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들이 17일 저녁 서울 남대문로2가 한진빌딩 15층 회사쪽에 의해 봉쇄된 편집국 입구 앞에서 용역업체 직원들과 대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편집국 봉쇄’ 한국일보 파행제작
17일치 신문 8개면 줄여 축소 발행
언론단체 “장재구, 사주 자격없어”
외부 필자들 기고 거부도 잇따라
17일치 신문 8개면 줄여 축소 발행
언론단체 “장재구, 사주 자격없어”
외부 필자들 기고 거부도 잇따라
초유의 편집국 봉쇄 뒤 첫 신문 발행일인 17일, <한국일보>는 대다수 기자들이 제작에서 배제된 신문을 발행했다. 한국일보 기자들과 언론 단체 등에서는 “짝퉁 한국일보”를 내게 했다며 장재구 회장을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통상 32면으로 발행하던 신문을 24면으로 줄여서 냈다. <연합뉴스>를 전재한 기사가 17꼭지 실렸고, 뉴스통신 등 출처나 기자 이름이 달리지 않은 기사도 22꼭지나 실렸다. 일반적으로 신문사에서 기사를 직접 쓰지 않는 사회부장이 쓴 기사가 4꼭지에 이르는 등, 사쪽 입장에 선 편집국 간부 여럿의 이름이 기사에 붙었다. 이들을 포함해 신문에 이름이 실린 기자들은 모두 16명인데, 한국일보 노조는 그중 2명은 ‘근로 확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며칠 전 작성한 기사가 실렸다고 밝혔다. 논설위원들이 사설 집필을 거부한 탓에 사설도 차장급 기자가 쓴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국 출입과 기사 작성 시스템 접근을 차단당한 한국일보 기자 190여명은 서울 남대문로2가 한진빌딩에 입주한 사옥 로비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사쪽의 이런 조처에 항의했다. 정상원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발행된 한국일보는 ‘짝퉁’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먼저 독자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기자들이 정상적으로 신문을 제작하는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극히 상식적 요구를 할 뿐이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장재구 회장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200억원대의 배임 혐의로 노조로부터 고발당한 장 회장은 토요일인 15일 저녁부터 편집국을 봉쇄하고 ‘근로 확약서’를 쓴 기자들만 지면 제작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신문 편집이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 편집실에서 이뤄진다는 소식에 이곳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반면 사쪽은 제작에 참여하는 기자들이 늘고 있다며, 정상적 신문 발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종오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재 데스크급 기자들만 13명이 있고, 지면 제작에 참여하는 기자들도 수십명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신문은 만들어져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는 기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이 파행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인사 발령자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상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언론 단체들은 한국일보 기자들을 지지하고 장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일보 사태는 배임을 저지른 장 회장이 사익을 위해 기자들을 쫓아낸 것”이라며 “언론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에서 “경영 파탄의 책임자인 장 회장은 사상 초유의 편집국 봉쇄를 당장 철회하고 한국일보의 정상적인 제작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에서 “장 회장 자신의 비리 문제로 불거진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용역까지 동원한 파렴치한 행위를 당장 중단하고, (편집국을) 원상복구하라”고 요구했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번 사태로 장 회장은 더는 언론 사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기고를 거부하는 인사들도 늘고 있다.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칼럼을 쓰는 (갤러리) 류가헌의 박미경 관장이 현재의 한국일보에는 글을 쓰지 않겠다며 ‘오늘 마감 거부’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소설가 고종석씨는 트위터에 “‘한국일보’라는 제호에는 어떤 아우라가 있다. 장재구가 그 아우라에 똥물을 부었다”고 썼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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