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서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실에 있던 집채만한 스피커였다. 프랑스의 스피커 제조사 포칼의 ‘그랜드 유토피아’(사진)라는 스피커였다. 공식 누리집의 설명에 따르면 높이는 2m가 넘고, 무게는 230㎏에 이른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한국 판매 가격은 2억원을 훌쩍 넘는다.
오디오에 취미가 있는 사람도 이 정도 급이면 ‘넘사벽’이다. 오디오쇼에 전시돼 귀동냥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저런 스피커를 설치할 공간이 있는 가정집이 얼마나 되겠나. 스피커가 2억원이 넘으면 앰프는 얼마나 할까. 상상 초월이다.
보도를 보고 나서, 오디오 취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국 사회에서 오디오가 취미라고 하면 일단 ‘아재 취미’ ‘귀족 취미’ ‘돈×랄’ 등이라는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소리가 다 똑같지, 네 귀가 황금귀냐”는 비아냥도 뒤따른다.
왜 그럴까. 일단 (제대로 만든) 오디오는 비싸기 때문이다. 소수만을 위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오디오 기기마다 개성 있는 소리를 구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더욱 잘 듣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월 1만원의 ‘무제한 음악 듣기’ 서비스로 만족한다. 이러한 ‘경제적 음악 듣기’가 대세인 상황에서 장당 몇만원 하는 시디나 엘피를 산 뒤 앰프와 스피커를 거쳐 음악을 듣는다는 건 ‘합리적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디오 마니아는 존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좋은 소리가 주는 ‘마력’ 때문이다. 자신이 평소 즐겨 들었던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경험, 귀가 아니라 심장을 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소리의 마력에 사로잡힌다. 오죽하면 <소리의 황홀>이란 제목의 책이 있을까.
오디오에 처음 빠지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디오에 빠진다. ‘단지 돈이 많아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란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이건희 회장도 오디오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삼성은 1997년 이 회장의 지시로 ‘엠퍼러’라는, 염가형도 1천만원이 넘는 하이엔드 오디오를 출시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 제품을 사들여야 했던 삼성 임직원들이 오디오 애호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디오 취미는 이른바 ‘돈질’과 ‘덕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의 오디오 덕질기는 돈질이 아닌 ‘맨땅에 헤딩’하는 이야기다.
이정국 esc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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