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새 옷 입은 우리술 젊어졌네

등록 2014-09-04 19:18수정 2014-09-04 21:03

병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꿔 호응을 얻은 우리 술 ‘문배술’과 ‘매실원주’.
병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꿔 호응을 얻은 우리 술 ‘문배술’과 ‘매실원주’.
문배주, 도자기 대신 유리병으로
양 줄이고 영문 라벨…매출 껑충
매실원주, 현대적 감각 입고 날개
“저도 이런 반응 예상 못했죠. 전통주는 출시된지 2년 정도 지나야 시장에서 평가가 내려지거든요. ‘예쁘다’, ‘색다르다’ 칭찬하시는 분들도 많고 주문이 계속 늘고 있어요.” 환한 얼굴로 말문을 연 이는 이승용(39)씨. 그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86-1호로 지정된 문배주의 맥을 잇고 있는 이기춘(72)씨의 장남이자 문배주 제조법 전수자다.

그는 지난해 말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무거운 도자기 대신 가벼운 유리병을, ‘문배술’이란 상품명 아래 한자가 아닌 영문을 적은 라벨을 선택해 술을 담았다. 병은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두께가 얇다. 언뜻보면 화장품병인가 착각할 정도로 세련됐다. “도자기병으로 판매할 때보다 갑절 이상 매출이 올랐어요. ” 이씨는 어떤 술자리에도 잘 어울리는 병을 만들고 싶었다. 도자기는 “옛날 느낌”이 강해 자신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외국 식품박람회 등을 돌면서 조사를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병들도 찾아봤다. 술의 양도 200㎖ 소량으로 줄였다. 결국 과한 음주보다는 대화 위주의 술자리 문화를 지향하는 20~30대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문배주는 제조장인 이기춘씨의 장남 이승용씨가 맛을 이어가고 있다.
문배주는 제조장인 이기춘씨의 장남 이승용씨가 맛을 이어가고 있다.
도수가 40도인 문배주는 평양의 향토주로 증류식 소주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건배주로 유명하다. 평양에서 문배주 양조장을 운영했던 고 이경찬선생이 1.4후퇴 때 남하해 고집스럽게 제조법을 유지한 덕분에 명맥이 유지됐다. 이승용씨는 그의 손자다. 승용씨의 증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평양의 양조장은 “1년치 세금으로 평양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컸다. 공장 안에 노동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배주의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다. 재료인 곡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통주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50년대 정부의 양곡관리법은 치명타였다. 곡식으로 만드는 모든 술의 생산이 금지되면서 문배주도 생산이 중단됐다.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우리 것을 찾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다시 기지개를 폈다. 1990년에 공장을 설립해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1994년에는 “물 좋다”는 김포로 이전도 했다. “할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주조기술을 가르쳐 주셨어요. 양조장이 제 놀이터였죠.”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것도 할아버지의 뜻이었다. 이씨는 앞으로 위스키나 와인처럼 한정판 시리즈도 내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매실원주는 2세로 가업을 이은 한정희씨가 맛을 이어가고 있다.
매실원주는 2세로 가업을 이은 한정희씨가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려는 우리 술이 문배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한’의 매실원주는 충청도 부여에서 터를 잡았던 한상헌(78)씨 집안의 매실주 제조법으로 만든 술이다. 한씨의 아들 정희(39)씨는 “집안에서 쭉 내려온 방식에다 양조전문가인 박경준 선생의 도움을 받아 제조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다른 과실을 섞지 않고 매실주 원액 100%로만 만든다고 한다. 직접 재배한 매실이 재료다. 그도 이승용씨처럼 매실원주에 젊은 감각을 입혔다. 300㎖ 소량을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유리병에 담았다. 세련된 문양을 라벨에 그려 넣었다. “전통주지만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병 디자인은 그의 작품이다. 본래 그는 음악을 전공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오스트리아의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부친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다. 아쉬운 점은 병 라벨에 한글을 넣지 못한 점이라고 한다. 한문을 넣어야한다는 부친의 의견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시계 장인이 공들이듯이, 악기명인이 정성을 담듯이, 술을 빚고 싶었습니다.” 매실원주는 2012년부터 3년째 3대 주류품평회 중 하나인 ‘몽드 셀렉션’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