 출연자에게 논리적인 주장과 화술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예능이라는 코드에 잘 적응하는 유명인사가 대중에게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하려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짧고 쉬운 표현으로 순발력 있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가벼운 농담에 정색하지 않는 여유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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