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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날쌘 말처럼 운동장 누비는 아이들 보면서 카메라 들었죠”

등록 2017-05-04 18:10수정 2017-05-07 02:22

【짬】 ‘운동장 아이들’ 사진전 연 이보령 교장

이보령 안양 동안초 교장 선생님이 전시회에 걸린 자신의 사진 작품 옆에서 촬영 당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보령 안양 동안초 교장 선생님이 전시회에 걸린 자신의 사진 작품 옆에서 촬영 당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진가이자 안양 동안초등학교 교장인 이보령(61) 선생님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생애 첫 개인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란다’를 열고 있다. 개막에 맞춰 같은 이름의 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선생님의 이번 사진전은 그가 최근 6년간 호원초등학교와 동안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수업과 놀이를 하는 학생들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됐다. 이 선생님을 지난 3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장학사 8년여만에 5년전 학교로

안양 호원초 체육대회때부터 찍어

출근할땐 직접 운동장 이물질 청소

7일까지 류가헌 전시…사진집 출판도

“저학년 아이들 찍어달라 조르기도

미세먼지로 운동장 사라질까 걱정”

이 선생님은 1978년부터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중간에 8년6개월간 장학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교장으로 다시 교육현장에 돌아왔다. “교육청에서 일할 때 심신이 지쳐 있었는데 학교로 돌아오니 아이들과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예뻤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싶었지만 1년간은 교장 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제했다”고 운을 뗀 이 선생님은 “2012년 호원초등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던 날 아이들이 날쌘 말처럼 운동장을 누비는 것을 보면서 참다 참다 기어코 카메라를 들고 운동장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체면도 없이 나댄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조바심이 났는데 학부형들의 반응이 뜻밖에 좋았다. 저학년 아이들은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왜 운동장을 주제로 잡게 되었는지 묻자 이 선생님의 운동장 예찬이 시작되었다. 운동장은 놀이터이자 체육교실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축구, 피구, 달리기, 줄넘기를 한다. 과학시간에 볼록렌즈로 태우는 실험도 운동장에서 하고 비가 오는 날엔 흙놀이를 한다. 동안초등학교는 안양시 중심가에 자리잡았는데 주변이 아파트 천지다. “이렇게 뛰어놀 수 있는 것도 초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인데 그나마 이 학교 운동장이 넓은 편이라서 아이들에게 너무 다행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 선생님은 아침 출근길마다 운동장을 돌면서 학교 시설 주무관과 함께 큰 돌멩이나 과자 막대 같은 이물질을 줍는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운동장 흙을 소독한다. 2년에 한 번은 물이 잘 빠지게 복토를 한다.

전시장에 크게 걸린 사진 한 장 앞에서 발을 멈춘 이 선생님은 “이 사진은 피구 경기를 하는 장면이다. 운동장 바닥에서 보통 눈높이로 보니 몇명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갔더니 확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역할이 있고 경기 전체에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다시 옆 사진으로 옮긴 이 선생님은 애정이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로 사진과 아이들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혼자서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체육대회를 하는 날 모두 스탠드에 앉아 응원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운동장으로 내려가더니 “3학년 3반 이겨라”라고 맹렬히 응원구호를 외쳤다. ‘나는 한 번이라도 저렇게 열정적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한 장마다 모두 이런 교육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한다는 것은 늘 옳은 말이지만 사진 이외에 한 가지를 더 겸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도 진리다. 이 선생님에겐 교육현장이 사진현장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정년퇴임을 하게 되는 이 선생님은 폐교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비어 있는 운동장이지만 한때 아이들이 쌩쌩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발랄하게 다시 북적거리는 느낌이 들도록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선생님의 고민이자 딜레마는 체육관이다. “미세먼지가 늘어나서 운동장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올해엔 1주일에 이틀밖에 안 되더라. 더운 여름이나 비 오는 날을 생각하면 체육관을 짓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운동장을 누비는 아이들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자연을 벗삼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즐거움과 자유를 배우는 것이 아이들인데 운동장이 없어지면 이런 놀이와 활동이 사라질까 걱정이 많다”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류가헌 (02)720-2010.

글·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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