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창간 10돌을 맞아 ‘일당’들이 한자리에 모여 폼을 잡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회계 등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김지혜, 발행인 김원, 기자 정유희, 김양수, 편집장 황경신, 기자 노창범.
“글보다 사람에, 세대보단 정서에 편안한 시선 던졌죠”
월간 <페이퍼>가 창간 10돌을 맞았다. 1995년에 신세대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스트리트 페이퍼’로 출발한 이 잡지는 지금 매달 9만부를 찍는 유가지로 성장했다. 숱한 무가지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대기업이 뒤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의 라이센스지도 아닌 이 얇은 책만이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까닭이 뭘까. 2일 서울 삼성역 부근 <페이퍼> 사무실을 찾아보았다. 신세대 대변 ‘스트리트 페이퍼’ 출발
지금은 매달 9만부 찍는 유가지로
동네가게 소소한 얘기부터
거장 인터뷰까지 내용 제한 없어
매년 바자회…독자·필자등 한자리에
‘세상 맛’ 살리려 재택근무도 “동력이요? 독자들이죠.” 발행인 김원 이사(48)는 당연하다는 듯 제꺽 ‘정답’을 일러줬다. 물론 위기가 없었을 리 없다. 97년께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불황을 예고하는 빨간 불이 켜졌을 때였다. 광고물량이 갑자기 줄어들어 잡지를 포기하려 하자,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 “배포처 가게의 사장들이 돈을 댈 테니 잡지를 계속 내달라”고 했단다. 결국 98년 1월호부터 유가지로 돌아섰다. 황경신 편집장(40)은 “유가지 전환이 우리를 살렸다”고 말했다. 서울에만 배포하던 책이 전국 지하철 가판대와 서점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잡지 발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왕고참’ 정유희 기자(35)의 말에 ‘옛 꽃미남’ 김양수 기자(33)와 ‘새 꽃미남’ 노창범 기자(30)도 고개를 끄덕였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사진 <페이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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