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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덕기자 덕질기] 미미인형과 티끌 같은 삶 / 황금비

등록 2016-08-24 17:47수정 2016-08-25 10:04

‘어서 와, 덕질은 처음이지?’ 지난달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디즈니 인형들.
‘어서 와, 덕질은 처음이지?’ 지난달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디즈니 인형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인형들이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해외 쇼핑몰을 클릭한다. 쇼핑몰마다 가격을 비교해본다. ‘8.88달러, 7.56달러…’

지난달 디즈니 공주 인형 시리즈를 사기 위해 해외 쇼핑몰을 검색했는데, 백설공주, 라푼젤, 신데렐라, 아리엘(인어공주), 벨(미녀와 야수) 등 인형 5개를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45달러(약 5만원) 가까이 나왔다. 배송비에 더해 미국 주마다 붙는 세금은 별도였다. 살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일본 만화 피규어를 모으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인형 다섯 개에 배송비까지 해서 8만원 가까이 드는데 살까?” 친구가 말했다. “그냥 사. 내 손가락만한 피규어는 하나에 7만원이야.^^”

덕후 친구들과 모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인형 덕후, 다른 친구들은 각각 애니메이션, 게임, 연예인 덕후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순간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고. 이는 사회 초년생의 코딱지만한 월급을 덕질에 쏟아붓는 우리의 생활에 나름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문이면서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티끌을 모으면, 그냥 모여 있는 티끌이 된다.

1991년에 나를 낳고 회사에 입사했다는 아버지의 첫 월급은 32만원이었는데, 그중 20만원을 매월 꼬박꼬박 저금했다고 한다. 그 돈을 모아서 집 사고, 차 사고, 애 둘 낳아 키우고 대학까지 보냈다는 부모님은 매일같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꾸준히 모으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집 사고 차 사고 애 키우는’ 계획을 접은 나는 그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인생의 장기 계획은 고이 접어 날려버린 나는 또 마냥 불행한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덕후는 적어도 덕질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돈은 저금할수록 쌓이겠지만, ‘오늘 내가 아마존에서 결제를 해야만 느낄 수 있는’ 내 행복은 오늘이 지나면 사라진다.

황금비 국제뉴스팀 기자
황금비 국제뉴스팀 기자
나는 아직 부모님께 ‘덕밍아웃’(타인에 의해 의도치 않게 덕후라는 것이 알려지거나 스스로 공개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3층짜리 미미의 집을 보고 어떤 말씀을 하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요즘 부모님께서 신문을 열심히 보셔서, 혹시나 지면을 통해 탄로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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