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충무공 이순신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한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경한안진고(驚寒雁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이 소설의 시작에 앞서 서시(序詩)로 실려 있다. 충무공은 가을날 해질 무렵 추워진 날씨에 놀란 기러기 떼가 날아갈 때부터 이튿날 새벽 달빛이 창에 비쳐들 때까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나라는 왜군들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위태로운 처지에 있었다. 충무공은 자신을 시기하는 조정 내부의 모함을 뚫고 백의종군에 나서야만 했다. 충무공은 사무치는 안타깝고 외로운 마음을 홀로 시로 읊었다.
이 한시에서 운(韻)을 붙인 자(字)는 2행 승행(承行)의 ‘고’(高)와 4행 결행(結行)의 ‘도’(刀)이다. 충무공의 충절과 기개는 새벽달과 같이 밝고 ‘높았다’(高). 충무공은 무한 고독 한가운데서도 달빛에 비추인 활의 시위와 같이 팽팽하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또한 곧 적진으로 나아가 휘두를 ‘칼’(刀)과 같이 굳세고 힘찬 각오를 다졌다.
읽을 때 마음속에 한 폭 그림으로 그려지는 한시가 수작이다. 처음 한시를 공부할 때에는 동양화 속에 화제(畵題)로 쓰는 서정시들을 좋아했다. 유종원의 ‘강설’(江雪)에서는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가 눈 나리는 겨울날 찬 강에서 홀로 쪽배를 타고 고독한 낚시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가도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에서는 소나무 아래서 차를 달이는 동자가 선생의 행방을 묻는 방문객에게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구름이 깊어 행방을 모른다)라고 선문답하는 풍경이 읊어졌다. 모두 중국인들이 쓴 서정 가득한 한시들이다.
충무공의 사령부였던 통영 제승당에는 충무공이 직접 쓰신 ‘한산도야음’이 판각되어 주련(柱聯)으로 걸려 있다. 주련의 붓글씨 솜씨를 보면 충무공은 드물게 문식(文識)과 무략(武略)을 두루 갖추고 고루 뛰어났다. 이 시를 읽고부터는 선비들이나 충무공,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들이 우리의 강산을 노래한 한시와 나라를 걱정하여 쓴 우국시도 즐겨 찾아 읽게 되었다.
영화 <명량>이 개봉된 2014년 3월부터 12월까지 나는 이 한시를 가지고 춘천에서 ‘소지도인 강창원 97세 기념 서예전’을 열었다. 아마 같은 한시를 쓴 서예작품 37점을 한자리에서 전시한 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었던 기획으로 생각된다. 전시회가 열린 열 달 동안 작품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이 시의 내용과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이 시를 지은 충무공의 마음을 곰곰 헤아려 보았다. ‘한산도야음’을 읽을 때마다 내 가슴속에는 충무공의 절대고독과 투혼에 휩싸여 잠 못 이루시던 모습이 또렷이 한 폭 그림으로 그려진다.
김종헌 춘천 피스오브마인드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