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샨드리 메네기니가 찍은 2014년 12월 쿠바 아바나의 밤 풍경.
지난 6·25 날 한가람미술관에서 로이터 사진전 개막 행사에 참여하면서 나는 짙은 감회에 사로잡혀 한동안 전시장을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일간지인 <독립신문>이 창간되면서 <로이터 통신>과 정식으로 뉴스 공급 협정을 맺은 해가 1896년이니, 이 사진전이야말로 신문을 중심으로 한 우리 언론의 역사와 120년 동안 궤를 함께하면서 우리나라 근대 개화에 끊임없이 자양을 주어온 로이터 통신 보도사진의 역사를 바라보는 한 출판인의 감회였다. 동시에, 세계사적 사건의 풍경 속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궤적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는 감격과 함께, 내가 살아온 굴곡진 이 시대의 삶을 그 위에 투영해 보게 되는 느낌이 각별했기에 말이다.
로이터가 160년의 세월 동안 세상 곳곳을 누볐던 고독한 기록자들의 흔적 451점은 치열하다 못해 뜨거웠다. 사진술이 발명되던 1839년 이후 로이터 통신이 설립되던 1851년 무렵은 사진의 초기 시대가 새롭게 자리잡던 때로서 모든 사진이 사뭇 진지한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디지털 기술 시대인 오늘에 이를수록 도대체 사진이 어디로까지 갈 것인가 회의가 들 정도로 백화난만하다. 게다가 갈등과 증오, 끝을 모르는 욕망과 경쟁과 충동 들로 얼룩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출 줄 모른다. 사진의 기록도 예외는 아닐 터이다.
전시기획자인 호정은씨의 안내로 그가 설정했다는 일곱 개의 전시 방을 거치고 마지막 방인 에필로그에 들어서는데, 나는 문득 한 점 사진 앞에 멈춘다. 알레샨드리 메네기니가 찍은 2014년 쿠바 아바나의 밤 풍경이다. 그는 그 사진 밑에 이렇게 적고 있다. “밤늦게 아바나 시내를 걷던 나는 도로변에서 물구나무서 있는 한 소년을 보았다. 이 사진은 삶의 단순한 즐거움을 상기시킨다. 이런 즐거움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며, 쿠바는
이런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이 글은 정답게 나의 우울을 달래 주었다. 1953년에서 1959년에 이르는 쿠바 혁명군의 투쟁은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쓰러뜨린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형제가 앞장선 혁명군의 쿠바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엠바고를 끈기있게 견뎌내고 지혜롭게도 오바마 대통령과 대등한 화해를 이끌어낸다. 이제까지의 쿠바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음을 이 사진은 웅변하고 있다.
이기웅 도서출판 열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