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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노르웨이 인기작가’ 크나우스고르, 한국서도 통할까

등록 2015-12-14 19:15수정 2015-12-15 15:15

한길사가 내년 1월 출간 예정인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 시독회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길사가 내년 1월 출간 예정인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 시독회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 내년 1월 한국판 출간 앞두고 시독회

10일 서울 홍대앞 한 북카페. 북유럽 노르웨이산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두루마리 벽화처럼 내걸린 공간에 14명의 30~60대 남녀 독자가 상기된 얼굴로 모여 앉았다. 노르웨이에서 2년째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소설가, 문학을 ‘포기’한 자리에서 저만의 ‘새로운 문학’을 퍼올려 자국은 물론 세계 문학계에 괴물 작가로 이름 올린 남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47)의 자전 소설 <나의 투쟁>의 번역본을 미리 읽은 이들의 시독회 현장. 각기 인상깊은 대목 한자락씩 낭독하고 품평하는 자리다.

노르웨이 문학상 휩쓴 화제작
“입센 이후 최고”…자국 성인 절반 읽어
소설 미리 만난 독자 14명
“술에 대한 사유 압권” “깊이 느껴져”

 “아버지에게 삶은 술마시기였고 나에겐 글쓰기였다.”

 그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벽에 걸린 두루마리 영상에서 작가가 연극배우 같은 카리스마를 뿜자 좌중은 곧 수다스러워졌다. 소설 속 술에 대한 사유를 압권으로 꼽은 독자 박종일(번역가)씨가 “제가 술을 고2 때부터 50년간 마셨는데 아직도 내가 왜 마시는지 정의하지 못했다. <나의 투쟁>을 읽다 아 이거였구나 했다”고 말하자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다.

또다른 독자 차현인(치과의사)씨는 아버지 장례를 앞둔 날 작중 화자인 ‘나’가 형과 함께 할머니를 만나는 ‘행복한 한때’를 꼽았다. “나는 할머니가 내일 약속(아버지 주검 수습)에 대해 물어보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할머니와 손자가 아니라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들로 앉아 있어야만 할 테니.” 차씨는 이 구절에 공감한 까닭을 체험을 곁들여 얘기했다. “최근 제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 갔는데, 어머니 영정 옆에서 울고 있던 친구가 제 앞에서 웃어요. 친구가 저한테 술잔 따를 때는 어머니 아들이었다기보다는 제 친구였던 거죠.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존재가 달라지나봐요. 이 소설의 깊이를 그 장면에서 느꼈지요.”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투쟁>은 그것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다큐멘터리라 할 만하다. 나를 이루는 건 죄다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고집스레 자기 기억을 끄집어내어 발화하는 소설이다. 기억해 내기는 그 중요한 도구다. 여덟 살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어선 한 척이 흔적없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보다 그 화면에서 바닷물 위로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그 시각, 석양 머금고 빛 발하던 창밖의 눈송이들, 창밖 마당에서 아버지는 땅을 파고 있었다. 소설 속 ‘나’는 어떤 가공장치 없이 작가 자신이다. 유년에서 40대의 지금까지 그가 거쳐온 숱한 인물, 연애 상대, 학교 선생, 가족 친지까지 거의 모든 이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2009년 첫권이 발표되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렀다. 그의 삼촌은 “네 아버지 삶을 모독했다”며 출간에 반대했고, 일부 언론은 소설 속 실제 인물들을 모두 찾아 인터뷰했다. 2011년 6권으로 완간된 소설은 현재 노르웨이 성인 절반이 읽었다. ‘크나우스 하다’(나의 투쟁을 읽다)란 말이 신조어로 뜰 만큼 ‘크나우스고르 현상’이 일었다. 이 나라 온갖 문학상을 휩쓴 데 이어 유럽·미국 포함 32국에서 출판되며 세계적인 화제작이 되었다. “입센 이후 노르웨이 최고 작가”, “노르웨이의 프루스트”라 불리며 작가는 요즘 세계 독자를 만나느라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작가는 오래 동안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쓰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작품의 시작을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고백문처럼, 한번도 얘기한 적 없는 모든 비밀을 말하였다. 미학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에너지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독자 권영숙(콘텐츠기획자)씨는 “망각에 관한 얘기, 기억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허은실(시인)씨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홍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기억을 꺼내는 것처럼 <나의 투쟁>은 집안 바닥 쪽나무 얼룩을 본 뒤 어릴 적 방송에서 본 ‘바다에서 떠오른 얼굴’을 떠올린다. 죽음의 첫 기억에서 출발해 삶이란 평범한 것들 안에 숨겨진 비범함에 있는 것 아닌가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장르를 규정짓자면 사소설에 들 이 소설의 특징은 뜻밖에도 꾸밈없음이다. 그의 글은 수사나 현학이 없다. 지루하리만큼 세부로 들어가다 문득 심연을 툭 건드리는 눈물, 얼굴, 상처. 그리하여 우리 삶을 지탱케 하는 일상의 무늬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이 서사가 한국에서도 통할까? 소설은 내년 1월 한길사에서 출간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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