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비비안 마이어/말루프 컬렉션
성곡미술관 두개의 사진전
다음달 2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두 개의 사진전이 동시에 열린다. 1관은 비비안 마이어의 ‘내니의 비밀’(The Revealed World of Vivian Maier), 2관은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Women Are Beautiful). 둘은 거의 같은 시대 미국의 거리를 찍었다는 점을 빼면 판이하다.
비비안 마이어 ‘내니의 비밀’전
보모 출신 ‘수수께끼’ 사진사
생전 사진 공개 않고 필름만 15만컷
부동산업자 우연히 발견 공개 입소문
일상의 스냅샷·사건현장 사진도 게리 위노그랜드 ‘여성은 아름답다’전
설정없이 여성 순간모습 찍은 85점
작품마다 거리 패션사진 연상
뉴욕·파리 미술관서 전시했었던
역사적 빈티지 그대로 한국으로 위노그랜드는 대학에서 회화와 사진을 전공했고 구겐하임재단의 지원을 3차례나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살아 있을 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를 두 차례나 열었던 당대 ‘거리사진’의 거장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도 열심히 사진을 찍긴 했지만 살아 있을 때 아무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노후에 파산하여 보관창고 비용이 연체되는 바람에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필름과 기타 기록들이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2007년 부동산업자였던 존 말루프란 사람이 동네 경매장에서 싼 가격에 구입한 상자 속에 마이어의 필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마이어가 1950년대부터 40여년간 일했던 여러 가정의 아이들은 마이어의 존재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유쾌한 보모”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말루프가 2009년 플리커에 마이어의 사진을 올리면서 처음으로 입소문이 났고 세상은 마이어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존 말루프는 베일에 싸인 신비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로 만들었고 2015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살아 있을 때 아무에게도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현상 인화되지 않은 상태의 필름 15만컷을 남겼다. 이제 전세계 순회전을 거치면서 서서히 마이어 사진세계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사진이 공개될지 궁금하다. 이번 전시에는 흑백 80여점, 컬러 20점 등 총 115점의 작품이 공개되며 <비비시>가 제작한 동영상 ‘후 투크 내니스 픽처스?’와 마이어가 직접 촬영한 동영상 9점도 볼 수 있다. 마이어의 사진세계는 너무나 다양하여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마이어 본인은 작품 발표를 할 생각이나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 정리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15만컷 중에 인화되어 공개된 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존 말루프가 2011년에 만든 마이어의 첫 사진집 <비비안 마이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와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그리고 이번 성곡미술관의 전시 보도자료를 근거로 판단한다면 우선 인상적인 대목은 셀피(자가촬영사진·셀카)를 많이 남겼다는 점이다. 실내, 거리의 쇼윈도, 심지어 인부가 운반 중인 거울 속에서도 마이어가 카메라를 든 채 살짝 미소를 띠며 찍혀 있다. 소재나 대상을 본다면 아주 직설적이고 거칠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컷이 많다. 대상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다보고 찍는 롤라이플렉스의 도움이라고만 판단하긴 힘든 것이 라이카로 찍은 컬러사진 또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피사체에 렌즈를 들이댄 결과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 즉 비비안 마이어가 왜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보모로 일하는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었고 관심 분야는 일상의 스냅샷을 포함해 사건 현장도 있었다. 영화를 보면 마이어가 직접 녹음기를 들고 마트에서 일반인을 만나 닉슨의 탄핵에 대해 인터뷰하는 대목도 있다. 신문의 사건 사고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직업은 보모였지만 세상사를 개인 차원에서 꾸준히 쫓아 취재한 것처럼 보인다.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선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저널리스트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모험적인 사람이었고 영화를 좋아했다.
