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 한창기 선생, 박인규 전 <한국방송>프로듀서. 사진 남추문화재단제공
“우리 문화에 남다른 애정이 기울였던 분의 삶을 공연으로 표현하기가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고 한창기(1936~97) 선생의 꼿꼿한 삶을 압축한 융합 공연의 연출 총감독을 맡은 박인규(58·전 <한국방송>프로듀서)씨는 24일 “한창기 선생이 평소 어떤 것을 좋아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어떤 사람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창기-80년 만의 귀향’ 주제 아래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선생 다시보기 장르융합 공연’이라는 부제가 이 공연의 의미를 알려준다. 전남문화예술재단 지원사업으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29일 오후 6시 순천대 70주년기념관과 30일 오후 4시 고흥문화회관에서 두 차례 펼쳐진다.
박 총감독은 “한 선생은 이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았는데도 우리 문화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벌교 출신인 한창기는 1976년 최초의 한글전용·가로쓰기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펴낸 출판인이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잡지가 강제 폐간되자 84년 <샘이 깊은 물>로 재창간했다. <민중자서전>을 발간하고, 판소리 명창들을 초청해 감상회를 열고 사설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공연 1부는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문화가 어떻게 왜곡·말살됐는지를 보여준다. 보성 별량 상두꾼 서화석씨가 상여소리를 통해 그 아픔을 달랜다. 이어 한창기 선생의 연대기를 영상과 음악으로 소개하고, ‘잽이’의 풍물 공연이 등장한다. 3부에선 판소리·민화·잡지·녹차·옹기 등 그가 좋아했던 것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윤진철 명창의 보성소리도 한 대목 들려준다. 또 ‘샘이 깊은 물’ 창간호 표지에 등장한 조선시대 민화 ‘여인도’ 속 여인 차림을 한 춤꾼이 등장해 춤을 춘다.
박 총감독은 “선생은 그 민화 속 조선 여인의 모습 속에 꾸미지 않은 우리 문화의 정수가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 낙안 출신인 박 총감독은 지난 9월 퇴직한 뒤 남추문화재단 설립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선생이 남긴 유물을 보관·전시하는 순천 낙안의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제 고향집 터에서 20m 거리에 있다.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송곳(추)처럼 도드라진 끼를 지닌 남도 문화예술인들을 발굴해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