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응징 영화 3편으로 본 2015
암살 득세한 친일파 저격하고
베테랑 갑질왕 재벌 수갑채우고
내부자들 권력·언론 민낯 폭로
암살 득세한 친일파 저격하고
베테랑 갑질왕 재벌 수갑채우고
내부자들 권력·언론 민낯 폭로
“복수극으로 가자고, 화끈하게.”(영화 <내부자들>의 대사)
2015년, 우리 영화관에 복수와 응징, 정의 실현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영화 <암살><베테랑><내부자들>등이 대중적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이들 상업영화에 대중이 호응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기득권 형성·유지 구조 파헤쳐
현실에선 힘든 정의실현에 열광 현재 상영중인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은 개봉 30일째인 18일까지 628만8639명의 관객을 모으며, 올해 흥행 순위 3위에 올랐다. 19살 미만 관람불가 영화로는 역대 최대 기록이다. 서로 상극인 정치깡패와 검사가 손을 잡고 거대한 불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지난여름 극장가에선 <암살>(감독 최동훈)이 독립투사들의 고귀한 투쟁과 득세한 친일파에 대한 응징을 그려내 1000만 관객 고지를 밟았고,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선 한 형사가 안하무인인 재벌 3세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격투 끝에 붙잡으면서 역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이들 영화는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예전에도 <부당거래><도가니><변호인>등 ‘사회적 발언’으로 여겨지는 영화는 많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많이 개봉됐고 차례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형 사회비판 장르’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문제들을 각각 상징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린다. <베테랑>이 요즘은 손자(3세)한테까지 세습되고 있는 재벌 체제를, <내부자들>은 재벌과 유력 정치인, 거대 보수언론 등 정·경·언 유착의 구조를 파헤친다. <암살>도 친일 잔재 청산 실패 문제를 다룬다. 기득권층이 친일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재벌 체제 속에서 부를 축적한 뒤, 정치인과 언론으로 강력한 보호막을 완성한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재벌이 ‘악인’으로 스크린 중앙에 자리잡은 것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으로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까지는 특정 정치인(<26년>, 드라마 <추적자>)이나 부패한 검사(<부당거래>), 공안기관(<변호인>) 등이 악인으로 등장했으나, 이제는 재벌이 주요 악역이 됐다. 이는 ‘맷값 폭행’과 ‘땅콩 회항’ 등에서 드러난 재벌의 오만한 행태가 사회적 공분을 쌓아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쪽에선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비정규직의 설움이 넘쳐나는데 반대쪽에선 갓난아이에게 수십억원의 주식을 증여하는 등의 행태가 이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도 심해졌다. 재벌의 세습 행태는 대중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베테랑>은 그냥 재벌이 아니라 ‘재벌 3세’(유아인)의 오만함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심보선 경희사이버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는 “명퇴와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어린 재벌 3세한테 굽실거리는 대기업 직원들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말했다. 사회학자들은 이 대목을 ‘중산층 붕괴 현상’과 연결해 해석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내놓은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81%)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이는 2013년 같은 조사(75.2%)보다 5.8%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20·30대 젊은층과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이쪽은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인데, 저기 반대편에선 재벌들이 대물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우리 사회 다수 구성원의 생각이다. <내부자들>에 나오는 “잘하든가 아니면 잘 태어나든가”라는 대사에 많은 이들이 주목한 이유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몇년 사이 한국 사회가 중산층 붕괴와 함께 양극화하면서 신분 또는 계급 사이의 벽이 높아지고 있음을 영화는 지진계처럼 민감하게 포착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저런 놈은 당해야 돼’…잠시나마 후련했다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등 올 한해 크게 흥행한 이른바 ‘사회비판 영화’들은 모두 상업영화이다.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티켓 파워가 있는 인기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었다. 세 작품 모두 재벌과 부패 정치인 등 대중의 불만이 맺혀 있는 지점을 잘 포착했고, 이를 속시원하게 응징함으로써 크게 흥행했다. 암살·베테랑·내부자들 기득권부패 현실직시, 통쾌한 응징
분노의 상품화 지적 있지만
사람들 체념에서 건져내는 효과도 ‘장그래’와 ‘이수인’의 현실 노동자 권리찾기 등 방법 제시
응징영화가 생략한 ‘현실적 길찾기’ ■ ‘안전밸브’인가, ‘군불’인가 이들 사회비판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담아냈지만, 결말은 ‘비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암살>은 뒷골목 저격으로 친일파를 응징하고, <베테랑>은 주부도박단 단속을 위장해 마약파티 현장을 덮친다. <내부자들>은 더 많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문란한 섹스파티의 동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법을 쓴다. 이런 결말에 대해 영화 <베테랑>에선 “판 뒤집혔다”고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이 영화들이 현실은 잘 보여줬지만, 해법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영화 속에서 문제 해결은 모두 개인 영웅의 특별한 용기와 비상한 행동으로 가능했고, 시민들은 관객으로서 구경만 하면 된다. 