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이 문화계 성폭력을 두고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끼는 건 정치적 발언보다 위험하니 침묵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들었다며 “예술가 명찰을 달고 은밀히 행해지는 여러 층위의 성희롱, 성폭력 근간을 파헤쳐야 한다”고 글을 올려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다.
김 시인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화계 성폭력 사태 이후 문단 내외 페이스북 친구들의 양상을 세 가지로 나눴다. 김 시인이 분류한 세 가지 양상 가운데 첫째는 “이런 분탕질에 끼고 싶지 않으므로 알고 싶지도,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였다. 두 번째는 “우리 문학예술 진영에 피해나 될 뿐이니, 속히 사태를 수습 진정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김 시인은 두 번째 양상에 대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진정한 문학을 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일상’은 뭐며 ‘진정한 문학’은 뭘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문단 내에 침묵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자정과 쇄신의 목소리도 있음을 전했다. “습작생들의 뼈아픈 호소에 머물 문제가 아니니 때늦은 감은 있지만 문단 ‘내부’로 첨예하게 들어가 본격적으로 파헤쳐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는 것.
그러나 김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 사태에 대해 개인적으로 들은 조언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 시인이 들은 조언은 “술자리에서 글 잘 쓰는 남자 동료들이 농담하는 것 정도는 술 취해서 그러는 건데 이해해야지” 또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고 썼다.
그는 “'문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시궁창에 뜬 기름때만 휘저어볼 게 아니라, 문학가니 예술가니 하는 명찰 달고 은밀히 행해지는 여러 층위의 성희롱, 성폭력 근간을 파헤쳐야 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한 김 시인은 22세기시인작품상,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다. 올해 초 미국 출판사 ‘액션 북스’를 통해 영역시선집 <명랑하라 팜파탈>(Cheer Up, Femme Fatale)을 발간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낭송회를 열었다. ‘명랑하라 팜파탈’은 미국에서 초판이 매진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중견 시인 가운데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놓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적 발언을 한 시인은 흔치 않다. 김 시인은 2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 또한 문단의 ‘인사이드(내부)’에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여러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나라도 두드려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눈물이 자꾸 난다”고도 했다.
잇따른 성폭력 사건이 드러나고 사태의 심각성이 우려되는 가운데도 정작 문화계와 문단 내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남성 문인의 경우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방식이 남성성의 과시,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아울러 여성 문인도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문인도 성폭력 피해자라는 인상을 입게 되고, 예술가로서 이미지 타격을 받는다. 이 교수는 “여성 문인의 경우 문단을 떠나지 않는 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박유리 기자
nopimli@hani.co.kr
다음은 김이듬 시인 페이스북 글 전문
신선한 가을이다. 필요했던 시기이다. 새벽 빗소리에 깨어 페북을 쭉 봤다. ‘문단 내 성폭행’ 이후 페친들의 태도를 나는 (거칠게나마, 대략적으로)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눠본다.
1. (나는 그런 문제와 무관하고... 결백한 영혼이라 이런 분탕질에 끼고 싶지도 않으므로)
알고 싶지도,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이즈음 이분들 포스팅 잠잠하거나 딴청, 아마 이 문제가 문학과 페북 혐오증을 유발한 듯)
2. 이쯤에서 그만해라. 우리문학예술진영에 피해나 될뿐이니, 속히 사태를 수습 진정해야 한다.(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진정한 문학을 해야 한다,라는데, '일상'은 뭐며 '진정한 문학'은 뭘까?)
3. 습작생들의 뼈아픈 호소에 머물 문제가 아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문단 '내부'로 첨예하게 들어가 본격적으로 파헤쳐야 한다.
내가 들은 조언은
1.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문단 내 성폭행 문제에 끼는 건, 박근혜 탄핵 등 정치적 발언보다 위험하다며)
2. 술자리에서 글 잘쓰는 남자동료들이 농담하는 것 정도는... 술 취해서 그러는 건데 이해해야지(술 엄청 잘 마시고 잘 웃고 털털하며 유대감 좋은 소설가라 적이 없고 팬과 상복이 많은 님 왈)
ㅡㅡ('문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시궁창에 뜬 기름때만 휘저어볼 게 아니라, 문학가니 예술가니 하는 명찰 달고 은밀히 행해지는 여러 층위의 성희롱성폭력 근간을 파헤쳐야 할 듯. 그들 자체의 간교한 은폐능력과 권력형비호세력의 시스템이 거대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