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60·작은 사진) 이사장은 1992년 경기도 김포 홍도벌판에서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와 처음 마주쳤다. 순간 그 자태에 매료되어 23년째 두루미 보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해온 윤씨는 처음엔 사진을 찍기 위해 두루미를 찾아 나섰으나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란 것을 알게 되었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옮겼다. 김포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를 위해 모이를 주기 시작했고 나중엔 전 재산을 탕진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협회는 2006년에 생겼고 지금도 순탄치는 않지만 그전까지는 고생을 많이 했다.”
윤 이사장은 지금도 벼, 밀, 옥수수 같은 모이를 주고 있으며 밀렵감시단, 야생동물 구조, 자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두루미 외에 다른 야생동물에 관해서도 빼어난 생태사진을 찍고 있으며 두루미의 행동양식을 모니터링하는 등 연구활동도 이어왔다. 2008년 창원에서 열린 세계람사르총회에 초청받아 두루미 사진을 선보였고 경기도 사진대전 초대작가, 한강유역환경청 환경영향평가·자연경관훼손 심의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윤 이사장을 24일 김포에 있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김포를 찾은 두루미 현황은 어떤가?
“두루미 개체수는 (맨 처음 본 1992년) 당시 7마리였는데 최대 개체수가 120마리까지 갔다가 그사이 농지가 매립되면서 금년 겨울에는 한 앵글에 5~6마리씩밖에 안 보이더라. 다 세어보니 34마리가 왔다.”
─두루미가 인식표를 단 것도 아닌데 34마리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목에 있는 회색 선이 지문과 같은 것이다. 두루미의 모든 개체가 다른 무늬를 가졌다. 그중에는 20년째 홍도평야를 찾는 수컷이 있는데 ‘흰목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다행히 올해에도 왔고 흰목이도 나를 알아볼 것이다. 좌우 눈동자 색깔이 다른 녀석도 있다.”
─두루미나 다른 야생 조류를 찍을 때 어떤 방법을 쓰는가?
“텐트를 치고 잠복하는 기법을 쓰지 않는다. 일단 야생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다. 자연을 찍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의의 문제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의다. 좋은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면 그들도 따라 소통한다. 나는 가림막을 치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렌즈만 내놓고 지킨다. 그래도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두루미가 모를 줄 아는가? 다 지켜보고 있다. 다만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반응이 달라질 뿐이다.”
그의 이야길 듣고 있으니 주로 아프리카에서 야생의 사자나 코끼리 등을 동네 친구의 인물사진처럼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찍는 사진가 닉 브랜트가 떠올랐다. 자연과의 교감이 사진 찍는 실력에 앞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인터뷰 동안 야생동물에 대한 ‘예의’라는 낱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그저께도 철원 한탄강에 있는 두루미의 잠자리에 다녀왔다. 두루미는 발목과 무릎 사이 깊이의 물속에서 잠을 잔다. 뭍짐승들의 접근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고 흐르는 여울물이라 물 전체가 얼어붙지 않는다. 두루미는 한 다리로 서서 자는데 잠자기에선 입신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감도를 400 이상 올리지 않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는 셔터 속도가 30초에서 1분 정도로 노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찍은 사진을 보니 1분의 노출시간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정확히 맞아 있더라. 카메라는 삼각대 위에 있으니 흔들리지 않지만 600밀리 망원렌즈의 거리에 있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는 두루미는 대단하지 않은가”라고 윤 이사장은 말했다.
가림막 치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렌즈만 내놓고 지킨다
두루미는 다 지켜보고 있다
너무 빠른 셔터는 재미가 없다
1/350~1/500초 사이 속도여야
날개끝이 살짝 흔들리면서
동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야생 조류를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속촬영(이하 연사)을 잘 하지 않고 한 컷씩 누른다. 예를 들어 10컷을 연사했다고 치면 그 컷과 컷 사이의 동작은 볼 수도 없이 놓친 것이다. 다리 하나 날개 하나 모두 보고 누른다. 망원으로만 찍지 않는다. 온종일 600밀리 하나만 받쳐놓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50밀리 렌즈로도 철새를 찍는다. 필요할 땐 기어서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어떨 땐 너무 가까이 간 바람에 나올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었던 적이 있다. 그때 분명히 느꼈다. 두루미도 나도 서로 어쩌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날아갈 때까지 못 빠져나오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비행하는 조류를 찍으려면 셔터속도가 빨라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하는가?
“조류를 찍는 사람들을 보면 1/1000초 이상으로 빠른 ‘칼 셔터’를 쓰기도 하더라. 안타깝다. 나는 그 이상으론 잘 안 찍는다. 주로 1/350~1/500초 사이의 셔터속도를 이용하는데 그래야 날개 끝이 살짝 흔들리면서 동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더 느린 셔터로 패닝(움직이는 대상을 따라가며 찍는 기법. 흐려지는 배경 덕에 운동감이 강조된다)도 가능하다. 너무 빠른 셔터는 재미가 없다.”
평생 조류를 돌보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 몇 있다. 옛날 한강 하구에는 3000마리의 두루미가 있었다. 그러다 개발에 밀려 철원으로, 일본 이즈미로 떠나보내고 몇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보호할 기회를 얻어냈다. 김포에 신도시가 들어올 때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국토해양부에 건의해 신도시가 될 뻔한 농경지 19만평을 김포한강야생조류공원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원형보전만이 정답이 아니다. 낟알 들판을 4만평 만들고 습지도 조성하기로 확정했다. 어렵게 살아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윤 이사장에겐 딱 하나의 소원이 있다. “20여년 두루미를 돌보면서 사진을 찍어왔지만 번듯한 사진전시를 한 번도 못했다. 한국 고유의 한지에다 돌가루를 안료로 인화를 해서 사진전을 열고 싶다. 두루미와 인간의 교류를 보여줄 수 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신비스러운 사진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 많은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