이 영화들을 ‘정의 판타지’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영화 자본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도가니>(2011)에 이어 <레 미제라블>(2012), <변호인>(2013) 등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일제히 사회비판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형마트 노동자들을 그린 <카트>(2014, 관객 81만명)와 여러 독립영화들이 고전하는 걸 보면서, 결국 판타지를 그리는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윤주 경희사이버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 사회학 전공)는 “상업영화는 대중의 분노를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며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독립영화는 현실 개선을 위한 ‘계단 한 칸’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회비판 영화의 긍정적 측면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효과는 분명 크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았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과)는 이런 이중적 평가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들 영화는 불만의 증기를 조금씩 빼줘 사회가 지금처럼 돌아가게 하는 안전밸브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무기력증과 체념에 계속 빠지지 않도록 군불을 때는 것일 수도 있다.” ■ ‘장그래’와 ‘이수인’ 이들 ‘정의 판타지’는 영웅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암살>처럼 총을 들어 쏠 수도, <내부자들>처럼 수억원을 들여 결정적 증거인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미생>의 장그래와 <송곳>의 이수인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태호와 최규석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데, 둘 다 티브이 드라마로 제작돼 안방극장에서 주목받았다. 두 작품은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자들이 매일 살아가는 공간인 직장이 주요 무대이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노조를 통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찾기를 그린다. 시민이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일상생활의 괴로움이 ‘나’의 게으름이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나 때문인지 사회 때문인지, ‘해석투쟁’이 벌어지고, <미생>과 <송곳>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한다고 해도, 다음 단계로서 ‘방법’이 제시돼야 한다. 집회를 나갈까, 정당이나 노조에 가입할까. 어떤 식이든 움직일 선택지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회 참여나 노조 가입의 비용이 낮은 정치제도적 환경이 자리잡아야 한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에선 집회에 참여하면 경찰이 찾아오고, 노조에 가입하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내부자들>등 세 영화는 첫번째 해석투쟁 단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현실적 장벽인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있다”며 “현실의 중간 단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송곳>과 비정규직의 실상을 함께 아파하는 <미생>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현실에선 힘든 정의실현에 열광 현재 상영중인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은 개봉 30일째인 18일까지 628만8639명의 관객을 모으며, 올해 흥행 순위 3위에 올랐다. 19살 미만 관람불가 영화로는 역대 최대 기록이다. 서로 상극인 정치깡패와 검사가 손을 잡고 거대한 불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지난여름 극장가에선 <암살>(감독 최동훈)이 독립투사들의 고귀한 투쟁과 득세한 친일파에 대한 응징을 그려내 1000만 관객 고지를 밟았고,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선 한 형사가 안하무인인 재벌 3세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격투 끝에 붙잡으면서 역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이들 영화는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예전에도 <부당거래><도가니><변호인>등 ‘사회적 발언’으로 여겨지는 영화는 많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많이 개봉됐고 차례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형 사회비판 장르’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문제들을 각각 상징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린다. <베테랑>이 요즘은 손자(3세)한테까지 세습되고 있는 재벌 체제를, <내부자들>은 재벌과 유력 정치인, 거대 보수언론 등 정·경·언 유착의 구조를 파헤친다. <암살>도 친일 잔재 청산 실패 문제를 다룬다. 기득권층이 친일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재벌 체제 속에서 부를 축적한 뒤, 정치인과 언론으로 강력한 보호막을 완성한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재벌이 ‘악인’으로 스크린 중앙에 자리잡은 것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으로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까지는 특정 정치인(<26년>, 드라마 <추적자>)이나 부패한 검사(<부당거래>), 공안기관(<변호인>) 등이 악인으로 등장했으나, 이제는 재벌이 주요 악역이 됐다. 이는 ‘맷값 폭행’과 ‘땅콩 회항’ 등에서 드러난 재벌의 오만한 행태가 사회적 공분을 쌓아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쪽에선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비정규직의 설움이 넘쳐나는데 반대쪽에선 갓난아이에게 수십억원의 주식을 증여하는 등의 행태가 이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도 심해졌다. 재벌의 세습 행태는 대중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베테랑>은 그냥 재벌이 아니라 ‘재벌 3세’(유아인)의 오만함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심보선 경희사이버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는 “명퇴와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어린 재벌 3세한테 굽실거리는 대기업 직원들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말했다. 