2관에 전시되는 게리 위노그랜드의 이번 전시 ‘여성은 아름답다’는 1970년대 초반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문의 책임자인 존 샤코프스키가 위노그랜드의 작품들 중에서 거리에서 찍은 여성들 사진 85점을 선정하여 만든 사진집 <여성은 아름답다>와 일치한다. 성곡미술관의 이수균 학예연구실장은 “60년대 미국 여성들이 사회상의 변화에 맞물려 본인들의 개성을 마음껏 찾아가는 순간들을 위노그랜드가 몰래 포착했으니 찍힌 여성들이 카메라를 의식할 수도 없었고 또 위노그랜드가 설정하지도 않은 사진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윌리엄 클라인이 거리에서 찍은 패션사진들이 연상된다. 클라인의 거리 속 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여 반응을 보이거나 촬영을 위해 선택되고 준비된 경우가 많다. 이것은 큰 차이점이다. 흔히들 ‘거리사진가’(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고 뭉뚱그려 여러 사진가들을 혼동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거리사진’의 뜻을 생각하면 구분할 필요가 있다. 거리는 스튜디오가 아니다. 로버트 프랭크의 ‘거리’는 앤설 애덤스의 풍경, 즉 전통적 사진과 전통적 시각에 대한 반발이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몽땅 ‘거리사진가’라고 부른다면 세상에 ‘거리사진가’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보여주는 위노그랜드의 사진 속 여성들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으로 시대 유행을 발산하고 있으며 위노그랜드야말로 로버트 프랭크를 계승하는 제대로 된 거리사진가라고 하겠다. 뉴욕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파리 죄드폼 등에서 전시되었던 역사적 빈티지가 그대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지금 세계 사진계는 비비안 마이어로 인해 떠들썩하다. 생전 발표된 적도 없고 본인이 사진가라고 주장한 적도 없던 인물의 사진이 유명 미술관이나 사진의 권력자들의 추천도 받지 않은 채 유명해졌다. 에스엔에스(SNS)가 그 가치를 인정해낸 것이다. 이제 마이어에 대한 평가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로버트 프랭크,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디앤 아버스, 헬렌 레빗과 비교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사후에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선 것인데 과연 이게 한국이었다 해도 가능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사진과도 나오지 않았고 사진가에게 배우지도 않은(현재 밝혀진 바가 없다) 마이어 또는 마이어 같은 사진가를 기존 사진의 권력자들이 인정할 것인가? 한국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별문제 없다. 세계를 돌면서 순회전을 하면서 네덜란드의 포암미술관을 거쳤고 프랑스의 죄드폼도 거쳤다. 거리사진의 계보에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10년쯤 지나고 나면 비비안 마이어와 위노그랜드, 두 사진가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어떤 면에서 벌써 비비안 마이어가 더 주목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비안 마이어는 세상에 알려진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더 새롭기 때문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보모 출신 ‘수수께끼’ 사진사
생전 사진 공개 않고 필름만 15만컷
부동산업자 우연히 발견 공개 입소문
일상의 스냅샷·사건현장 사진도 게리 위노그랜드 ‘여성은 아름답다’전
설정없이 여성 순간모습 찍은 85점
작품마다 거리 패션사진 연상
뉴욕·파리 미술관서 전시했었던
역사적 빈티지 그대로 한국으로 위노그랜드는 대학에서 회화와 사진을 전공했고 구겐하임재단의 지원을 3차례나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살아 있을 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를 두 차례나 열었던 당대 ‘거리사진’의 거장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도 열심히 사진을 찍긴 했지만 살아 있을 때 아무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노후에 파산하여 보관창고 비용이 연체되는 바람에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필름과 기타 기록들이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2007년 부동산업자였던 존 말루프란 사람이 동네 경매장에서 싼 가격에 구입한 상자 속에 마이어의 필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마이어가 1950년대부터 40여년간 일했던 여러 가정의 아이들은 마이어의 존재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유쾌한 보모”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말루프가 2009년 플리커에 마이어의 사진을 올리면서 처음으로 입소문이 났고 세상은 마이어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존 말루프는 베일에 싸인 신비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로 만들었고 2015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살아 있을 때 아무에게도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현상 인화되지 않은 상태의 필름 15만컷을 남겼다. 이제 전세계 순회전을 거치면서 서서히 마이어 사진세계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사진이 공개될지 궁금하다. 이번 전시에는 흑백 80여점, 컬러 20점 등 총 115점의 작품이 공개되며 <비비시>가 제작한 동영상 ‘후 투크 내니스 픽처스?’와 마이어가 직접 촬영한 동영상 9점도 볼 수 있다. 마이어의 사진세계는 너무나 다양하여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마이어 본인은 작품 발표를 할 생각이나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 정리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15만컷 중에 인화되어 공개된 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존 말루프가 2011년에 만든 마이어의 첫 사진집 <비비안 마이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와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그리고 이번 성곡미술관의 전시 보도자료를 근거로 판단한다면 우선 인상적인 대목은 셀피(자가촬영사진·셀카)를 많이 남겼다는 점이다. 실내, 거리의 쇼윈도, 심지어 인부가 운반 중인 거울 속에서도 마이어가 카메라를 든 채 살짝 미소를 띠며 찍혀 있다. 소재나 대상을 본다면 아주 직설적이고 거칠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컷이 많다. 대상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다보고 찍는 롤라이플렉스의 도움이라고만 판단하긴 힘든 것이 라이카로 찍은 컬러사진 또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피사체에 렌즈를 들이댄 결과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 즉 비비안 마이어가 왜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보모로 일하는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었고 관심 분야는 일상의 스냅샷을 포함해 사건 현장도 있었다. 영화를 보면 마이어가 직접 녹음기를 들고 마트에서 일반인을 만나 닉슨의 탄핵에 대해 인터뷰하는 대목도 있다. 신문의 사건 사고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직업은 보모였지만 세상사를 개인 차원에서 꾸준히 쫓아 취재한 것처럼 보인다.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선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저널리스트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모험적인 사람이었고 영화를 좋아했다.
여성은 아름답다 ⓒ 게리 위노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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