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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입에 문 먹이를 놓친 여우

등록 2016-04-22 21:23수정 2016-04-23 14:11

최종천, 나의 시를 말한다
이 주의 시인 최종천

노동의 현악사중주

베토벤이 현악사중주에서
불협화음을 마음껏 끌어들여 즐긴 것은
일종의 놀이이다.
노동을 놀이로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실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치수도 각도 다 틀리게
시간과 공간과 희롱하면서
잘 못 자른 것은 다시 붙일 수 있고
붙인 것은 다시 자를 수가 있으니
실수는 성공보다 즐기기에 좋은 것이다.
실패란 옳게 된 것이라 할지라도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예술의 완성은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에 몰두하는 이유이다.
노동은 그것이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즐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견습공한테 시켜 놓고 보면 좋다.
뭐든 실수와 실패를 통하여 배운다.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재미없고 위험하다.
사실, 예술이란 형상을 다루는 것으로
시종일관하는 시행착오이다.
예술은 허구이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를 즐길 수 있으나
노동은 질료인 실체를 다루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지 못한다.
인간이 노동에 몰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시인동네> 2015년 겨울호 수록-

인간의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은 자연사물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연사물에 폭력을 가하여 사용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이 이성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자연사물의 생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을 하면서 대상인식을 지니게 되었고 그 대상인식이 발전하여 자기의식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대상이 없었다면 노동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직도 인간은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원숭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가 무질서를 증가시키게 되는 이유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남는 초과분의 생체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 때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은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노동의 착취도 필연적으로 된다. 따라서 오직 자본주의 사회만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자본주의의 확대·심화를 촉진한다. 노동은 이 모든 사건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자본권력을 상대로 하는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한 답은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이다. 이 답도 분명하다. 그것은 2세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2세를 만들 때 2세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2세에게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기 시작하고 있다. 자각이 있는 젊은이들, 가난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해도 2세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이다. 2세가 많이 태어나면 그만큼 생존경쟁이 극렬해질 것이다. 지구환경 파괴와 오염, 공해, 온난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 간의 생존경쟁이다. 자본주의는 개인 간의 생존경쟁을 통하여 유지·발전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노동계급이 2세를 낳아 노동만을 하게 한다면 자본주의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2세를 교육시켜 자본의 질 높은 소모부품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노동 동지들에게 말한다. 2세를 가지지 말라! 2세를 낳아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은 자본가들을 위한 일이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평생을 자본의 노예로 살다가 죽을 것이냐? 인생을 즐겨라!

4, 5년 전 민주노총의 일원일 때 당시 현대제철을 시작으로 하여 플랜트사업장이 늘어나던 당진에, 민노총 플랜트지부가 개설되었다. 어쩌다가 개설식에 갔다. 돼지머리 입에 푸른 지폐 몇 장을 물리고 술을 따라 올리고 지부장이 소원을 빌었다.

“우리 당진지부 동지들이 장가를 들어 이불이 들썩거리게 하여 주십시오. 자식을 많이 낳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 말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노동계급은 이렇게 고질적이고 무식하다. 그들은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그들의 에로티즘은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어쩌면 유일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자신의 2세를 출세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동한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자신의 2세를 자신처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 보았자 도낀 개낀이 아닌가? 최상급의 아주 질이 좋은 노예인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의 기술이 가장 발전해 있는 나라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전통이다. 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노동계급이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자본주와 지배계급의 요구는 모두 관철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인식이 변해야 노동의 현실이 변하는데 대한민국의 노동계급은 그렇지가 않다. 대한민국의 노동계급은 노동을 하면서도 대상인식이 자기의식으로 되지 않은, 인간으로의 진화 직전의 동물 상태라는 말이다. 대상인식은 동물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솝은 우화에서 먹이를 물고 가다가 물에 비치는 자신이 물고 있는 먹이를 보고 그 먹이를 물기 위해 입을 벌리다 먹이를 놓쳐 버리는 여우를 소개하고 있다. 물에 비친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 여우가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자의 초상이다.

최종천
최종천
최종천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눈물은 푸르다>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고양이의 마술>, 산문집으로는 <노동과 예술>을 냈다.



노동하지 않기

“나는 곧장 말하겠다/ 富의 내용은 문명이나 예술/ 예술이 만들어 내는 상품이나 문화 따위가 아니다/ 富는 손상되지 않은 자연과/ 소외되지 않는 노동이다.”(‘富란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란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되는/ 잔업 시간인지도 모른다.”(‘잔업 시간’)

에둘러 말하기는 시의 미덕과 의무처럼 알려져 있지만, 어떤 시들은 곧장 말한다. 에두르는 말의 미학과 다의성보다, 직설의 충격과 메시지가 필요할 경우다. 지난 시대에 한국 사회를 뒤흔든 노동시의 상당수는 직설했다. 시가,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자들의 머리와 가슴에,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사람과 삶을 잡아먹는 현실에, 직진하기를 바랐다.

‘문화의 시대’라는 허울을 쓴 헬조선의 현실은 ‘신(新)노예사회’라는 체감을 실감으로 바꾸고 있다. 상위 1%의 ‘노동 초월자’를 제외한 모두가 점점 더 많은 노동과 실업, 삶의 비용에 고통받고 있다. 이 괴물성의 노동의 시대에, 노동시는 정작 낡고 왜소한 것이 되었다. 노동시의 쇠락은 노동에 대한 진언(眞言)마저 공허한 울림으로 만든 ‘자본의 승리’를 반증한다. 그 승리의 비밀의 하나는, “날개와는 달리 욕망은 착륙하지 않는다는 것”(‘날개’)에 있다. 허공을 떠도는 욕망은 노동의 비참에 눈감고, 노동의 무의미에 침묵한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잔업”까지 맹렬히 하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에 편승한다. ‘당신’과 ‘나’는 헬조선의 고통스러운, 분노하는, 그러나 순응하고 있는 노동자-노예인 것이다.

이 구조적이며 내발(內發)적인 비극을 끝내는 최후의 방법을, 최종천은 곧장 말한다. 노동하지 않기. 이세 노예를 생산하지 않기. “소외되지 않는 노동”이 불가능하다면, 노동과 노동자 자체를 폐기하자는 이 극단적인 주장은, 최근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정치적 견해이기도 하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노동, 자신의 삶과 행복을 결정하는 노동자, 놀이와 노동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은 지금, 극단의 부정성을 통해(서만) 꿈꿀 수 있는 것으로 화하고 있다. 비보(悲報)가 오보(誤報)일 확률은, 얼마인가.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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