사회학자들은 이 대목을 ‘중산층 붕괴 현상’과 연결해 해석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내놓은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81%)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이는 2013년 같은 조사(75.2%)보다 5.8%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20·30대 젊은층과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이쪽은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인데, 저기 반대편에선 재벌들이 대물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우리 사회 다수 구성원의 생각이다. <내부자들>에 나오는 “잘하든가 아니면 잘 태어나든가”라는 대사에 많은 이들이 주목한 이유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몇년 사이 한국 사회가 중산층 붕괴와 함께 양극화하면서 신분 또는 계급 사이의 벽이 높아지고 있음을 영화는 지진계처럼 민감하게 포착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저런 놈은 당해야 돼’…잠시나마 후련했다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등 올 한해 크게 흥행한 이른바 ‘사회비판 영화’들은 모두 상업영화이다.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티켓 파워가 있는 인기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었다. 세 작품 모두 재벌과 부패 정치인 등 대중의 불만이 맺혀 있는 지점을 잘 포착했고, 이를 속시원하게 응징함으로써 크게 흥행했다. 암살·베테랑·내부자들 기득권부패 현실직시, 통쾌한 응징
분노의 상품화 지적 있지만
사람들 체념에서 건져내는 효과도 ‘장그래’와 ‘이수인’의 현실 노동자 권리찾기 등 방법 제시
응징영화가 생략한 ‘현실적 길찾기’ ■ ‘안전밸브’인가, ‘군불’인가 이들 사회비판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담아냈지만, 결말은 ‘비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암살>은 뒷골목 저격으로 친일파를 응징하고, <베테랑>은 주부도박단 단속을 위장해 마약파티 현장을 덮친다. <내부자들>은 더 많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문란한 섹스파티의 동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법을 쓴다. 이런 결말에 대해 영화 <베테랑>에선 “판 뒤집혔다”고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이 영화들이 현실은 잘 보여줬지만, 해법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영화 속에서 문제 해결은 모두 개인 영웅의 특별한 용기와 비상한 행동으로 가능했고, 시민들은 관객으로서 구경만 하면 된다. 이 영화들을 ‘정의 판타지’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영화 자본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도가니>(2011)에 이어 <레 미제라블>(2012), <변호인>(2013) 등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일제히 사회비판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형마트 노동자들을 그린 <카트>(2014, 관객 81만명)와 여러 독립영화들이 고전하는 걸 보면서, 결국 판타지를 그리는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윤주 경희사이버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 사회학 전공)는 “상업영화는 대중의 분노를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며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독립영화는 현실 개선을 위한 ‘계단 한 칸’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회비판 영화의 긍정적 측면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효과는 분명 크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았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과)는 이런 이중적 평가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들 영화는 불만의 증기를 조금씩 빼줘 사회가 지금처럼 돌아가게 하는 안전밸브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무기력증과 체념에 계속 빠지지 않도록 군불을 때는 것일 수도 있다.” ■ ‘장그래’와 ‘이수인’ 이들 ‘정의 판타지’는 영웅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암살>처럼 총을 들어 쏠 수도, <내부자들>처럼 수억원을 들여 결정적 증거인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미생>의 장그래와 <송곳>의 이수인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태호와 최규석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데, 둘 다 티브이 드라마로 제작돼 안방극장에서 주목받았다. 두 작품은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자들이 매일 살아가는 공간인 직장이 주요 무대이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노조를 통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찾기를 그린다. 시민이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일상생활의 괴로움이 ‘나’의 게으름이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나 때문인지 사회 때문인지, ‘해석투쟁’이 벌어지고, <미생>과 <송곳>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한다고 해도, 다음 단계로서 ‘방법’이 제시돼야 한다. 집회를 나갈까, 정당이나 노조에 가입할까. 어떤 식이든 움직일 선택지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회 참여나 노조 가입의 비용이 낮은 정치제도적 환경이 자리잡아야 한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에선 집회에 참여하면 경찰이 찾아오고, 노조에 가입하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내부자들>등 세 영화는 첫번째 해석투쟁 단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현실적 장벽인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있다”며 “현실의 중간 단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송곳>과 비정규직의 실상을 함께 아파하는 <미생>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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