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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바람 잘 날 없는 미술판…반전 꾀할 콘텐츠마저 빈곤

등록 2016-06-20 16:32수정 2016-06-20 20:39

이우환·천경자·조영남…악재 ‘시끌’
미술판 치부 대중앞 적나라하게 노출
위작 논란 이면엔 ‘알력 다툼’ 분석도

새 이슈나 콘텐츠도 못 내놓은 채
담론없이 민중미술 시장성만 좇아
서울시립미술관의 민중미술컬렉션 상설전 ‘앤솔로지’의 전시장 모습.
서울시립미술관의 민중미술컬렉션 상설전 ‘앤솔로지’의 전시장 모습.
2016년 여름 국내 미술판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감정가들 사이의 암투와 무자료 밀실 거래 관행이 화근을 만든 이우환 위작 시비, 법정으로 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이 잇따르며 이해관계에 따라 감정이 휘둘리는 미술시장의 구린 이면이 부각됐다. 팝아티스트를 자처해온 가수 조영남씨가 무명작가에게 자신의 그림 제작을 맡겼다는 이른바 ‘대작 사건’이 몰고온 타격도 컸다. 과거 미술품 비자금 파문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미술판 치부가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이슈가 된 것은 전례없던 일이다.

복마전? 대중과 더욱 멀어진 미술판 5월 가수 조영남씨가 무명화가에게 수년간 수백여점을 대신 그리게 하고 자기 작품처럼 팔아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대작 시비’가 불거졌다. 조수가 대신 그리게 하는 것은 관행이라는 조씨의 해명을 놓고 대중과 미술인들 사이에 치열한 논란이 일어났다. 대중과 상당수 작가들은 유명세를 빙자한 연예인의 사기성 판매라고 조씨를 규탄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조수에게 제작을 맡기는 관행은 20세기초 변기를 전시에 출품한 뒤샹 이래로 현대미술 특유의 어법으로 인정받았다면서 검찰의 수사 개입은 무리수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조씨에 대한 거센 비판여론 앞에서 전통적인 작가의 고독한 수작업을 신봉하며 분노하는 대중과의 인식차이는 좁힐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미술인들은 실감해야했다. 조씨의 작품성은 논할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는게 중론이지만, 수십차례의 개인전·단체전을 벌였고,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으며, 오광수씨 등 유명 평론가들이 역량있는 작가라고 호평한 사실은 또 어떻게 봐야할까. 사법적 단죄와 별개로 작품성보다 유명세에 휘둘리는 미술판 내부의 초라한 실상이 대중 앞에 드러났다는 평이 적지않다.

이우환 작가의 위작 수사와 고소전으로 치달은 천 화백의 ‘미인도’ 진위 공방도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양대 악재가 됐다. 이우환 위작의 경우 이달초 경찰은 시중 압수작품 13점을 전문가들의 과학 분석을 내세워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했으나, 필수적 절차인 작가의 사전 감정을 무시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압수품 중 지난 연말 케이옥션에 출품한 1점은 작가가 <한겨레> 인터뷰에서 진짜로 확신한다고 밝혔고, 이우환 전문가로 꼽히는 중견화상 2명도 진품 판정을 내려 천 화백의 ‘미인도’처럼 진위 규명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천 화백의 ‘미인도’ 진위시비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유족이 애초 진품의견을 냈던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을 지난달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초 공청회를 열어 유통업허가등록신고제, 등록거래 이력제 등의 대책을 검토한다고 밝혔으나, 감정기능에 대한 신뢰가 실추된 상황에서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화랑가 감정기관들은 과거 이우환, 박수근, 도상봉 등의 작품 감정을 놓고 내분으로 조직이 이합집산하고, 각기 다른 판정을 내린 전력들을 갖고 있다. 이우환 위작 수사도 이면에는 화랑주들의 감식안에 불신을 표출해온 작가와 이에 반발한 화랑가 인사들의 알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화랑가의 한 관계자는 “밀실 거래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족보’격인 판매기록 작성·보관부터 의무화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영남 대작사건과 잇따르는 위작 시비, 빈곤한 전시콘텐츠로 올 상반기 한국 미술판은 깊은 수렁 속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사진은 북서울미술관의 기획전 ‘행복한 나라’에 나온 함경아 작가의 2007년작 설치작품 ‘오데사의 계단’.
조영남 대작사건과 잇따르는 위작 시비, 빈곤한 전시콘텐츠로 올 상반기 한국 미술판은 깊은 수렁 속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사진은 북서울미술관의 기획전 ‘행복한 나라’에 나온 함경아 작가의 2007년작 설치작품 ‘오데사의 계단’.
이슈도 콘텐츠도 부실 미술이 예술장르의 정체성을 지키지못한 채 복마전으로 난타당하는데도, 전시 영역에서는 새 이슈나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고 2차 시장 경매가 흐름을 좌우하는 쏠림현상도 심화되는 중이다.

올 상반기 전시 흐름은 4월 가나아트센터의 ‘리얼리즘의 복권’ 전을 필두로 일어난 80년대 민중미술의 재조명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1~2년전부터 인기를 모은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후속 상품을 찾는 상업적 기획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초창기 ‘현실과 발언’ 동인의 도시미술 연구, 현장투쟁 미술로 나갔던 80년대 중반의 ‘두렁’ ‘광주자유미술공동체’ ‘힘’전 등 민중미술사조의 여러 갈래들을 조망하는 새로운 연구성과가 거의 없고, 현재 정치 사회적 현실과 잇닿는 동시대 참여미술에 대한 조명은 지지부진하다.

국공립 미술관들의 기획전들은 화랑가의 트렌드를 받아 정리하는데 치중하는 모양새다. 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로 들어온 사진가들 작업을 모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전은 엉성한 전시틀과 작품 구성이 입길에 올랐다. 80~90년대 사회참여적 작가들의 작품들을 그러모은 북서울미술관의 ‘행복한 나라’전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의 민중미술컬렉션전 ‘앤솔로지’는 상업화랑의 민중미술전 흐름을 별다른 관점 없이 매끄럽게 포장한 수준에 머무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옥션 등 경매사들이 단색조회화에 이어 60~70년대 추상미술이나 민중미술 등의 근현대미술사 작품들을 최근 경쟁적으로 판에 끌어들인 것은 긍정적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담론이 뒷받침되지 않아 시장성만 좇는다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지난해 우후죽순 솟아났던 청년작가들의 신생공간들도 지난해 10월 작가장터 ‘굿즈’와 올봄 서울시립미술관의 연합전 ‘서울바벨전’을 기점으로 상당수 문을 닫거나 개점휴업 상태다. 담론과 콘텐츠가 작동되지 않는 지금 미술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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