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3시께 서울 이태원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인스턴트 펑크’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언뜻 보기에는 동호회 연말 송년모임 같지만 실상 당일 처음 만난 사이들이다. “자취를 오래 했는데 요리를 잘 못해서 친구가 해주는 음식에 숟가락만 얹어 왔다”고 말하는 정혜진(31)씨는 의류브랜드 디스플레이어다. “대학 때부터 쭉 자취를 했고, 도시락을 싸 다닐 정도로 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직장인 노다희(27)씨는 옆 자리의 낯선 이와의 수다가 즐겁다.
이 자리는 미국 브루클린, 덴마크 코펜하겐 등에 사는 화가, 농부, 작가, 뮤지션 등의 삶과 그들의 밥상을 소개한 <더 킨포크 테이블>(사진)의 출간에 맞춰 출판사가 마련한 ‘킨포크 서울 디너’였다. 지난해부터 20~30대 싱글족들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이른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행사다. 소셜 다이닝은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낯선 이들과 만나 밥을 먹으면서 친목을 다지는 밥상모임. 누구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밥 한 끼를 제안할 수 있고, 제안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외롭게 밥 먹는 일이 곤혹스러운 독신들이 주최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다. 확산 배경엔 해마다 급속하게 늘고 있는 1인 가구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5.3%, 4가구 중 한 가구는 1인가구라는 소리다.
대표적인 소셜 다이닝 업체 ‘집밥’(www.zipbob.net)의 대표 박인(28)씨도 처음에는 혼자 밥 먹는 게 싫어서 페이스북에 ‘같이 밥 먹자’는 내용을 올렸다가 호응이 뜨거워 소셜 다이닝의 장터를 제공하는 ‘집밥’을 창업했다. 회원이 밥상모임의 성격과 장소, 시간을 ‘집밥’에 올리면 관심 있는 다른 회원들의 신청을 해 식사모임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1870여개의 밥 모임이 올라와있고 현재 34개가 진행 중이다.
이날 ‘킨포크 서울 디너’는 일반적인 국내 소셜 다이닝과 달리 일본, 미국, 스웨덴,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뉴질랜드, 독일 등 17개국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더 킨포크 테이블>을 일본, 미국, 한국에서 먼저 동시 출간한 ‘킨포크’ 쪽의 요구 때문이었다. ‘킨포크’(www.kinfolk.com)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디자이너, 셰프,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커뮤니티인데, 잡지 <킨포크>를 발행하고 워크숍, 디너 등을 연다.
상업적인 광고를 배제한 이 잡지는 ‘빠름에서 느림으로, 혼자에서 여럿이,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를 슬로건으로 단출하고 소박한 밥상과 함께 나눠 먹는 밥의 기쁨을 지향한다. 미식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배제하고, 농부들의 직거래 장터 등을 건강한 밥상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은 잡지의 사진은 국내에서도 일찌감치 20~30대 젊은 디자이너들이나 예술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있던 터였다. 서울 홍대 인근에서 국내외의 소규모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한 서점에서는 호당 100권 이상을 수입하면 열흘이 안 돼 완판이 됐다. 인기를 감지한 교보서점 등 대형서점에서도 올해 4월부터 수입에 나섰다. 현재 9호까지 출간된 상태다. 지난 10월에는 킨포크 워크숍이 명상센터인 ‘깊은 산속 옹달샘’(충북 충주시 소재)에서 한국의 전통 발효를 주제로 열렸고 그 내용은 킨포크 간행물에 올라갈 예정이다.
21일 디너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잡지 <킨포크>의 열렬한 팬들이다. 최근까지 화장품업체에서 마케팅과 크리에이티브 총괄을 맡았던 김명주(40)씨는 “킨포크 영문판을 보고 반했다”면서 “(킨포크 정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아야 세상은 덜 척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소셜 다이닝에 처음 참여한 유혜린(26)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공간에 온기를 나누고 나눠 먹는 다는 게 너무 좋다”고 참여소감을 말했다. 이들은 연어가 들어간 누룽지, 귤차, ‘할머니의 호박죽’ 등 자신만의 레시피도 공개해 공유했다. 이날 행사는 킨포크 누리집에서 소개됐고 이후 간행물에도 게재될 예정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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