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서 문화벨트로 변신중인 종로구 이화동에서 26일 한 주민이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쇳대박물관 제공
[문화‘랑’] ‘마지막 달동네’ 이화동의 변신
우아한 대학로 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였던 종로구 이화동. 정착한 예술인들이 마을 사람과 힘을 합치며 낡은 골목과 수십년 된 적산가옥들이 문화재생의 현장으로 변신중이다.
서울 사대문 안팎이 훤히 보이는 낙산 자락 아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종로구 이화동. 수십년 된 적산가옥을 개조한 최홍규 쇳대박물관장 작업실 ‘수작’ 한쪽 벽에는 그가 쓴 ‘인생 2막’이란 시, 그리고 낡고 구부러진 못 하나가 걸려 있다. 이 못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어 수십년 세월이 쌓인 이화동 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못이 벽에 걸려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했듯, 최근 산동네 이화동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에겐 대학로 뒤쪽의 낡은 마을 정도로 여겨지던 이화동이 문화라는 옷을 입고 탈바꿈을 시작한 것이다.
굴곡의 현대사 자취 응축된 곳
최홍규 관장 등 예술인들 뜻 모아
‘역사박물관’으로 재단장 나서
마을 재생 혜택은 지역에 환원
“이제 사람 냄새 난다” 주민들 호응 10년 전 이화동 초입에 쇳대박물관을 짓고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최홍규 관장은 이화동을 “보석 같은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운 철물’로 유명한 ‘최가철물점’ 대표로, 국내 최고의 철물 디자이너다. 최 관장은 2년 전 이곳에 허물어질 듯한 적산가옥 3채를 구입해 ‘진짜 주민’이 된 뒤 이화동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이화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을 위한 적산가옥을 지으면서 철저한 도시계획 아래 만든 마을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타운하우스인 거죠. 건축 자체가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꼽힐 만하고,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이화동은 마을 자체를 ‘역사박물관’으로 부를 만하다. 지금도 출입문이 옆이나 뒤쪽으로 트여 출입을 감추는 일본식 집들이 남아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1950년대 대단지로 개발한 도시계획 구조가 남아 있고, 1970년대 인근 동대문시장에 의류를 공급하기 위해 무수히 모여든 소규모 봉제공장과 성냥갑 같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이들의 자취도 살아있다. 적산가옥이 품은 사연부터 한국전쟁 난민과 개발독재 시절 갈 곳 없던 이들이 모여든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이화동이 문화벨트로 거듭나는 중이다. 최 관장을 비롯한 예술인 10여명이 이화동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거주지들을 거점으로 주민 147가구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마을 자체를 ‘역사 박물관’이자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시도다. 이런 구상은 지난달 열린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회’로 현실화했다.
화가·금속공예·칠보공예·보자기공예·조각 등 예술인들은 먼저 자신들의 작업실을 ‘마을박물관’으로 변신시켰다. 최 관장의 작업실 ‘수작’에는 1970년대 소규모 봉제공장과 미싱공 주거지였던 지역 특색에 맞춰 옛날 다리미·미싱·실패가 전시됐고, 유종연 사진작가의 ‘산개미 갤러리’에는 이화동 풍경을 담은 사진전이 열렸다. 또다른 갤러리들에서는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70년간 이화동에서 살아온 ‘돌밭댁’의 3대 가족 회고전과 함께 이화동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레이아웃전, 이화동 건축물 도면 전시가 마련됐다. 주민들은 전시회를 위해 솥단지, 쟁반, 주걱 등 근현대 생활품 등을 내놨다. ‘김미연 칠보공예 전시회’에는 이 마을 이정희 할머니가 만든 1000원짜리 식혜도 팔았다. 이 전시회에는 무려 80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회 이후 문화 마을 만들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마을 예술가들은 훼손된 마을 벽화를 손보기로 하고 사비 50만원씩을 나누어 냈다.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자신들의 작업실 화장실을 공용 화장실로 내놓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 관장은 “마을 주민이 된 예술인들이 원주민과 함께 무채색 도시에 색깔을 입히고, 마을 특유의 문화적 콘텐츠를 살리는 방식으로 서울의 역사를 품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동마을은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마을 벽화 사업으로 불암산 백사마을, 홍제동 개미마을과 함께 ‘서울 3대 벽화마을’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한때 원주민의 삶과 거리가 있는 이런 작업들이 관광객들의 고성방가와 벽화 훼손 등으로 오히려 동네 주민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일부 다른 지역에서 마을 살리기 뒤 집값이 상승하면서 가난한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사례가 발생한 것도 말 못할 걱정거리였다.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화동에서는 마을 재생의 혜택을 주민들에게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술인들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거리를 가꾸고 문화 콘텐츠를 확대하는 한편,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돼서 낡은 주택들을 일부 보수한 뒤 외국인 등이 묵어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협동조합을 설립·운영하는 아이디어 등을 마련하고 있다. 종로구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골목길 해설사’를 확대해 지역 노인들도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한때 마을의 변화를 우려했던 원주민들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주민 전찬호(44)씨는 “10여년간 재개발 논리에 묶여 다 죽어가던 동네가 이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방식의 마을 살리기가 어르신들을 포함한 주민들의 삶의 질까지 높여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동의 마을 살리기가 정착되면 1960~70년대 산업화 초기 모습을 간직한 옆동네 장수마을과 함께 또다른 ‘문화 벨트’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 관장은 “모든 마을 살리기의 기본은 주민이 주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예술가들이 한마을에 살면서 그 지역에 숨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발굴하고, 거기서 오는 혜택을 주민들에 돌려주는 선례를 이화동마을이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최홍규 관장 등 예술인들 뜻 모아
‘역사박물관’으로 재단장 나서
마을 재생 혜택은 지역에 환원
“이제 사람 냄새 난다” 주민들 호응 10년 전 이화동 초입에 쇳대박물관을 짓고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최홍규 관장은 이화동을 “보석 같은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운 철물’로 유명한 ‘최가철물점’ 대표로, 국내 최고의 철물 디자이너다. 최 관장은 2년 전 이곳에 허물어질 듯한 적산가옥 3채를 구입해 ‘진짜 주민’이 된 뒤 이화동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이화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을 위한 적산가옥을 지으면서 철저한 도시계획 아래 만든 마을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타운하우스인 거죠. 건축 자체가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꼽힐 만하고,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입니다.”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내년 봄 박물관을 새로 선보이기 위한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쇳대박물관 제공
지난달 열린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회’ 당시 전시관 7곳 중 ‘생활사박물관’에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손때가 묻은 다양한 소쿠리들을 기증해 전시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쇳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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