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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농부가 된 사진가의 눈으로 쓴 ‘산골일기’

등록 2014-09-03 21:09수정 2014-09-03 22:21

농부 겸 전업작가 원덕희
농부 겸 전업작가 원덕희
원덕희씨 ‘그리운 것은…’ 사진집
산골 사계절·마을 대소사 등 담아
경북 의성의 산골마을에서 농부 겸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원덕희(56·사진)씨가 포토에세이집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를 펴냈다. “대문 열어놓고 사는” 산골 동네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사는 이웃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한 사진집이다.

서울 출신으로 개인전을 12차례나 연 도시인이었던 원씨는 1980년대 중반 포항 바닷가로 내려가 20년 넘게 살다가 2007년 역시 사진가이자 교사인 아내의 고향, 의성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1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우선 농사 얘기부터 했다. “밭농사를 조금 하는 정도다. 봄엔 감자, 옥수수, 쌈채소 등을 심는다. 크지 않는 규모지만 가짓수는 많다. 콩, 토마토, 산딸기, 더덕, 도라지…. 어제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었다. 시골엔 할 일이 많다. 산에 가서 뽕잎, 두릅, 엄나무, 산복숭아, 민들레 등을 수확해서 효소를 많이 담아둔다. 11월 말에 김장배추를 거두고 나면 내년 봄까지는 농한기다. 동네분들은 12월 초에 유명한 ‘의성마늘’을 심는다. 그동안 마늘 농사는 안했는데 시작해야겠다. 점차 밭을 넓혀보려고 한다. 집 마당엔 금방 뜯어먹을 채소들과 꽃을 잔뜩 심어둬서 여기도 손이 많이 간다.”

그런 와중에 책 농사는 어떻게 지었을까? “말 그대로 산골일기다. 우리 마을은 의성읍에서 차를 타고 오면 20분 거리지만 걸어가자면 중간에 재를 넘어야 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온다. 행정구역상 명칭은 의성읍 팔성리인데 택시기사들은 ‘하팔’(아래쪽 팔성리)이라고 부르더라. 이웃 마을에 인사하러 가서 하팔에서 왔다고 하니 그 동네 어르신들은 “아, 아랫바지에서”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아랫바지에 산다”라고 말한다. 모두 22 가구가 사는 동네에 가게도 하나 없어 해가 지면 적막강산이다. 이 산골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담은 포토에세이집이다.”

산골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을텐데? “1년 넘도록 동네 어르신들을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7년째 새벽 5시 가장 먼저 일어나 진돗개 ‘사랑이’를 데리고 1시간 남짓 ‘마실’ 돌면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그저 농사짓고 과수원 품도 팔고 부지런히 살았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고 살짝 소문이 나니 이장님이 ‘원 작가’로 불렀고 작은 동네라서 금방 나의 택호가 되었다. 이제는 불러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분들도 있고, 운동회, 경로잔치, 동지 팥죽 끓이는 날, 추석맞이 대청소 등등 마을 대소사 때도 사진을 찍는다. 몇년 전에는 상을 당한 옆집에서 부탁을 받고 상여 나가는 것부터 기록해 가족들에게 시디로 구워주기도 했다. 이번 책에도 들어 있다.”

원씨는 글을 많이 포함시키고 싶었던 모양인데 출판사에서 글을 3분의 일로 줄였다. 그래서 사진 한 장에 시어처럼 압축된 글 서너줄씩이 붙어있다. 과수원에 떨어진 복숭아 꽃잎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붉은 복숭아 꽃잎이 쏟아져 내린다. 짧은 봄날이 가듯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봄이 다시 와도 우리는 젊어지지 않는다.”(31쪽)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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